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네 끼 먹던 나, 이젠 두 끼도 안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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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한국 국민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5.8kg으로 역대 최소치를 기록했습니다. 오히려 안 먹어서 영양 섭취가 부족한 사람이 늘고 있는데요. 한국에 정착한 일부 탈북민들도 북한에서는 하루에 세 끼 이상 꼬박 챙겨 먹었지만, 지금은 두 끼도 채 먹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먹는 것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한국에서 식사는 ‘즐기는 문화’로 받아들이면서 남북 간의 경제적, 문화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천소람 기자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달라진 식습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짚어봤습니다.

아침 거르고 , 저녁은 간단히… 탄수화물도 절제

2017년에 탈북해 2019년 한국에 정착한 20대 탈북민 김서영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평소에 아침을 먹지 않습니다. 체중 관리를 위해 아침은 거르고 점심과 저녁은 최대한 간단히 먹습니다.

집에서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삶은 계란과 닭가슴살, 해산물, 두부 등 주로 단백질 위주의 식단입니다. 종종 단백질 우유로 한 끼를 해결할 때도 있습니다.

[김서영] 보통 점심 , 저녁을 먹어요. 아침은 잘 안 먹게 되더라고요. 점심에 한 끼 먹고, 저녁에 먹습니다. 밥은 예전보다 확실히 많이 안 먹는 것 같아요. 집에서 많이 먹는 건 삶은 계란이고요. 또 다이어트를 위해 닭가슴살을 많이 먹잖아요. 관리도 관리지만, 내 몸에 필요 이상으로 지방이 많으면 건강도 안 좋아지고, 여러 가지로 안 좋잖아요.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닭가슴살이나 계란 등 단백질 위주로 챙겨 먹으려고 하고, 채소도 챙겨 먹으려고 합니다.

2010년 북한을 떠나 2011년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김단금( 비단금TV) 씨도 아침은 잘 먹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 일정이 있으면 우유 한 잔에 사과 하나, 점심은 여러 영양소로 구성한 식사를 하고, 저녁은 최대한 과일로 대신합니다.

[김단금] 저는 아침을 안 먹어요. 아침 겸 점심은 밥, 국, 여러 가지 반찬, 채소 등으로 먹으려고 하고, 저녁은 간단하게 먹는 편입니다. 과일로 먹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너무 안 먹으면 좀 배고프니까 아침 9시에 나가야 될 일이 있으면 우유 한 잔에 사과 한 알, 이렇게 먹고요. 점심에 약속이 있으면 점심 한 끼는 챙겨 먹습니다. 하루 한 끼만 잘 먹는 거예요. 저녁은 너무 안 먹으면 안 되겠다 싶어 포도나 간단한 과일로 먹는 편이에요.

하지만 두 사람이 북한에서도 그랬던 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하루 세 끼를 꼬박 챙겨 먹었는데, 김서영 씨의 경우 많게는 네 끼까지 먹기도 했습니다.

[김서영] 하루 세 끼는 기본으로 꼬박꼬박 챙겨 먹었습니다. 많게는 네 끼까지도 먹어봤던 것 같아요. 기름진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야채를 많이 먹으면 소화가 빨리 되잖아요. 북한은 고기보다는 반찬이 많거든요. 반찬이 약 네 가지 정도 된다면 (그중) 세 가지는 야채였어요. 야채가 더 많기도 하고, 고기가 귀중하다 보니까….

하루 두 끼의 주식은 밥과 국이었습니다. 신선한 야채 보관이 힘든 겨울에는 야채를 염장한 반찬이나 김치를 주로 먹었고, 저녁에는 국수나 빵, 만두 등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마저도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입니다.

[김서영] 주식은 밥인데요. 배춧국, 두붓국 등 두부나 야채 음식을 많이 먹었고요. 겨울은 염장을 많이 해요. 신선한 야채가 겨울엔 없다 보니 가을에 야채값이 저렴할 때 야채를 절이거든요. 저녁 한 끼 정도는 면을 먹었어요. 북한은 먹는 면의 80~90%가 옥수수면이에요. 그 면에 된장국, 시래깃국 등을 해서 먹었죠. 가끔은 빵을 해 먹거나 만두를 빚어 먹을 때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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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4일, 평양 려명거리 음식축전소에서 열린 전국김치전시회에서 사람들이 다양한 김치를 둘러보고 있다. /AP (Cha Song Ho/AP)

김단금 씨도 북한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챙겨 먹었는데, 주로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다 보니 출근해서 일을 하다 보면, 쉽게 배가 고파졌다고 말합니다.

[김단금] 아침 출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고, 7시 30분이면 출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을 안 먹어본 적이 없고 점심, 저녁을 거른 적이 없어요. 아침, 점심은 쌀밥을 먹고 저녁 한 끼는 대부분 국수를 먹습니다. 쌀도 귀하다 보니 저녁 한 끼는 국수를 먹죠. 대부분 채소로 반찬을 합니다. 겨울에는 김치가 주재료죠. 무채김치, 깍두기, 배추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등 다양한 김치 종류가 많습니다. 그리고 봄부터는 시금치, 달래 등 채소 위주로 먹죠. 그래서 살이 안 찌나 봐요.

