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긴급 진단] ② “혁혁한 성과”라지만 현실은 ‘암울’

2018년 9월 12일 평양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북한 주민이 계산원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
2018년 9월 12일 평양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북한 주민이 계산원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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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달 열린 북한 노동당 제8차 전원회의에서 올해 상반기 경제 부문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 없이 "혁혁한 성과"를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북한 내부로부터 들려 온 소식과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말하는 성과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이 경제 부문에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면은 찾아보기 어렵고, 오히려 북한 주민의 경제 활동을 더욱 옥죄는 통제와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북한 경제 긴급 진단] 오늘은 2023년 상반기 북한의 경제 상황을 한덕인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말뿐인 '자화자찬'에 주민 불만 커져

“당과 인민은 올해 상반기에당 건설과 국익수호, 경제건설, 문명건설을 비롯한 각 방면에서 혁혁한 성과들을 쟁취하였다.”

지난 21일 북한 노동신문이 6월 중순 평양에서 사흘간(16~18일)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결과에 관해 수록한사설입니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 결정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제목의 사설은 올 상반기 경제 부문에서 “혁혁한 성과”라는 자화자찬으로 일괄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북한 내부 소식통들이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한 내용에 따르면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 사이에서 “말로만 끝나는 회의는 하지 말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6월 2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당 일꾼들과 간부들을 평양에 불러 놓고 며칠씩 행사를 치르는 동안 지방 주민들은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다”며 “수많은 국가 회의에도 민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전원회의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도 북한 당국이 주장한 ‘혁혁한 성과’가 무엇을 뜻하는 지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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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3일, 북한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에서 한 여성이 빗속에서 전기자전거를 타고 있다. /AP (Cha Song Ho/AP)

일본의 학자이자 언론인인 문성희 박사는 (6월 21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지난달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이례적으로 연설하지 않은 것은 과시할 만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성희]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9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상반기 경제 부문 성과와 결함, 그리고 하반기에 힘을 놓아야 할 과업들이 제기됐습니다. 성과라고 해도 구체적인 수치는 전혀 없고, 추상적인 말들을 나열하는 것이 북한 보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회의에는 김정은 당 총비서도 참석했지만, 보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상반기 성과라고 하면 금수산태양궁전 인근에 있는 평양시 화성지구 1단계 1만 세대 주택 건설이 마무리됐다는 정도입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도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 당국이 올 상반기 경제 부문에서 이룬 ‘혁혁한 성과’는 평양시 살림집 건설 사업에 관한 보고가 거의 유일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숫자도 제시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것은 문제가 있고요. 최근 김정은 총비서의 경제 시찰도 많지 않고, 주로 김덕훈 내각총리에게 그런 걸 맡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최고 지도자가) 그런 성과를 평가할 만한 뚜렷한 요소가 없다는 것이고요. 주민들은 너무 고생하고 있습니다.

또 올해 초 북한이 제시한 12개 중요 고지와 관련해서도 구체적 수치 없이 막연하게 “목표를 달성했다”거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 항목도 많아 주택 건설 외에는 내세울 만한 성과를 거두한 못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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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0일, 평양326전선종합공장에서 공장 근로자가 장갑을 벗고 있다. /AP (Wong Maye-E/AP)

“전력 부문에서 성과 없는 것이 가장 심각”

북한이 강조한 12개 중요 고지 중 전력 부문에서 성과가 없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함경남도 고원군의 한 주민 소식통은 (6월 14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최근 평양을 제외한 지방 주민들은 전기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며 “중앙의 지시로 생산된 전력이 평양시에만 공급되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특히 수력발전소가 많아 전력 공급이 비교적 잘 되던 함경남도마저 올해는 하루에 1~2시간도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상황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성희] 정말 심각한 것은 전력 부문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전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공장 가동도 제대로 못 하고 그렇게 되면 일용품 등의 생산도 침체되지요. 앞으로 경제가 잘되느냐, 마느냐는 전력에 달려있다고 보는데, 그 부문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좀 걱정됩니다.

미국 워싱턴의 민간연구소인 ‘스팀슨센터’가 최근(6월 14일) ‘북한의 전력 사정’(North Korea's Energy Challenges and Potential for Future Cooperation)을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북한이 전력난 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스팀슨센터의 마틴 윌리엄스(Martyn Williams) 선임연구원은 이날 행사에서 미얀마와 북한의 밤 시간대를 비교한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북한의 밤은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미얀마보다 빛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꼬집었습니다.

나탈리아 슬라브니(Natalia Slavney) 스팀슨센터 연구원도 이날 북한의 전력난은 올해도 계속 이어지는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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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자 위성사진으로 북한과 미얀마를 촬영한 야간 위성사진. 윌리엄스 연구원은 북한사진과 달리 미얀마의 일부 주요 도시에서는 거리 조명과 차량 등의 불빛으로 인해 도로 모양의 윤곽이 드러난다고 밝혔다. /Martyn Williams (Stimson Center)

시장 활동은 더 단속 … 국가가 모든 것 통제

올 상반기 북한이 내세울 만한 경제적 성과가 많지 않고, 주민들의 생활고는 악화하는 가운데, 당국은 시장 활동에 더 깊숙히 개입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물품 거래와 고용, 외화 사용 등 여러 경제활동을 단속하고 통제함으로써 국가 중심의 계획 경제를 더 강화하는 모양새입니다.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4월 4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전국에서 외화사용을 금지한다는 지시가 내려졌다”며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가 있는 주민은 가차 없이 단속해 몰수하는 방법으로 외화유통을 통제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또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도 (4월 19일) “북한 당국이 ‘127연합검열조’를 구성하고 주민들의 외화 사용을 전면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집중 검열을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북한 당국이 본격적인 북중무역을 앞두고 주민들에게 외화사용 금지령을 내려 외화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돼 앞으로 외화 사용에 대한 단속은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주민들 사이에 개인적인 고용이나 물품 거래가 금지되고 시장 거래가 아닌 국가 중심의 유통망을 확산하려는 움직임도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일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 당국이 식량 또는 생활용품의 거래나 유통을 엄격히 단속하면서 직접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특히 북한이 국가유통망을 복원하면서 바코드, 즉 상품관리를 위한 막대 코드가 없는 물건은 시장에서 판매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이전 같으면 국영 공장에서 만든 국산품이 여러 경로를 통해 시장으로 유입돼 거래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국가가 엄격하게 개입하면서 시장에서 못 팔게 합니다. 지금 국산품에 바코드(상품관리를 위한 막대 코드)를 붙이는데요. 바코드가 없는 국산품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유통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바코드가 있는 국산품은 시장에서 팔 수 있는데, 이는 생산 공장에서 직접 유입된 것이 아니라 국가 유통망을 통해 시장에 도매가 된 겁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북한 당국이 이런 식으로 국가가 상품의 유통을 장악하고, 국가 상업관리망을 다시 조직하는 방향으로 강하게 추진해 온 결과, 사람들의 장사가 잘 안되고, 수입도 감소하고, 구매력도 떨어지면서 물건과 돈의 유통이 막히는 악순환이 생겼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북한 내부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김정은 총비서가 간부들에 대한 기강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 노동신문은 6월 29일 "내각과 평양시, 각 도 당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27일과 28일에 진행됐다"며, 이날 내각 전원회의에서는 "당의 경제과업 관철에서 나타난 결함과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석 총화하고 이를 시급히 극복하는데서 나서는 대책적 문제들이 제기됐다"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경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단속과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시장에 더 개입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에 따른 주민들의 희생이 더 커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