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이 식량난이 가중되고 경제 상황도 점차 악화하면서 그 동안 사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던 돈주들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해외 친지들에게 연락해 "외화를 좀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수영 기자가 북한내 돈주를 포함한 부유층이 마주한 생활고를 짚어봤습니다.
단속과 무역량 감소로 ‘고인물’ 없으니 수입원 끊겨
대금업도 어려워…협동농장에 돈 빌려줘도 돌아오지 않아
생활고에 돈주 줄어…“돈 보내달라” 요청하기도
북한이 2000년대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 속에 북한의 부유층마저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최근 (9월 중순) RFA에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평양의 친척에게서 “사정이 어려우니 외화를 보내달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도와달라고 호소한 이가 외국에 인맥이 있고 돈도 꽤 많았던 ‘돈주’로 잘 사는 축에 속했는데 최근 급격히 생계가 어려워졌다며 이같이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아직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북한 내부 사정이 드러난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중국에서 무역업에 종사했던 탈북민 손혜영 씨는 북한 당국의 엄격한 단속과 북·중 무역 감소 때문에 돈주들도 사정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돈주들은 무역상으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환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이윤을 취했는데 북한 주민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돈주들의 수입원도 끊겼다는 겁니다.
[손혜영]그 사람들(돈주)은 고인물을 먹고 살던 사람들입니다. 불법으로 눈을 한쪽만 살짝 감아주면 돈이 몇억이 왔다 갔다 하는데, 지금 정부가 막아놔서 그런 불법 행위도 못하죠. 밑에 사람들은 그전에 힘들 때도 풀죽이라도 먹고 살았으니까 괜찮은데, 간부들은 고인물은 없고 하니까 이제는 북한 밖에 있는 친척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나를 좀 도와달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일본의 대북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4일) RFA에 최근들어 북한에서 소규모 돈주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규모가 큰 돈주도 있고 작은 돈주도 있겠죠. 그런데 작은 돈주들은 견디지 못해서 일반 사람과 비슷하게 됐다는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많이 해요.
큰 돈주들에게도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시마루 지로]큰 돈주들도 지금 견디고 있는 형편일 겁니다. 그러니까 시장 경제가 돈주들이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하는 형태였는데 그런 거래 형태 자체가 많이 없어졌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한국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6일) 외화 수입원이 끊긴 가운데 충성 자금은 계속 헌납해야 하므로 돈주들의 생활고가 심해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임을출]돈주 입장에서는 이제 진퇴양난이 될 수밖에 없죠. 새로운 외화 수입원은 없어지고 그런데 국가가 요구하는 것은 점점 많아지고. 국가 정책에 부응하다 보면 그나마 그동안 모아왔던 또는 축적해 놓은 외화가 점점 고갈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고 봐야 하겠죠.

북 식량 위기에 돈주들도 위태
올해 늦은 모내기와 수해 피해로 인한 국내 생산량 감소도 돈주들에겐 엎친데 덮친격입니다.
일반 북한 주민들이 협동 농장에 쓰일 비료와 연료를 조달하기 위해 돈주들로부터 자금을 융통했지만 이를 제때 갚지 못해 돈주들의 생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북한의 식량 사정이 악화할수록 자금 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돈주들의 수입이 줄어든다고 설명했습니다.
[권태진]돈주에게 빌린 원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이자도 제대로 못 갚는다면은 돈주로서는 이 자금 순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 결국은 빌린 돈을 이제 제대로 받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문제 그리고 또 회수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금 순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자금이 순환돼야지 돈주에게도 수입이 생기는데 수입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격이죠.

대북 송금 수수료 급증에 송금액 줄어들자 돈주들도 '골치'
여기다 줄어든 대북 송금액에 돈주들까지 연쇄 타격을 입었다는 지적입니다.
수수료가 50% 이상을 넘어가고 북한 당국의 감시도 엄격해지자 대북 송금액이 현저히 줄어들어 일반 주민들을 상대로 돈을 벌던 돈주들의 생활까지 어려워졌다고 손혜영 씨는 말했습니다.
[손혜영]위에 사람들은 불법을 해서라도 먹고 살았는데 그 사람들(상인들)이 없고 이제는 외국에서도 돈을 안 보내지. 윗사람들은 뜯어 먹을 게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없으니까 이런 생활고를 겪기 마련이거든요.
탈북민 김단금 씨도 북한 가족들의 생계유지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습니다.
[김단금]전화 연결을 할 때 한 번 더 이야기하는데 "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 때보다 지금 더 힘들다"고 그쪽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그 정도면 간부들도, 돈 좀 있는 계층들도 힘든 거는 사실인 거예요.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 신문 외교전문기자도 (5일) 최근 북한 당국의 감시가 심해진 탓에 친지들과 통화하기도 어려워졌다는 재일교포의 호소를 전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옛날에는 한 번 전화 연락이 오면 그때 "다음에는 몇 달 며칠에 몇 시쯤에 전화할 테니까 북한 친척들이 미리 전화국에 가서 기다려라"면서 약속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약속을 거의 안 한다고 합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도 제정되고 외부에서 정보 유입을 심하게 제한하는 영향 때문이 아니냐는 소문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자력갱생' 외치는 북한 당국 , 돈주들에게는 2022년 '최악의 상황'
북한 전문가들은 이제까지 비교적 풍족하게 살았던 돈주들의 삶이 어려워진 주요 이유로 북한 당국의 정책을 꼽았습니다.
임을출 교수는 코로나 이후로 북한의 경제정책 기조가 자력갱생과 계획경제 복원 방향으로 바뀌어 돈주들의 자율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임을출]돈주들은 자율적으로 다양한 사업(비즈니스)에 종사해야만 더 많은 소득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데 지금은 외화를 포함해서 모든 자원을 중앙정부에 집중시켜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돈주들의 움직일 수 있는 사업 공간이 많이 축소되었고 국경 봉쇄 상황이 3년째, 내년이면 4년째에 접어드는데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다 보니까 돈주들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는 또 당장 북·중 교역이 재개돼도 부유층 특히 국가사업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돈주들이 자산을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권태진 원장도 북한 내 거래량뿐 아니라 거래 품목 자체도 줄어들었다고 꼬집었습니다.
[권태진]시장 내에서 지금 장사를 할 수 있을 만한 품목들이 많이 없어졌고 다들 전부 이제 마진이 줄어드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규모가 작은 돈주들은 아마 이미 제대로 사업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자력갱생을 위해 국내 생산과 소비를 격려해 도매업자들이 차익을 얻기 더 어려워졌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국가에서 장마당의 시장 활동에 제한 두면서 국영상점을 살리려고 적극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입품과 국외 생산품을 장마당에 도매하는 걸 억제하고 국영상점에서 팔아라'라 하고 '구청에서 이익 일부를 국가에다가 납부하라' 이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 당국이 기업 간 거래용으로 발행한 돈표가 오히려 거래의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국영 기업이 생산한 걸 또 국영상점에다가 파는데 지급을 돈표나 (수표와 비슷한 형태의) 행표 등 현금이 아닌 걸로 하자고 하니까 신뢰도도 많이 떨어지고 이익도 얼마 안 남는다고 해서 그것도 활발하지 않거든요.

이런 탓에 돈주들 입장에서 2022년은 최악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임을출]이런 상황들을 고려한다면 돈주들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죠.
[권태진]올해는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고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더 좋아질 가능성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북한 경제 침체와 식량 위기가 심화하면서 돈주들마저 생계유지가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