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러시아 지원으로 지방 병원 현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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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이 '지방 발전 20×10' 정책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매년 20개 시군에 병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이미 러시아가 지난해부터 상당량의 의료 장비와 의약품, 의료 인력을 북한에 지원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으로 전해졌습니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도 러시아의 지원에 힘입어 지방 병원 현대화 사업을 전개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하지만 탈북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에 병원이 없는 게 아니고 이를 관리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며, 기존 병원부터 챙기라는 쓴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김 총비서의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건데요. 서혜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 전직 외교관 " 지난해 11 월부터 북에 상당량 의료 지원 "

[ 조선중앙통신 ] 해마다 전국 각지의 20 개 시군이 , 변하는 거창한 중흥의 년대를 드팀없이 이어가려는 위대한 당 중앙의 웅대한 뜻에 받들려 , 새 시대 지방 발전 정책 실행을 위한 2025 년도 대건설 투쟁이 개시됐습니다 .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지난 6일 ‘지방 발전 20×10 정책’의 추진 현장인 평양시 강동군 병원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인 7일 보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총비서는 “지방의 낙후성, 후진성은 물질생활 영역보다도 문화생활 영역에 더 많이 잠재해 있으며 도농 격차가 가장 우심(극심)하게 나타나는 공간이 바로 보건과 위생, 과학 교육 분야”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강동군과 용강군, 구성시 등 3곳에 시범적으로 병원을 건설하고, 내년부터 매년 20개 시군에 병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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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비서가 연설에서 “금년(올해)에는 강동군과 룡강군, 구성시에 병원을 서로 다른 규모로 하나씩 시범적으로 건설하고 명년도(내년)부터는 해마다 20개 시군씩 병원들을 동시에 건설하자”고 밝혔다고 7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지난해 1월 북한은 앞으로 10년간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공장을 건설한다는 ‘지방 발전 20×10 정책’을 추진할 것을 발표한 바 있는데, 그 범위를 병원으로 확대한 겁니다.

이와 관련해 박종철 한국 경상국립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11월에 만난 전직 외교관 출신 알렉산드르 보론초프 러시아과학원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 과장의 말을 인용해 “2024년 11월 이전부터 많은 의료진이 파견돼 있고, 상당량의 의료 기계가 북한에 들어갔다”라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또 그는 “(보론초프 과장이) 곡물이나 의약품과 같은 인민 생활 개선 분야에 대해 러시아가 (북한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보론초프 과장은 2018년 3월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가 최선희 북한 외무성과 면담하는 자리에도 참석했던 인물입니다.

박 교수는 현재 북한이 러시아를 위해 군대를 파병했고, 비전투 병력에 대한 추가 파병 가능성이 제기되는 때에, 러시아가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 박종철 ] 러시아로서는 다 현금으로 ( 대가를 ) 지불할 수 없고 , 북한으로서도 ( 러시아 화폐 ) 루블화를 받을 이유가 별로 없다고 봅니다 . 우선순위상 석유나 곡물이 , 먼저 받아야 하는 물품일 것이고 , 그다음으로 핵과 탄도미사일과 같은 기술 , 그다음 우선순위는 자연스럽게 의약품이 되는 것 같습니다 .

또 보론초프 과장에 따르면 앞으로도 러시아의 의료 지원과 협력이 계속될 예정이기 때문에, 김 총비서도 이를 믿고 지방 병원 건설 계획을 내놓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북러 양국이 2023년 9월과 지난해 6월 정상회담을 한 이후 전방위적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보건의료, 의학교육, 과학 분야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RFA의 주간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는 12일 RFA에, 북러 간 의료 협력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의약품 등을 공급받고 있을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다만 러시아의 지원이 평양에 먼저 공급되고, 그다음으로는 군대 차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방 사람들이 보게 될 혜택은 적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리정호 ] 북한은 중앙집권적입니다 . 먼저 평양부터 챙기고 , 그다음에 군대로 들어갈 확률이 높습니다 . 결국은 , 군대를 파병한 대가잖아요 . ( 시범 건설 지역으로 언급된 ) ' 강동병원 ', ' 구성병원 ' 이 모두 군수 산업 지대입니다 . 따라서 대가로 받은 걸 그 병원에는 투자할 수 있겠죠 .

