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한반도 톺아보기'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일본에 위로전문 보낸 북 , 군축 협상 대비 사전 작업
<기자> 마키노 기자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최근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해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위로전문을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이 일본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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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노 요시히로]네, 김정은 총비서가 기시다 총리를 '각하'라고 부르면서 위로 전문을 보냈습니다. 자연재해에 대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일본 총리에게 위로 전문을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고영환 한국 통일부 장관 특별 보좌관은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름이 위로 전문에 사용된 것은 일본에 접근하려는 의사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분석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미일 협력을 무산시키거나 북일 협상에 의사가 있다는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저도 이런 지적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북한 입장은 북일협상 자체에 큰 매력을 갖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이 일본과 협상에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국교 정상화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상당한 경제적 지원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국교 정상화의 조건으로 일본인 납치 문제와 핵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 미사일 개발을 계속할 것이란 의사를 명확히 하는 상황에서 북일 국교정상화의 길이 열리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이번에 일본에 접근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은 올 가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전제로 필요한 전략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내년 1월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핵 군축 협상을 비롯한 대북 제재 해제를 이끌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 정치 전문지인 ‘폴리티코’는 2023년 1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대북 핵군축협상 가능성을 보도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핵 군축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은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의 핵 폐기를 포기하고 핵 군축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북한의 핵 위협을 받아야 하는 한국과 일본이 강하게 반발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북한은 그때 일본이 반발하지 않도록 사전 관계 개선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핵 군축 협상이 합의될 경우 북한은 ‘현실적으로 핵 미사일 문제가 해결됐다’고 일본에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일 간 국교 정상화를 위한 장애물도 없어진 거라고 주장하며 일본에 국교 정상화를 제안할 것 같습니다. 북한은 사실상 지금부터 그런 준비를 시작했다고 봐야 합니다. 아마 오는 2월 평양에서 열리는 파리 올림픽 여자축구 예선경기나 3월로 예정된 남자 월드컵 아시아 예선경기 일정을 이용해 일본 측에 더 접촉을 시도할 것 같습니다.
<기자> 지난해 북일 간에 접촉이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올해 북일 관계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이미 일본 정치인 중 일부는 최근 김 총비서가 보내온 메시지(위로 전문)에 흥분하면서 이번 기회를 이용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고 관계 개선을 추진해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낙관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현재 납치 피해자와 그 가족들뿐만 아니라 일본인 모두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작년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강조했듯이, 북한은 핵 미사일 위협을 더욱 강화하려는 태도에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긴장 완화를 위해 대화는 중요하지만, 정치인들이 너무 서두르는 자세는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일단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기회로 여긴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은 핵 보유와 제재 해제를 위해 납치 문제 해결에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납치 피해자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핵 미사일 문제 해결을 포기하는 것은 일본의 안전보장 측면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일본은 북한의 노림수를 파악하고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해 안일한 타협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다행히 일본의 외교 및 방위 당국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과 북한은 접촉을 계속할 것 같지만, 쉽게 타협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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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 트럼프 재선 전제 외교적 승부수 던져
<기자> 북한이 남북 관계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천명했습니다. 또 지난 7일 황해남도 강령군 등암리부터 연안군으로 이어지는 해안과 섬에서 사격훈련과 해안포를 동원한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최근 이러한 북한 움직임의 배경과 의도를 어떻게 분석하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북한은 한국과 관계에 대해 '통일을 포기한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정리했습니다. 또 올해 초부터 포사격이나 군수공장 시찰 등 군사적인 측면에서 도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일본에 대해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내온 부분과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선다는 전제 하에 북한이 던진 외교적 승부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면 재빨리 핵 군축 협상과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미북 간 협상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연히 한국과 일본은 반발할 겁니다. 한국과 일본은 원래 미국 정부에 대해 북한과 핵 군축 협상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앞으로 한국을 본질적인 동족관계가 아닌 전혀 관계 없는 외국으로 보고, 한반도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 강요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원래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라고 주장해왔고, 미국도 이를 지지하며 북한 핵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을 배려해 왔습니다. 북한은 앞으로 한국의 주도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기반을 세우기 위해 동족관계를 부정하며 다른 국가 관계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군사 도발도 계속하고 있지만, 이는 미북 협상을 하기 전까지 긴장을 최대한 고조시키면서 한미일 사이에서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는 목소리를 더 많이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2017년에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높인 뒤 2018년에 갑자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 봄이 왔다”며 무조건 대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북한은 한국이나 일본, 미국에서 사실상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더 좋다는 목소리가 많아지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 올해도 남한을 대상으로 한 위협과 도발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특별히 북한의 노림수는 뭐라고 보십니까? 또 도발의 수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마키노 요시히로]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할 때, 개별 행동이나 발언에만 집중하면 전체적인 맥락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사 도발과 관련해 실제 공격 여부를 고민하거나, 일본에 보낸 유화적인 메시지가 대화로 이어질지에 대한 생각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국에 대한 군사 도발, 남북 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 일본에 대한 유화적인 메시지 등 모든 것이 김정은 총비서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 내 각 부서는 서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유일하게 최고 지도자만이 전체적인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모든 사안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지진에 대한 위로 전문, 한국에 대한 관계 정립, 군사 도발 등 이 모든 것이 연관성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북한은 가난한 나라이기 때문에 외교적인 힘이 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잠재적 노선들의 효율성을 저울질하면서 자신을 위한 최선의 외교 전략을 세우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대한 군사 도발과 일본과의 대화가 모순되는 행동처럼 보일 수 있는데, 단지 한미일 관계를 이간질하기 위한 수준의 전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을 전제로 북한이 가진 외교적 역량을 통해 새로운 미북협상에 집중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시작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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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앞서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심각한 도발에 대해 철저한 응징이 있을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김정은 총비서도 “전쟁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오히려 초토화되는 것은 한국일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이 정말 남한과 전쟁에 대한 확고한 의지나 준비태세가 갖춰져 있다고 보십니까?
[마키노 요시히로]앞서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북한은 절대 자살 행위를 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북한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체제 유지입니다. 북한은 최근 경제개혁도 중단하면서 시장 경제를 단속하는 것도 체제 안전을 원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현재 북한이 하고 있는 여러 가지 행동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얻어내기 위한 목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북한이 윤석열 정부에 강한 태도를 보이면 보일수록,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안정을 더욱 원하게 될 것입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한국 정부가 전투기로 폭격을 주장했을 때, 미국이 지지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노림수는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게도 부담이 되는 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가 재등장하면 미북 협상을 시작하는 환경이 마련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과정 속에 무력 충돌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북 협상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미국과의 충돌은 최대한 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일본과 한국은 바이든 정권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한미일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여러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겁니다.
<기자> 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이었습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