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암울함 속 북 여성 경제력 회복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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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가장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돈을 버는경제활동의 주체로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 김혜영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 혜영 씨, 안녕하세요. 지난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북한 주민들은 올해 추석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김혜영] 추석은 북한에서도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명절이지만, 탈북민들에게는 가장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북한에 있는 부모 형제와 만나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보내기 때문인데요. 요즘은 북한 소식을 듣기도 어렵고, 명절이라고 해서 가족에게 송금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더 답답합니다. 북한에서는 추석 때 성묘하러 가면 밥과 술, 과일, 반찬 등을 가져가기 때문에 추석을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는데요. 요즘은 코로나에 따른 경기 침체에 북중 국경 봉쇄로 시장에 물건이 별로 없으니까 올해 추석을 잘 보낸 것 같지 않습니다. 최근 추석 명절을 앞두고 양강도 골목시장의 풍경을 동영상으로 봤는데, 파는 물건이 많지 않고, 거래도 활발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 송금 이야기를 하셨는데 , 여전히 송금은 쉽지 않은 상황인가요?

[김혜영] 네. 이럴 때 가족에게 돈이라도 보내서 풍족한 명절을 보내게 하고 싶은데, 지금도 중간 수수료가 50~60%나 됩니다. 정작 가족에게는 절반도 못 가는 상황이니 아예 돈 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 탈북민도 많습니다. 높은 수수료를 감수하면서 돈을 보내는 탈북민도 있겠지만, 많은 돈을 보내는 것 같지 않습니다.

  • 지난 8월 초부터 기대를 모았던 북중 화물열차 운행 재개가 계속 미뤄지고 있 습니다 . 중국 에서 주저하고 있다는 정황이 들려오는데요 . 전직 무역일꾼 출신으로서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혜영] 중국도 요즘이 가장 예민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듣기로 중국 내각에서는 무역 재개에 동의했는데, 당에서 이를 반대한 것 같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오는 10월에 당대회라는 매우 중요한 정치 행사가 있기 때문에 더 철저한 방역 조치와 경비가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 아마 열병식을 할 수도 있겠는데요. 중국도 코로나에 대한 북한의 발표를 믿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중국도 정보를 다 수집하고 있을 거고요. 북한에서 아직 코로나비루스가 확산하고 있고,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역 재개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탈북민 단속도 당연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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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경제특구 내 수산물 공장의 근로자들이 중국 화물트럭에 실을 상자를 나르고 있다. / AP (David Guttenfelder/AP)
  • 북중 국경이 봉쇄되고 , 시장에서 장사가 잘 안 된 지도 2년이 넘었습니다. 요즘은 경기 침체로 아예 장사를 접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요 . 그동안 장사의 주체는 여성이었습니다. 여성이 돈도 잘 벌면서 사회적 위상도 높아졌는데, 북한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어떤 변화가 있을 까요 ?

[김혜영] 북한에서 시장 경제가 발달하고, 여성이 장사를 하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지위가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최근 몇 년 사이 장사가 잘 안되고 현금 수입이 줄었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활동이 많습니다. 지금도 북한 시장을 보면 장사하는 사람 대부분이 여성인데요. 그동안 장사하면서 경험과 돈 버는 수단을 많이 축적했기 때문에 여성들의 역할과 지위는 계속 유지될 거라 봅니다. 또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조금만 기회가 열린다면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조금 전 짚어봤지만 , 북한에서 계속 코로나 의심 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북중 무역 재개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반등의 기회가 있을까요?

[김혜영] 전망은 암울하죠. 최소한 10월까지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고요. 올해 농사도 가뭄과 코로나, 수해 등으로 쉽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평양과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농촌과 지방 도시는 계속 어려운 생활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래도 수확 철이 되면 조금은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장사하거나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이 생기니까요. 또 10월은 김장철입니다. 배추, 무, 고추 등을 수확해 직장별로 분배하거나 장마당에서 거래하기 때문에 그나마 풍요로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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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주민이 이웃과 함께 겨울 김장을 하고 있다. / AP (cha Song Ho/AP)
  • 10월입니다. 금세 겨울이 다가오고요. 겨울이 되면 돈 쓸 일이 많아질 텐데 , 이 시기에 혜영 씨가 가장 우려 는 점이 있 을까요 ?

[김혜영] 겨울철에는 장사할 것이 많지 않아 현금 수입이 더 줄어듭니다. 그런데 식량, 땔감 등 월동 준비로 돈 쓸 일은 더 많아지니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의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기 때문에 아마 땔감 마련이 가장 어려울 겁니다. 올겨울도 주민들이 자국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하겠지만, 북한 당국도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시장 통제를 완화하는 등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국민들이 조금은 여유 있는 겨울을 보낼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곧 겨울을 앞두고 북한에 가족이 있는 탈북민들의 마음은 모두 똑같을 것입니다.

  • . 그동안 '돈 버는 재미와 돈맛'을 통해 북한의 시장 경제와 북한 여성들의 경제 활동, 사회적 역할 등을 짚어봤습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 상황이 풀리고, 북중 무역도 정상화돼서 북한 주민들이 돈도 많이 벌고,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북한 무역일꾼 출신 탈북민 김혜영 씨, 고맙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