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북한이 국경과 사회 통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북한 주민의 삶은 더 궁핍해졌습니다. 또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도 매우 어려워졌는데요. 2023년 5월,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가 북한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생생한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북 압축파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내부 소식이 담긴 파일을 열어보겠습니다.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합니다.]
“새해 때 식량 배급 안한 지 오래”
[기자]김일혁 씨, 안녕하세요. 새해를 맞아 나눌 첫 이야기는 북한 주민의 식량 사정입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특별 배급을 받는다는데, 이 시기에는 북한 주민이 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건가요?
[김일혁]일단 새해가 되면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게, '올해는 또 어떤 방침이 떨어질까'입니다. 솔직히 '희망찬 새해다, 기쁘다'라는 생각보다는 은근히 걱정하는 분위기예요. 해마다 새해가 되면 어떠한 방침을 발표합니다. 그럼 이걸 통제하는 관리들, 간부들이나 살기 좋아지지 일반 주민은 가장 고생하고 착취를 당하거든요. 그래서 불안감이 먼저 밀려옵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식량 생산량을) 350만 톤을 계획했는데, 올해는 농사를 더 잘 지어서 370만 톤을 해내야 된다는 식으로 지침이 떨어지면 농사꾼들은 '작년에도 고생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집에 있는 식량과 재산까지 뺐겨도 그 계획을 못 해냈는데, 올해는 농사가 잘될 리 만무하고, 죽었구나' 라며 오히려 한숨을 쉬는 분위기가 많은 거죠. 그리고 식량 분배를 준다는 건 없고요. 국가가 줘본 적도 없고, 이젠 주민들이 기대도 안 해요.
[기자] 새해 때마다 주민에 대한 식량 분배가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건가요?
[김일혁] 예, 맞습니다. 전혀 없어요. 준다는 허위 보고만 작성하니까, 아마 외부에서는 배급을 주는 걸로 알고 있을 거예요. 실질적으로 (국가가) 배급을 줘본 적이 없어요. 제가 어릴 적에는 부모님에게 배급을 줬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저는 배급이라는 게 어떻게 생긴 지도 몰라요. 오직 평양시에서만 배급을 준다는 정보를 들어서 알지, 제가 살던 지방에서는 배급을 준다는 건 까마득한 옛날 일입니다.
김정은 정권 시기로 넘어오면서 농사 짓는 방법을 달리했거든요. 국영 체계인데, 농장원의 세대당 인원 수에 따라 몇 천 평 혹은 몇 종, 이런 식으로 논과 밭을 나눠주거든요. 이렇게 땅을 주고 ‘옥수수의 경우 한 평당 2kg 혹은 1.5kg을 바쳐라’, 이런 계획 기준을 세웁니다. 그런 식으로 국가 계획을 하고, ‘여기서 남는 것이 있으면 가져다 먹어라’ 이런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분배라고 볼 수 없는 거죠. 다시 말해, 지주가 땅을 농사꾼들에게 나눠주고 ‘여기서 농사를 지어 몇 퍼센트를 바치고, 몇 퍼센트를 너희들이 먹어라’ 이런 겁니다. 근데 그 수준에 도달하는 게 흔치 않거든요. 국가에서는 항상 기준을 높이 세워놓으니까 정작 집에 가져갈 식량이 없어요. 그러니까 농사를 지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국가에 바치는 것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가택 수색을 받는 형편이거든요. 식량 사정이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기자] 상황이 그렇다보니 연초에 식량 가격도 만만치 않겠군요.
[김일혁] 1월과 2월에 (식량값이) 좀 오르죠. 기본적으로 식량값이 제일 싼 시기는 11월과 12월, 두 달 기간이고요. 1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식량값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해요. 3월 쯤부터 값이 폭등하는 시기라고 보는 거죠. 북한에서는 매해마다 이렇게 반복되는데, 식량 가격이 제일 비싼 때는 5월입니다. 농장원들의 삶이 가장 어려운 시기는 해마다 3월부터 시작되거든요. 이때부터 식량 없이 굶는 식구가 엄청 많은 거죠. 그러니까 3월부터 6월 초까지가 제일 심각하게 식량난을 겪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때 분배를 줍니다. 북한에서는 '절량세대 식량 공급'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식량이 떨어진 집을 '절량세대'라고 하는데, 이들이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식량을 주는 겁니다. 또 이 시기는 농사를 시작하는 봄철이기도 합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배가 불러야 한다는 명목 아래 주는 거죠. 그런데 거의 흉내만 내는 수준으로 조금씩 줍니다. 옥수수 몇 kg씩 밖에 안 주거든요.
[기자] 수확해 뒀던 식량이 점점 떨어지는 시기에, 봄철 농사일은 해야 하니까 소량의 식량 분배를 한다는 거네요?