탈북민들 " 이미 시군에 병원 잘 지어놔 기존 병원이나 챙겨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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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5월 당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군인 치료 전문병원인 대성산종합병원을 방문했다고 노동신문이 전했다. /연합

김 총비서가 매년 20개 시군에 지방 병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당장 ‘보여주기식’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 시군에 병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김일성, 김정일 시기에 현대적으로 잘 지어놓은 병원이 많은데, 기존 병원의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새 병원을 건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겁니다.

[ 리정호 ] 김정은이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만들기 위해서 과거에 선조들이 했던 걸 다 무시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왜냐하면 지방에 가면 도병원과 시병원 , 군병원이 있는데 , 70~80 년대에 지어서 잘 만들어진 겁니다 . 북한이 전체 병원을 잘 꾸린 상태예요 . 김일성 때는 오히려 더 튼튼하게 만들었었죠 . 그때는 나라가 잘 살아서 강재도 좀 튼튼하게 들어갔으니까요 .

리정호 대표는 오히려 북한 병원에 전기와 약품이 없고, 의료진들이 배급을 받지 못하면서 병원에서 일할 인력이 부족한 것이 더 심각한 현실이라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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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황해남도 강령군에서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도 지난 11일 RFA에 “북한의 어떤 지역에 있는 병원이라도, 대부분 현대적으로 건설됐다”라며, 지방 병원 건설 계획은 한 마디로 “김 총비서의 쇼(show)”라고 비판했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북한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려 해도, 전기가 부족해 엔진을 돌려 기계를 작동해야 하는데, 엔진 가동에 필요한 연료를 환자가 직접 마련해야 하고, 의료품 부족으로 일회용품을 재활용하는 등 위생적인 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은 몸이 아파도 병원을 찾는 일이 드물고, 오히려 북한에서 ‘주부’라 불리는 개인 의원을 찾는다고 김 씨는 설명했습니다.

[ 김일혁 ] ( 북한에서는 ) ' 주부 ' 라는 말이 집을 방문해 치료하는 개인 의원을 하는 그런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 한 마을에 대개 한 사람씩은 있거든요 . 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 치료법을 물려받아서 치료를 잘하는 분들도 있어요 . 진맥을 짚어보고 이 사람의 병명이 뭐라는 걸 확실하게 진단하거든요 . 평양시에 있는 봉화진료소에서 위암 말기를 진단받은 사람이 있는데 , 그 가족들도 장례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에서 그분 ( 주부 ) 이 암이 아니라며 살려낸 적도 있거든요 .

이처럼 병원을 대신해 ‘주부’ 의원을 찾는 주민이 늘자, 북한 당국이 이들을 단속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북한 주민은 병에 걸려도 실질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실정이라고 김 씨는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 " 의료 장비 , 전력 , 의료진 처우 개선 등이 더 시급 "

박종철 교수도 “북한 자력으로는 의료 체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라며 실례로 아직 완공 소식이 없는 평양종합병원을 언급했습니다.

평양종합병원은 2020년 3월 김 총비서가 착공식에 참석해 그해 10월까지 완공을 지시했지만, 아직 개원 소식은 없습니다.

[ 박종철 ] 오히려 대형 건물 짓는 것은 북한이 잘합니다 . 사실 대형 건물 짓는 것은 100 년 전부터 어느 나라든 못하는 나라는 없잖아요 . ( 안에 ) 내용물을 채우는 게 어렵습니다 . 첫 번째가 의료진이고 , 두 번째는 의료 기구입니다 . 또 의약품은 자체 개발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김인애 한국 통일부 부대변인은 지난 7일 기자 회견에서 북한 병원 건설에 필요한 의료 설비와 자재 등이 대북 제재로 인해 제한적이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 김인애 ] 다방면의 민생 개선을 강조하고 있으나 북한의 부족한 자원 등을 고려할 때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이처럼 북한의 지방 병원 건설 정책도 결국, 북한 주민의 건강 개선보다 김 총비서의 업적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 속에, 보건 의료 분야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기존 병원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의료 장비와 전력 확보, 의료진들의 처우 개선 등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