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춘길 선교사 북 억류 10년] ① “김정은 잔혹성 적나라하게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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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돼 '국가 전복 혐의'로 무기 노동교화형을 받은 한국의 최춘길 선교사가 북한에 억류된 지 10년이 됐습니다. 여전히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한국 정부의 석방 요청에도 북한이 일절 답하지 않는 가운데 국제 종교단체와 정부 기관은 이를 극단적인 종교 탄압의 사례로 규정하며, 한목소리로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최춘길, 김국기, 김정욱 선교사의 억류 사례를 통해 기독교를 탄압하는 김정은 정권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데요. 최춘길 선교사의 북 억류 10년을 맞아 한덕인 기자가 7개 국제 종교∙인권단체와 정부 기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국제 종교 ∙인권단체, 선교사 억류 한목소리로 규탄

지난 2014년 12월 중국 단둥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북한 당국에 체포된 최춘길 선교사.

당시 그는 북한 주민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제공하고 성경을 전달하는 활동을 펼치다 발각됐으며, 북한 당국은 이를 '국가 전복 음모 행위'로 간주하고 이듬해인 2015년 6월에 열린 재판에서 무기징역, 즉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했습니다.

[북한 최고재판소(2015년)/조선중앙 방송 ] 피소자 최춘길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60조 국가 전복 음모죄에 따라 무기 노동교화형에 처한다…

이 밖에도 한국 국적의 김정욱 선교사는 2013년 10월 북한 평양에서, 김국기 선교사는 2014년 10월 중국 단둥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각각 체포돼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으며, 10년이 넘도록 가족과의 접촉은 물론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지난 12월 3일, 최춘길 선교사의 북한 억류 10년을 맞아 그를 포함해 김정욱, 김국기 선교사 등 북한에 장기 억류된 한국인 6명을 즉각 석방할 것을 촉구했지만, 북한은 일절 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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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6일 북한은 “정탐·모략 행위를 목적으로 침입한 남한 간첩 김국기와 최춘길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선교사 최춘길 씨가 이날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임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 선교사의 억류 10년을 맞아 미 국제종교자유위원회, 랜토스 재단, 세계기독연대, 영국 의회 북한 연구회(APPG North Korea), 호스티지에이드 등 전 세계 7개 정부 기관과 국제 인권단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단체들은 북한 당국이 최 선교사를 체포, 역류하고,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한 10년 전 결정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으며,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받는 톰 랜토스 하원의원의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 지난 2008년 설립된 ‘랜토스 재단’(The Lantos Foundation for Human Rights and Justice)의 카트리나 랜토스 스웻(Katrina Lantos Swett) 회장은 (12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최 선교사에 대한 부당한 억류는 북한이 종교나 신념의 자유를 전혀 보호하지 않는 국가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랜토스 스웻 회장은 최 선교사에게 내려진 무기 노동교화형을 ‘충격적이며 부당한 처벌’로 규정하고, 억류 기간 가족과의 접촉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그의 생존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황은 잔혹함이 심하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최 선교사에 대한 처벌의 심각성으로 그 부당함이 더 부각되는 사례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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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Graphic (김태이)

미국의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도 최 선교사에 대한 억류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단체의 비키 하츨러(Vicky Hartzler) 위원은 12일 RFA에 "북한은 여전히 세계 최악의 종교 자유 침해국 중 하나로 남아 있다"라며, “미국 정부는 물론 유엔의 특별 절차, 임의 구금에 관한 실무 그룹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억류된 한국 선교사들의 생사 확인과 석방을 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국제 인질 석방 단체인 ‘호스티지에이드(HAW∙Hostage Aid Worldwide)’도 11일 RFA에 “김정은 정권이 억류된 선교사들의 강요된 자백을 통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잠재우려 했다”며 지난 2015년에 열린 재판의 부당함을 꼬집었습니다.