[김일혁]네, 그렇죠. 조금이라도요. 그렇다 보니 개인들은 국가에서 준 분배가 아니라 도둑질을 해서 먹고 살거든요. 훔쳐서 땅에 묻거나 산에 감추고, 이렇게 감췄던 식량을 가지고 있다가 그걸 소분해서 나눠 먹다보니 그나마 오랫동안 버티는 사람이 3~4월달까지 갈 수 있는 겁니다. 그때는 솔직히 식량이 없어요. 장마당에 나가도 예전 같지 않아요. 식량을 파는 사람 자체도 많지가 않고요. 그때가 제일 식량이 바닥나는 상황인 거죠.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건, 지방 사람들의 기준을 말씀드리는 거고요. 제가 들은 바로는 북한 평양시만 사회주의를 (실현)합니다. 평양 시민은 사회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요. 그런데 지방 사람들은 평양 시민들이 누리는 것의 100분의 1 수준도 안 되는 거죠.
“식량 있어도 가택 수색으로 국가에 빼앗겨”
[기자] 그나마 식량이 좀 풍요롭다고 할 수 있는 시기가 있나요?
[김일혁] 아무래도 11월과 12월이 제일 풍요로운 시기죠. 가을은 사람들이 추수해서 곡식을 수확하는 시기잖아요. 그러니까 이 시기(11월~12월)만큼은 '있을 때 먹자, 아껴 먹으려고 남겨뒀다가는 어차피 빼앗기니까 있을 때 먹자'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떡도 만들어 먹고, 부침개도 부쳐 먹고, 고기도 사다 먹고, 그렇게 이 기간만은 최대한 먹습니다. 식량이 똑 떨어질 망정 어차피 가지고 있어봐야 가택 수색을 받고 빼앗기거든요. 가택 수색은 12월에 합니다. 식량이 나오는 시기가 기본적으로 10월, 11월이니까 10월부터 12월까지 최대 석 달 정도는 배불리 먹는 시기라고 볼 수 있죠.
[기자] 새해에 아사자도 많이 발생하나요?
[김일혁] 정말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은 1월부터도 식량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수 인원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러다가 2월쯤 되면 좀 많아지고 3월쯤 되면 더 많아지는데, 기본적으로 길거리에서 아사자를 보게 되는 건 3월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누구 아버지가 굶어 죽었대, 누구 할머니 굶어서 돌아가셨대' 등 이런 이야기들이 들리기 시작하는 게 보통 3월입니다. 해마다 똑같지만, 코로나 기간에는 엄청 더 심했고요. 코로나 이전에는 아사자 소식이 별로 없었어요. 근데 코로나 기간에 아사자가 많이 나온 거죠. 기본적으로 3월에서 5월, 이렇게 석 달 동안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습니다. 코로나 기간이 고난의 행군 시기 때보다 더 어려웠던 것만은 분명한데, 사실 제가 북한에 있던 때도 코로나 기간이었거든요. 제가 2023년 5월 7일에 대한민국에 왔는데, 그때까지도 코로나 해제가 안 된 상황이었어요. 코로나가 지금은 어느 정도 해제됐을지 몰라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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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인터뷰에 앞서 사전 질문을 드렸을 때, 김일혁 씨가 탈북하기 직전 길거리에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주민을 직접 목격하셨다고 했는데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김일혁] 장소는 황해남도 강령군이었고, 그때가 2023년 4월 15일 명절(태양절)이라 쉬었거든요. 제가 살던 동네는 아닌데, 그곳의 농사를 짓는 관리장이 그 당시 식량 밑천이 좀 있었나봐요. '명절이고 조용할 것 같으니까, 와서 좀 사가라'고 해서 갔거든요. 그래서 갔는데, 그 동네를 들어가면서 보니까 울타리 밑에 사람이 쓰러져 있더라고요. 사람이 죽는 걸 수없이 많이 봤기 때문에 무덤덤했죠. 사람이 죽은 거에 대해서 그다지 공포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워낙에 총살 같은 것도 많이 보고 하니까요.
그런데 식량을 파는 아주머니한테 물어보니, 그 쓰러진 사람의 온 집안 식구가 다 굶어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 둘이 있고, 아주머니(아내)가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식량을 얻어올 목적으로 돈을 벌러 집을 나간 지가 한 달이 넘었는데, 애들 둘은 모두 굶어 죽었고, 저기 쓰러져 있는 사람이 가장인데 마지막 남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어제 오후부터 저기 누워있는 걸 봤는데 아직 안 죽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딱 보기에도 노숙자 행색보다 더 초라한 모습인데 너덜너덜 해진 옷을 입고 거의 반송장에 가까운 너무 비참한 모습이었거든요. 현재 북한이 그런 상황입니다.
[기자] 네, '북 압축파일' 오늘은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 해마다 열악해지는 북한 주민의 식량 사정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김일혁 씨,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김상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