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김정은 집권 이후 북 여성 지위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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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집권한 이후 가부장제가 뿌리 깊은 북한에서 여성의 역할과 활동이 커지고 있습니다. 부인 리설주부터, 동생 김여정, 딸 김주애, 외무상 최선희까지 김 총비서 주변 여성들의 행보가 두드러지는데요.

이처럼 여성의 존재감이 커지는 데는 선대와 달리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김 총비서의 여성관 때문이란 분석이 제기됩니다.

또 더디지만, 북한 여성의 지위가 조금씩 향상되는 것으로 평가되는 가운데 여성지도자의 등장이 전혀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MZ세대 김 총비서 주변 여성 역할 증가… ‘어머니’ 단어 사용도 증가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아내 리설주와 딸 김주애, 그리고 그의 동생 김여정.

김 총비서가 참석하는 공식 행사에 이들이 등장하는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생 김경희, 그의 아내 김영숙이 전면에 나타나지 않던 것과는 차별화된 행보입니다.

김 총비서는 부인 리설주와 공개적으로 여러 행사에 동행하고 있고, 동생인 김여정은 대미정책과 대남정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또 최선희 북한 외무상도 외교 현안의 최전선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고, 현송월은 김 총비서의 비서실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로 평가됩니다.

리설주, 김여정, 최선희, 현송월, 그리고 딸 김주애까지 김 총비서 주변 여성들의 등장이 잦아지고, 정치, 외교, 사회적 역할이 커지는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성장 한국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김정은 주변 여성들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은 여성에 대한 김 총비서의 관점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성장] 김정은은 우리 기준으로 말하면 MZ세대죠. 아버지 김정일이나 할아버지 김일성과는 상당히 다른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은 아주 어린 나이, 청소년기에 스위스에서 4년 반을 김여정과 같이 보냈고, 그때 배웠던 교육과 경험한 것들이 김정은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봐야겠죠. 그래서 김정은은 최고지도자로서 권력을 장악한 지 얼마 안 돼서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고 모란봉악단 공연에 참석했습니다. 김정은은 자신이 아버지와는 상당히 다른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김정은 시대의 여성관도 이전보다는 상당히 평등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 센터장은 이어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여성의 희생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김 총비서가 집권한 이후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며 과거에 비해 북한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 북한 공식 매체의 보도 내용을 분석한 한국 통일연구원의 ‘김정은 공개활동 보도 분석DB’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이례적으로 ‘어머니’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지난해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동지’, ‘우리’, ‘김정은’, ‘경애’, ‘국가’가 1위부터 5위를 차지했는데, ‘어머니’는 총 214회 언급되며 19위를 차지한 겁니다.

특히 김 총비서 집권 이후 ‘어머니’라는 단어가 처음 순위에 든 것이 특징인데, 2022년 말 김 총비서의 딸 김주애가 등장한 이후 ‘어머니’라는 단어 사용이 크게 증가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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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o Jong 2019년 3월 2일, 김정은 북한 총비서의 여동생 김여정이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를 방문해 화환 헌화식에 참석하고 있다. /AP (Jorge Silva/AP)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외교적 영향력과 파급력도 과거 북한 여성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모습입니다.

이성윤 미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 RFA에 현재 김여정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위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성윤] 김여정은 2020년부터 본인 이름으로 40개 이상의 성명문을 발표했고요. 핵 선제공격 위협도 여러 번 했습니다. 이러한 위협을 하는 북한 여성 인물은 여태껏 없었거든요.

[정성장] 북한에서 여성이 외교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김경희가 백두혈통으로서 간부들에게 김정일처럼 대우받긴 했지만, 김경희가 실세로 모습을 드러낸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김여정은 좀 다르죠. 국정원에서도 한때 제2인자라고 평가할 만큼 김여정이 상당히 많은 것에 관여하고 있고, 특히 대미 정책과 대남 정책을 관장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여성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확실히 높아졌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백두혈통’이라면 여성 지도자도 가능?