고기는 명절, 생일, 가족의 특별한 행사, 잔치 혹은 결혼식이 있을 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는데, 그렇게 북한에서 먹는 하루 세 끼 식사는 그날을 견뎌내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방식이었다고 김 씨는 회상했습니다.

한국 1인당 연간 양곡 소비량, 북한의 3분의 1… 단백질 소비는 2배

두 탈북민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인의 에너지 섭취량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특히 쌀 소비량이 줄고, 육류 소비가 늘어나는 변화가 뚜렷이 나타나는데, 지난달 28일 한국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3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2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1세 이상 국민 가운데 영양 섭취 부족자 비율은 17.9%로 지난 10년 사이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영양 섭취 부족자’는 에너지 섭취량이, ‘한국인 영양 섭취 기준’ 필요 추정량의 75% 미만임과 동시에 칼슘, 철, 비타민A, 리보플래빈 섭취량도 모두 평균 이하인 사람을 뜻하는데, 2023년을 기준으로 남성 10대(23.5%)와 여성 20대(25.6%)의 경우 4명 중 1명꼴로 영양 섭취가 부족한 것으로 집계된 겁니다.

또 지난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도 40년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난달 23일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평균 55.8kg으로 전년 대비 1.1% 감소하면서 통계 작성 이래 최소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쌀 소비량은 1984년(130.1kg) 이후 40년 연속 감소하고 있는데, 2019년에 60kg 아래인 59.2kg을 기록한 이후 계속 50kg대에 머물고 있으며, 2024년 1인당 연간 전체 양곡 소비량도 64.4kg으로 전년 대비 0.3%(0.2kg)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에서 양곡 소비량이 계속 줄어드는 이유는, 1인 가구의 증가로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인구가 줄었을 뿐만 아니라 체중 조절을 위해 탄수화물을 피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했고, 특히 먹거리가 다양해지면서 한식 외에 서구화된 음식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반면, 한국에서 육류 소비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업전망 2025’에 따르면 지난해 돼지고기와 소고기, 닭고기 등에 대한 1인당 소비량은 60.1kg으로, 이미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앞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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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grill beef at a Korean barbecue restaurant in Seoul 2024년 3월 8일, 서울의 한 한국식 바비큐 식당에서 사람들이 고기를 굽고 있다. /Reuters (Soo-hyeon Kim/REUTERS)

“이젠 먹는 즐거움을 알겠어요”

북한의 공식적인 양곡 소비량 통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농업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북한 주민의 하루 평균 섭취 곡물량은 약 580g~650g입니다. 이를 일 년으로 계산하면 약 211kg~237kg으로, 한국의 1인당 연간 양곡 소비량인 64kg보다 3.5배 이상 많은 양입니다.

반면, 한국 통계청의 ‘2023 북한의 주요 통계 지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북한의 1인당 하루 단백질 공급량은 55.1g인데, 이는 한국의(113.3g)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단백질, 지방, 비타민 등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보장되지 않다 보니 1인당 탄수화물 소비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단백질 섭취의 부족으로 배가 빨리 고파지면서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간극은 두 문화를 모두 경험한 탈북민들의 식생활에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또 북한에 있을 때와 180도 달라진 자신의 식습관에서 남북 간의 경제적, 문화적 차이를 재확인하기도 합니다.

김서영 씨와 김단금 씨에게 “한국에 정착한 뒤 왜 식습관이 바뀌었냐”라고 묻자, 두 사람은 “‘식사’의 의미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먹는 즐거움’으로 바뀌었다”라고 답했습니다.

[김서영] 양도 그렇고 끼니도 그렇고. ‘밥을 먹는다’라는 의미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북한에서 한 끼 식사는 살아가야 하니까 먹어야 했어요. 장사를 하든 운동을 하든 에너지가 있어야 하잖아요. 밥을 먹어야 힘이 나니까 살아가기 위해 먹었던 거 같아요. (남북 간) 사람들이 음식을 대하는 자체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먹는 즐거움’이라는 표현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해를 못 했는데, 살다 보니까 먹는 즐거움이라는 것도 많이 느꼈고, 현재 저도 먹는 즐거움을 느끼고 사는 것 같아요.

[김단금] 여유인 것 같아요. 마음의 여유. 북한에 있을 때 식습관은, 아침은 안 먹으면 안 되고, 점심도 먹어야 하고 저녁도 먹어야 했어요. 규칙적인 식사 시간이 무조건 있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근데 한국에 와서는 풍족함, 여유, 언제든지 내가 뭘 먹고 싶을 때는 먹을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다 보니, 크게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요.

탄수화물 중심으로 하루에 세 끼 이상 꼬박 챙겨 먹었던 북한, 반면 체중 조절과 외식 문화의 발달 등의 이유로 밥을 잘 먹지 않는 한국.

두 탈북민에게 처음에는 낯설었던 개념이 이젠 일상이 됐고,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먹던 식사 시간이 지금은 그 순간을 즐기는 행복이 됐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