또 이 단체는 특히 2015년 최 선교사에 대한 판결이, 때마침 대한민국 서울에 설립된 유엔 북한 인권 사무소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맞물려 있었다며, 이는 북한의 정치적 신호로 해석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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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북한 매체에 공개된 김국기 선교사 모습. /연합뉴스

선교사 억류 사례로 김정은 정권의 기독교 탄압 재조명

최춘길, 김국기, 김정욱 선교사의 억류를 계기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 행위를 탄압하는 북한의 실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기독교 박해 감시 단체인 ‘처치인체인스(Church in Chains)’의 데이비드 터너(David Turner) 대표는 (11일) RFA에 “북한 내 약 3만 명의 기독교인이 강제 노동교화소에 수감돼 있으며, 이는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한다”라고 밝히고, “이들의 신원과 얼굴이 공개되지 않아 국제적 관심을 끌어내기 어려웠지만, 최 선교사의 억류 사례가 이런 어두운 현실을 들춰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이름이 알려진 한국 선교사들조차 소통이 차단된 채 잔혹한 처벌을 받고 있다면, 이름도 모르는 북한 내 기독교인들의 처우는 상상하기 어렵다”면서, “10년 넘게 억류된 최춘길, 김국기, 김정욱 선교사의 사례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종교 자유 탄압을 더욱 주목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세계기독연대’(CSW∙Christian Solidarity Worldwide)도 최근 발간한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We Cannot Look Away)’에서 최 선교사의 억류 사례를 포함해 북한의 종교 자유 침해 상황을 조명한 바 있습니다.

‘세계기독연대’는 (11일) RFA에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은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진단하면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구금된 이들의 석방을 위해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눈에 띄는 점은 북한은 평양에 러시아 정교회의 운영을 허가한 바 있다”라며 이는 북러 간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풀이했습니다.

기독교 인도주의 단체인 미국 ‘오픈 도어즈’(Open Doors US)의 라이언 브라운(Ryan Brown) 대표도 (12일) “북한 인구의 1% 이상이 교도소나 강제 노동교화소에 갇혀 있으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억압받는 이들의 상황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하다”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모든 협상에서 인권 문제, 특히 종교 자유 침해 문제를 반드시 우선시해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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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Graphic (김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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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10년 넘게 억류된 선교사들의 가족들은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깊은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기독연대’에 따르면 최 선교사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자신의 결혼식까지 미뤄왔지만, 더는 늦출 수 없어 올해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최 선교사의 아들 최진영 씨는 지난 3월 RFA와 한 회견에서 북한 당국이 억류자들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최진영]가족으로서 말씀을 드리자면 사실 북한은 거의 인권이 없는 나라잖아요. 그러다 보니 지금 (억류자들의) 생사 여부도 확인되지 않고, 송환 여부는 더욱 확인이 안 되는 부분이다 보니까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억류자뿐 아니라 전쟁 후 납북자 등에 대해 답변이라도 줬으면 좋겠어요. 한국 정부도 북한에 아예 얘기를 안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북한이 너무 묵묵부답이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는 가족으로서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김정은 정권에 말이 닿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꼭 얘기하고 싶습니다.

또 4천 일 넘게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의 형인 김정삼 씨도 동생의 생사 여부가 가장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삼]가장 걱정되는 건 생사 확인이지 않습니까. RFA 방송도 듣고, 북한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서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는 알잖아요.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탈북민의 증언을 들었을 때 '(동생의) 목숨이 상당히 위험하지 않나' 싶고,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임현수 목사나 미국에 있는 김학성 선교사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낸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상하기가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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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욱 선교사가 2014년에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춘길, 김국기, 김정욱 선교사 북한에 억류된 지 10년이 넘으면서 다시 한번 국제사회가 북한의 종교 탄압과 비인권적인 행동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부당하게 억류된 선교사들과 이들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끝내기 위해 국제사회의 노력은 북한의 답변을 끌어낼 때까지 지속돼야 한다고 각 단체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이를 계기로 북한에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는 날까지 외교적 압박과 실질적인 대책 마련의 필요성은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전망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