이처럼 북한의 정치, 외교, 사회, 경제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는 현상은 ‘앞으로 여성이 북한을 이끌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이어집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여성’이라는 성별보다는 ‘백두혈통’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정성장 센터장은 북한에서 ‘백두혈통’은 특별한 지위를 뜻한다며, 만약 김주애가 김 총비서의 후계자로 지정된다면 모든 사람이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습니다.

또 탈북민 출신 태영호 한국 국민의힘 의원도 RFA에 최근 북한의 변화되는 모습을 볼때 김주애가 비록 딸이지만, 차기 북한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태영호] 북한에서는 ‘남성만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여성은 될 수 없다’, 이런 이미지가 굳어져 왔지만, 김정은만 결심한다면 결국은 그 무엇도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점도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이성윤 연구원도 “남성 우월주의의 문제보다도 백두혈통 가문 안에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김정은 정권에서는 더 우선순위”일 것이라고 관측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일본의 언론매체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최근 (지난 11월) RFA에 김 총비서의 후계자로서 김주애에 대한 생각을 묻는 말에 대부분 북한 주민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대부분 부정적이었어요. 첫째로는 “아직 나이가 어린 애인데, 무슨 후계자냐. 아직 멀었다”라는 반응이었고, 둘째로는 역시 “여자가 어떻게 후계자가 될 수 있냐”는 반응이었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한국이나 일본보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지 않습니까. “여자는 말도 안 된다”라는 식의 반응이 내부 협조자들 입에서 많이 나왔어요. 그런 면에서 부정적이었는데, 또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의견들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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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th anniversary of the founding of the Korean People's Army 2024년 2월 9일 공개된 이 사진에서 김정은 북한 총비서와 그의 딸 김주애가 북한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창건 76주년을 맞아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KCNA via Reuters (KCNA/via REUTERS)

느리지만 , 북 여성 지위 계속 향상 중

여성의 지위 향상과 역할의 확대는 특정 계층뿐이 아닌 일반 여성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김성경 한국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특히 시장의 경제 활동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엿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성경] 북한의 시장화라는 맥락에서 여성들이 상당히 약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비공식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여성이고요. 그리고 여성들의 경제적 활동 없이는 과연 북한이 지금같이 국경을 닫은 상황에서 계속 경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도 상당히 의문스럽죠.

하지만 김 교수는 “민주화 과정과 함께 역동적으로 변화한 한국 사회에서도 성평등을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북한 체제에서는 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 센터장도 속도가 더디긴 하지만,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는 계속 향상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정성장] 북한의 간부 정책 중에 흥미로운 점은, 같은 능력이라면 여성을 더 배려하는 정책이 김정은 집권 이후 채택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그동안 간부의 지위에 오르지 못했던 여성들이 능력만 있으면 간부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과거보다 많아졌다는 것이 북한인권백서에 나와 있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군대의 영향력이 큰 사회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계속 향상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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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과 혁명학교 학생들이 춤추는 모습. /AP (Kim Kwang Hyon/AP)

최고지도자 김 총비서 주변 여성들의 역할이 두드러진 가운데, 딸 김주애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기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단정은 어렵게 됐습니다.

또 시장 경제에서 여성 비중이 커지고, 그동안 소외됐던 여성들의 간부 참여 기회가 많아지면서 앞으로 북한에도 우먼 파워, 즉 여성 지위의 향상으로 가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성경] 가부장제가 굉장히 뿌리 깊은 북한 사회에서 과연 여성 지도자가 가능할 것인가, 만약에 가능하다면 저는 북한이 이제 그 어떤 사회보다도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민주적인 정치적 구조가 여전히 구축되어 있지 않은 북한에서 만약 여성이 다음 지도자로 등극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4대 세습을 넘어서는 또 다른 맥락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측면에서는 앞으로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