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식생활 다변화 노력에도 성과 ‘먼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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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연간 양곡 소비량이 감소하며 역대 최소치를 기록한 가운데 북한과는 엇갈린 소비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쌀 외에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지만, 북한의 경우 단백질원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탄수화물, 즉 곡물 소비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요.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곡물량은 한정돼 있어 식량 부족을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북한 당국은 밀 재배를 늘릴 것을 강조하면서 식생활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농업 전문가들은 여전히 회의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특히 먹거리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축산업의 발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한국 1인당 연간 양곡 소비 64.6kg, 북한의 1/3 수준

지난달 26일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2023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양곡 소비량은 평균 64.6kg으로 전년 대비 0.2%(0.1kg) 감소하며 통계 작성 이래 최소치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에서 양곡 소비량이 계속 줄어드는 이유는 1인 가구의 증가로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인구가 줄었을뿐 아니라 체중 조절을 위해 탄수화물을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했고, 특히 먹거리가 다양해지면서 한식뿐 아니라 서구화된 음식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반면, 북한의 공식적인 양곡 소비량 통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농업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북한 주민의 하루 평균 섭취 곡물량은 약 580g~650g 사이입니다.

이를 계산하면 일 년 동안 1인당 약 211~237kg의 양곡을 섭취하는 건데, 이는 한국의 연간 양곡 소비량보다 3배 이상 많은 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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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023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 보고서 캡처 / 한국 통계청

한국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3년 북한의 식량작물 생산량은 약 482만 톤.

북한 인구를 2천570만 명으로 추산했을 때 필요한 곡물량은 약 542만 톤입니다.

다양한 요인에 의해 달라질 수 있지만, 북한 주민 1인당 하루 양곡 소비량을 580g으로 가정하면 약 62만 톤의 양곡이 부족하며, 650g일 경우 약 128만 톤이 부족한 것으로 계산됩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다양한 식량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알곡 생산 구조 전환을 통한 주민들의 식생활 구조 변화입니다.

북한 당국은 2021년, 인민들의 식생활 문화를 개선하겠다며 알곡 생산 구조를 밀·보리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지시하고, 밀 재배를 독려함과 동시에 밀가루 가공 공장의 개건·현대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업 전문가들은 이같은 변화에 대한 중간평가로써 ‘허울뿐인 대책’이라고 한목소리로 꼬집었습니다.

탈북민 출신 북한 농업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1월 31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의 식생활 개선을 위해서는 ‘탄수화물’보다 ‘단백질’ 섭취를 늘려야 하는데, 북한 축산업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조충희] 한국의 경우 실질적으로 1인당 단백질원인 고기와 달걀 소비량이 많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루에 필요한 단백질, 지방, 비타민 등 각종 영양원이 골고루 충분히 보장되면 1인당 곡물 소비 기준이 (한국만큼) 내려가도 됩니다. 근데 북한은 결정적으로 축산업이 발전하지 못해서 단백질원인 고기와 달걀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까 빨리 배고프고, 1인당 탄수화물 소비 기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김혁 선임연구원도 (1월 31일) RFA에 절대적인 곡물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축산업 발전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진단합니다.

[김혁] 한국의 경우 쌀 소비량 이외에 다양한 것을 많이 소비합니다. 밀도 그렇고요. 특히 축산업의 경우 단백질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쌀 소비량은 계속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여러 가지 먹을 것들이 풍족하다 보니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북한의 경우 여전히 곡물 소비량이 굉장히 높고, 이걸 낮추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축산업,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여러 분야의 성장이 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수산업, 축산업 등이 성장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정체돼 있는 거죠.

실제로 한국에서는 곡물 소비량의 감소와 반대로 육류 소비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농업전망 2024’에 따르면 지난해 돼지고기와 소고기, 닭고기 등에 대한 1인당 소비량은 60.6kg으로 전년도보다 증가했으며, 이미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앞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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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visits a Farm No. 1116 of KPA Unit 810 2017년 9월 29일, 평양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서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조선인민군 제810군부대산하 1116호 농장을 방문하고 있다. /KCNA via Reuters (KCNA/REUTERS)

‘밀 재배 확대’, ‘닭공장 현대화’ 노력에도 갈 길 멀어

실제로 한국 통계청의 ‘2023 북한의 주요통계지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북한 1인당 하루 단백질 공급량은 55.1g인데, 이는 한국의 1인당 하루 공급량인 113.3g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에 대해 조충희 연구소장은 축산업이 발달하면 국가가 강제적으로 식량 소비 다변화를 꾀하지 않아도 양곡 소비 감소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충희] 삼겹살을 먹고 집에 와서 밥을 먹는 사람은 없잖아요. 같은 맥락이죠. 식생활 문화 개선에서 북한의 제일 큰 문제가 단백질원으로 되는 축산물 생산량이 수요에 비해 엄청나게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 라면, 빵 등으로 대체할 수 있는데요. 이런 걸 자체적으로 밀과 보리를 심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말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는 지난 8일, 딸 김주애와 함께 황해북도 황주군 광천 닭공장을 현지지도한 바 있습니다.

또 전국의 닭공장을 개건해 현대화할 것을 주문하며 북한 주민에게 더 많은 닭고기와 달걀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닭을 사육하고, 유통∙보관할 수 있는 전기와 냉장 시설이 열약한 데다 우수한 품종과 사료도 부족하기 때문에 닭고기 생산을 늘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관측입니다.

이런 가운데 김 선임연구원은 북한 당국이 식량 개선의 돌파구로 밀가루를 선택한 방향성은 옳다고 평가했습니다. 변화하는 기후에는 밀 생산이 더 적합하고, 면적대비 생산량에서도 밀이 옥수수보다 효용성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 선임연구원은 밀 생산을 위한 환경이 아직 여의치 않다고 덧붙이면서, 밀 재배에 필요한 원자재와 기반 시설 등이 갖춰지지 않아 생산성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혁] 밀을 키우려고 하더라도 종자부터 시작해서 비료도 일정 부분 필요한데요. 물론 옥수수보다는 영양분을 덜 필요로 하지만, 밀 생산 구조에 맞게 변경하는 기반 시설도 필요합니다. 그런 부분들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성은 여전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밀 생산을 ‘뒷받침할 수 있느냐’의 역량 문제거든요. 비료 생산부터 시작해서 기계, 농지 정리, 기반 등이 조성이 안 된 상황에서 북한의 정책이 사실 단기간에 효과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거죠.

한국의 양곡 소비량 감소와 대조적으로 북한에서는 양곡 부족 문제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북한의 식생활 다변화와 식량난 해결 등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조충희] 기본이 해결되지 않고, 빵이나 라면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전체적인 식량 소비 기준이 줄어드는 건 아니거든요. 식생활 문화라는 게 여러 가지 다양성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의 건강을 얼마나 잘 보장하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가가 정말 좋은 소비문화가 아니겠습니까. 근데 북한은 그게 해결이 안 되니까 전체적인 식량 소비 기준이 높은 건 알지만, 밀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잘못된 거죠.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