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 기자 > 최악의 식량난에 맞딱뜨린 것으로 보이는 북한이 알곡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노동신문이 이 달 초 (6일) 농민들에게 '날씨를 탓하지 말고 제대로 추수하라'고 독려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볏단이 빗물에 젖은 채 논에 쌓여있다거나 낱알을 제대로 건조시키지 않아 부패하는 경우를 들었습니다. 문 박사님, 그러니까 북한 당국은 '어떤 환경에서도' 알곡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문을 북한 농민들에게 하고 있는 듯합니다. 농촌 현장의 농민들로선 부담이 꽤 클 듯합니다.
문성희 네, 부담은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날씨를 탓하지 말라고 해도 날씨를 농민들이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요. 날씨가 농사에 지장을 줄 수도 있고 좋게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이런 경험이 생각납니다. 제가 예전에 황해북도 사리원시를 수해 직후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 농장원이 제게 이야기했는데 ‘지금까지 열심히 일을 해왔다, 그런데 수해 때문에 벼이삭이 모두 물에 잠겼다, 좀 더 있으면 곡물을 수확할 수 있었는데 이것으로 모두 안 되게 되었다, 올해 수확은 기대를 할 수 없다.’ 이런 내용의 하소연이었어요. 저도 물에 잠긴 벼이삭을 보면서 이것을 회복시킨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볏단이 빗물에 젖은 채 논에 쌓여있다, 낱알을 제대로 건조시키지 않아 부패하고 있다고 해도 농민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볏단을 임시로 보관할 수 있는 창고나, 비닐하우스 같은 것을 건설한다거나 건조시킬 수 있는 기계장치 등 그 수단을 국가가 마련해주어야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서 농민들에게 “날씨를 탓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도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농민들이야 말로 자기들이 열심히 가꾼 곡물을 빗물에 젖은 채로 방치하거나 낱알을 건조시키지 않고 못쓰게 하고 싶겠습니까? 모두 그걸 해결할 방도를 못 찾기 때문이지요.

< 기자 > 결국 올 해도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 탓에 비료와 농기구 등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요, 북한 농민들로선 속이 말 그대로 타들어 갈 듯한데요.
문성희 네, 그렇겠지요. 수확을 거두기 전에 우선은 농업생산량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국도 그걸 원하겠지만 가장 농업생산량에 신경을 쓰는 것은 농장원들이겠지요. 그건 협동농장 책임일군들의 입장으로 본다면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측면이 있고 농민들 입장에서 본다면 곡물생산량이 올라가지 않으면 시장에 팔 곡물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평양에서는 통제가 심하기 때문에 곡물을 시장에서 파는 것이 금지될 경우에는 시장에 곡물을 내다 파는 농장원들도 많지 않을 수 있지만, 지방에서는 이제 공급제도가 무너진지 오래 되기 때문에 농장원들은 상관없이 시장에 곡물을 팔 듯해요. 그렇게 해서 농민들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비료와 농기구가 확보되어야 생산도 제대로 되는데 그것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생산량만 올리라고 독려하게 되면 농민들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기자 > 올 들어 농촌문제와 함께 식량 확보가 북한의 경제정책에서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는 양상인데요, 북한 당국이 내놓고 있는 농업 관련 대책,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문성희 최근에 진행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했는데, 거기서는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시키는데서 급선무로 나서는 것은 먹는 문제, 소비품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벌써 전부터 여러 번 강조되어온 것이지만 김 위원장이 새삼스레 언급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올해 식량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에서 지적한 농업정책을 보면 새로운 측면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종자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은 제가 2003년에 평양특파원을 했을 때도 여러 번 들어봤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알감자의 생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취재한 일이 있습니다. 농업과학원에서 노력해서 만들어낸 것이었어요. 2008년께 미곡협동농장을 방문했을 때는 '강성1호'라는 생산량이 높은 벼를 심고 있는 논을 직접 보았습니다. 관리위원장이 자랑 삼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이건 모두 당시 북한 당국이 자랑했던 종자혁명의 성과라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당시 자랑했던 '강성1호'와 '무비루스감자'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관개시설이 노후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2년- 3년 사이에 복구하라는 그런 정책도 세우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빨리 실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밀 재배면적을 늘릴 것을 장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 사람들 식생활을 보면 과거에는 밥에 국물 그리고 약간의 부식물 같은 것이 기본이었어요. 그렇지만 2010년대부터는 “우리도 아침에 빵과 거피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는 그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밀을 많이 생산하라는 것은 쌀이 기본이었던 식생활을 바꾸어가자는 것이라고 보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김정은 총비서나 여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의 발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건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 기자 > 그런데 애초 북한은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통해 농장의 자율성과 인센티브, 즉 성과급을 확대하려고 추진했지만 최근 들어선 유야무야되는 듯한데요, 어떻습니까, 이런 정책변화도 농업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요?
문성희 네, 장애가 된다고 봅니다.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은 여러 경제개혁 정책을 실시했는데 그 중에서도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농장에 도입하는 수단으로 포전담당제를 시행했습니다. 이건 농장원들이 남은 곡물을 시장에서 팔아서 개인 소득으로 해도 좋다는 그런 것이었기에 농장원들도 많이 기뻐했지요. 그리고 농사 구역을 적은 인원수에 맡겼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논 구역을 한 가정이 맡게 되고 그렇게 되면 농사의 성과가 한 가정에 가게 된 셈이지요. 그렇게 되니까 농업생산도 올라갔습니다. 물론 포전담당제만이 농업생산 향상에 기여했을 지는 좀 더 분석할 필요가 있겠지만 적어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그런 재미가 없게 되자 농민들의 생산의욕이 떨어지고 농업생산량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기자 > 북한을 오가실 때 농장도 방문하곤 하셨을 텐데요, 북한 농부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은 무엇이던가요?
문성희 역시 제일 필요로 했던 것은 비료였습니다. 그리고 기계를 이용해 농사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트랙터 같은 영농기구 등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가동시킬 수 있는 연료가 모자랍니다. 여전히 소를 몰고 농사일을 하는 모습도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은 비닐하우스입니다. 이걸 외국에서 수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닐하우스가 있으면 채소나 과일 같은 것은 잘 재배할 수 있게 됩니다. 북한은 논이나 옥수수 밭은 많이 보았는데 채소 밭을 그렇게 보지 못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채소가 그렇게 잘 자라지 않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채소가 워낙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