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 기자 > 북한에서 소득이 많은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의 15%를 차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 중국 등과 비슷한 수준인데요, 문 박사님, 북한에서도 소득 불균형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거네요. 직접 북한에서 경험해 보신 북한의 소득격차, 어떻던가요?

문성희 네, 소득격차는 여러 군데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은 상점입니다. 북한에는 종합시장, 백화점과 같은 국영상점 이외에도 여러가지 상점이 있는데 일반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종합시장이 아니라 아파트 아래에 있는 시장 등지에서 물건을 삽니다. 통일거리에 있는 종합시장도 가격이 결코 싼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종합시장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도 제한됩니다. 그러니까 결국 아파트 인근 시장이나 길거리시장 같은 곳에서 물건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수입한 물건만을 진열하는 고급상점도 있어요. 소니의 컴퓨터, 파나소닉의 냉장고는 물론 가구 등도 서양에서 수입한 고급가구가 진열되고 프랑스제 옷이나 이탈리아제 구두, 가방 같은 것을 파는 상점입니다. 저는 이런데서 누가 상품을 사나 했는데 손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곳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계층이 있다는 것이지요. 일반 서민들은 이런 곳에 드나들지도 않습니다. 당시 현장을 북한 친구와 함께 돌아보았는데 그 친구는 이 상점보다 격이 떨어진 상점에 저를 데려가 주고는 "우리는 이런 곳에서 옷을 구한다"고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제 옷 등이 진열되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어요.
그리고 주택도 격차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은 ‘당의 배려로 고급아파트가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배급된다’고 선전하지만 최근에도 북한 뉴스를 보니까 인민방송원인 이춘희 씨가 새로 보통강에 생긴 아파트를 배정받고 있었지 않습니까? 저는 의문을 느꼈습니다. ‘이춘희 아나운서라면 이제 좋은 집이 있을 것인데 어째서 집을 구하기 어려운 그런 사람들에게 배급해주지 않는 것인가?’ 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집을 배급하는 것도 격차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아예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는 이런 집은 공급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제가 방문한 평범한 노동자들의 집과 방송에서 소개되는 고급 아파트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습니다. 이런 측면은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생각됐고 그런 면에서 계층 간 격차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부터 택배를 시키는 그런 집도 있고, 자가용차를 가지고 있는 여성 배우도 만났습니다. 북한에서 자가용을 가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데 과연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해서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득 상위 1%가 국민 전체 소득 15%를 차지한다는 결과는 당연하다고 느낍니다.

< 기자 > 북한 당국이 자랑해온,'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렇게 소득격차가 많이 나게된 배경은 뭐라고 봐야 할까요?
문성희 한마디로 말하면 북한에서 시장화가 촉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국 이래 북한 사람들은 계속 어려운 생활을 해왔지만 1960년대, 70년대 초반까지는 그래도 한국보다 경제적으로는 발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생활 수준은 그리 높지 못했지만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대표하는 제도라고도 할 수 있는 공급제가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평등한 생활이었습니다. 저도 1984년에 처음으로 북한에 갔을 때는 간부도 일반주민도 할 것 없이 정말 마음이 깨끗하다고 할까, 돈을 얻고 싶어하거나 그런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그것이 무너진 것이 고난의 행군시기이지요. 북한에서 여러 악조건이 겹쳐 공급제가 사실상 붕괴되자 사람들이 저마다 살기 위해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거나 물물교환 등을 하거나 그렇게 해서 그야말로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못하는 사람들이 죽어간 그런 시기가 5년 정도 지속된 뒤 2002년부터 북한 정부가 경제개혁정책을 실시하였고 북한 주민들은 국가의 공급 없이도 자기 나름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속에서 장사에 성공해 잘 살게 된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생활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제가 직접 현지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고난의 행군시기에 이제 돈이 떨어져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을 하던 한 여성이 남편을 잘 만나 호텔을 경영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당시에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북한에서 돈을 벌어 생활을 잘 하게 된 사람들도 그럴만한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 기자 > 북한 주민들은 이런 빈부격차를 어떻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불만이 꽤 있지 않던가요?
문성희 물론 불만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접하는 안내원은 북한에서는 '생활비'라고 말하는 노임만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매우 부러워하고 있었지요. 또 대학교원들도 부업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불만이 컸습니다. 교원을 그만두고 장사를 하고 싶어도 교원을 그만두면 지방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대학교원을 그만두지도 못하는 것이지요. 북한은 사회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빈부격차는 있으면 안 되는데 빈부격차가 생기게 되니까 못 사는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못 사는 사람들도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이라는 원천이 있어야 하고 그건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본주의 나라 같으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 그것을 토대로 장사를 성공시킨 사람들도 많지만 사회주의나라에서는 기업들도 국가가 운영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지요. 장사에 성공한다고 해도 식당이나 호텔 같은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적인 대형 사업에는 당연히 참가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기자 > 이런 생활수준 격차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응은 어떻던가요?
문성희 2002년에 개혁정책을 실시했지만 생활수준 격차가 심해지자 2005년에는 식량을 중심으로 공급제를 부활시켰고 2009년에는 화폐교환을 실시해서 주민들이 갖고 있던 돈을 회수하는 방법으로 격차를 해소시키려고 했지요. 그러나 이런 모든 정책은 실패했고 그 뒤에는 다시 시장화를 묵인하는 쪽으로 간 것으로 압니다. 김정은 정권 첫 시기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공업과 농업 부문에 적용시켰고 이것이 일정하게 성공하자 북한 경제도 일정 정도 성장하는 시기가 계속되었습니다.
다만 이후 다시 생활격차가 생기자 그것에 반대하는 여론이 나와 공급제를 어떤 방식으로든 부활시키거나 사회주의 계획경제 쪽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런 정책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북한지도부 자체도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시장화와 계획경제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결국 생활상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기자 > 북한 당국의 최근 정책 방향은 시장화보다는 경제관리에 방점을 둔 듯한데요, 이런 식으로는 다 같이 못 사는 상황으로 가지 않을까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북한 지도부가 시장화를 후퇴시키고 경제관리에 방점을 두는 목적은 사회주의제도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공급제를 고집하는 것이고 시장경제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이나 중국 등을 보면서 경제개혁을 실시해서 시장경제로 간다면 결국 체제위협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지금은 국제적인 경제제재에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까지 겹쳐 국가의 경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를 못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