“북 당국, 경제난 속 주민들에 ‘스스로 해결하라’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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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기자>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만성적 경제난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일부지역에서는 굶어죽는 사람까지 나왔다는 주장인데요, 문성희 박사님, 현재 북한의 경제상황,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문성희 네, 객관적인 조건을 나열하면 경제난이 심각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겠지요. 국제적인 제재가 계속되는데다가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도 당분간 해제될 가능성이 없고, 더군다나 중국이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철저한 코로나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그런 점을 생각하면 북한이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히 추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식량난과 관련해서 한국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최근(7월 25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식량난 심화에 따른 제2차 '고난의 행군'에 관한 질문을 받고 "여러 상황을 종합 분석해보면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미 지난 달 “공화국 행로에서 오늘과 같이 초강도의 비상 국면은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신문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북한 주민들에게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대책을 강구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제가 보기엔 대책을 강구한다기보다 ‘주민들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하라’는 그런 신호라고 봅니다. ‘초강도의 비상국면’이라는 표현을 한다는 것은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고 있다는 추측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이런 사실이 아직 확인된 바가 없기에 저는 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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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발생 이후 봉쇄된 평양의 한 도로. /REUTERS

<기자> 아직은 아사자가 발생했다고 보기엔 좀 이르다는 말씀으로 들리는 군요.

문성희 네, 물론 영양실조가 요인인 다른 질병으로 죽거나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고, 사실 굶어죽은 사람이 100%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실제 과거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북한 당국이 발표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 당시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굶어죽었다'고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에 가까운 표현이 TV드라마에 나온 일이 있었으며 2011년에는 북한에서 아사자를 그린 연극까지 공연됐습니다. 이런 것을 북한 당국은 당시 엄격히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과거 상황을 돌이켜 보면 혹 아사자가 나오고 있다면 북한 당국이 이 사실을 그냥 가만히 두고 모른체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는 발표했지 않습니까.

<기자> 지난 2년 동안은 북한 당국이 비축미를 풀어 식량 부족분을 풀었는데 이제는 비축미도 바닥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북한 당국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비축미가 바닥을 드러냈다면 이제 농촌이나 개인집에서 비축해놓은 식량을 풀도록 행정적인 지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들 자기들이 살아가자고 비축해놓은 식량이 있을 것이니까요. 물론 공짜로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가격을 설정하여 국가가 사들이는 것이지요. 이것으로 어느 정도는 식량 부족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긴급처방밖에 안 되겠지요. 저는 궁극적으로는 북한이 국경봉쇄를 풀 수 밖에 없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중국의 화물차가 다녀갔을 때 장마당이 번성하고 식량문제도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국내에서 해결하자면 한계가 있습니다. 그건 다른 나라들도 모두 그렇지요. 모자란 식량은 바깥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곡물국제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것은 안 좋은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식량을 사들이려고 해도 비싸게 거래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기자> 고난의 행군 때와는 달리 2000년대 이후엔 북한 주민들이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장마당에서 식량을 구해왔기 때문에 극심한 식량난이 없었다고 지적하신 기억이 나는데요, 최근에는 북중국경 봉쇄가 계속되면서 장마당에서 식량과 물자를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입니다. 북한 당국이 장마당 활성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문성희 말씀하신대로 장마당이 활성화되려면 장마당에 풍부한 상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파는 물건이 있어야 사람들이 와서 장마당이 번성하는 것이지요. 팔 물건이 없다면 아무리 돈을 가지고 있어도 살 수 없으니까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2008-2012년에 자주 장마당, 그러니까 평양의 통일거리시장을 다닐 때 '정말 여기가 북한인가' 생각할 정도로 물건이 많이 있었습니다. 종류도 많고 수량도 많았지요. '어디서 이런 물건이 쏟아지는 것인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상품이 중국제나 심지어는 한국제 등 외국제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로 물건이 들어오기 힘들다고 하네요. 그리고 농민들은 식량을 비싼 값으로 팔 수 있기 때문에 시장에 많이 가져갔는데 상인들이 제대로 장사를 못 한다면 식량을 가져가봤자 사주는 상인이 없을 수 있지요. 그렇게 되면 농민들도 쌀 등 식량을 장마당에 안 가져가겠지요.

이런 상황 아래서 장마당 내부 물자가 소진된 상황이고 북·중 밀무역으로 유입되던 식량과 물자도 크게 줄어 장마당 운영이 어려울 정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북한 당국이 장마당 활성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싶어도 그리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북한 당국이 장마당 활성화를 위해 국산품 등을 장마당에 우선적으로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해 북한 경제가 2년 연속 감소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코로나 확산과 대북제제탓인데요, 문제는 올 해도 사정이 별로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점인 듯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북한 당국도 고심이 깊어질 듯한데요, 어떻습니까? 무슨 대책이 있을까요?

문성희 네, 한국은행의 '2021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1조4100억 원으로 2020년에 비해 0.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 아래서 경제성장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별다른 대책도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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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랴오닝성 단둥과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 사이를 잇는 압록강철교. /AP

<기자> 북한 당국이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타개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문성희 어려운 질문이네요. 하나는 중국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라고 봅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북중 간 화물열차가 운행하고 있었던데 이런 식으로 중국에서 물자를 확보하는 것이 하나. 또 하나는 역시 자력갱생이라고 봅니다. 일반주민들에게 "버텨랴. 조금만 버티면 잘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뭐 그런 식으로 선전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노동신문에서 호소하거나 지역 학습회 등을 통해서 의식을 높이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방식으로 자기 집에 비축해놓은 식량이나 물건, 자금을 국가에 바치도록 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바친 사람은 노동신문에도 소개되고 이런 모범을 따르라, 그렇게 할 수있지요. 그런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당원으로 내세우게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데, 최근에 북한에 투자한 일본 총련 사업가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면서요, 현재 북한 내부상황, 어떻다고 하던가요?

문성희 네, 재일동포들도 국경봉쇄 뒤 북한에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조선신보 기자들도 특파원을 평양에 못 보내고 있으며 총련 일꾼들도 모두 북한에 못 들어갑니다. 제가 얘기를 나눈 총련 사업가도 지난 몇 년 동안 북한에 못 들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 사업가는 코로나 이전에 북한에 투자해 식당을 몇 군데 열었는데 아직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고용한 종업원들이 일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매상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어느 한 가게에서는 하루에 1만3천엔 그러니까 93달러 정도의 매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재일교포 사업가 이야기로는 냉면(국수)을 먹으러 온 손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코로나로 격리를 한다고 하면서도 가게를 운영할 수 있고 식당에 손님이 있다는 것이지요. 평양 경제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봅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