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북한이 국경과 사회 통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북한 주민의 삶은 더 궁핍해졌습니다. 또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기도 매우 어려워졌는데요. 2023년 5월,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가 북한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생생한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북 압축파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내부 소식이 담긴 파일을 열어보겠습니다. 탈북민 김일혁 씨와 함께합니다.]
새 살림집 부실 공사에 주민들 입주꺼려 ... "이미 인명피해 났을 것"
[기자]김일혁 씨, 안녕하세요. 북한이 지난 2021년 '새 시대 농촌혁명강령'이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그 이후 북한은 전국의 농촌 마을을 '삼지연시의 농촌 마을 수준으로 아주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의 이상촌으로 만들겠다'며 건설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새 살림집에 주민들이 입주하는 상황인가요?
[김일혁] 제가 탈북한 시점에도 봤습니다. 2022년 12월과 1월, 한창 겨울철에도 멈추지 않고 (살림집을) 건설했거든요. 지역별로 현지 시찰을 한 곳 위주로 먼저 건설을 진행했습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현지 시찰을 하면서 다녀갔다고 하는 리나 군 위주로 농촌 마을을 꾸리는데, 언제까지 어떻게 하라는 지침이 내려오면 무조건 건설해야 합니다. 추운 겨울철에도 멈추지 않고 건설을 진행했고요. 그 와중에 제 지인도 새집에 입주했는데, 황해남도 벽성군 장천리라는 시골 마을을 혁명화해서 현대식 주택으로 집을 지었거든요.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빌라 같은 건축물이었어요. 거기에 입주해서 살게 된 지인의 말을 들어보니까 부실 공사로 벌써 벽에 금이 가고 문틀이 흔들린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집에서 살기가 좀 불안하더라." "집에 들어가 살다가 붕괴될까 두려워서 마음 놓고 살 수가 없다"면서, 아직 입주(허가)를 받지 못한 땅집에서 사는 친척네 집에 가서 생활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형식적으로 받은 새집에서는 생활을 안 하는 게 현실이더라고요.
[기자] 방금 말한 '땅집'은 일반적인 단독 주택을 뜻하는 거죠. 대부분 북한 사람은 '땅집'에서 살지 않나요?
[김일혁] 네, 그랬죠. 그러다가 북한 정권이 현재 시골 마을, 동네를 밀집 대형으로 작은 구역에 아파트 형식으로 집을 건설해서 주민을 한곳에 집결하는 겁니다. 근데 주민들이 하는 말이, '본래 살던 땅집에서는 텃밭을 가꿔 채소라도 심어 먹고, 화목을 할 수 있는 나무도 창고에 보관했는데, 그렇게 해도 먹고 살기 힘들었는데, 이것은(새 아파트 건설) 농촌 실태에 맞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파트라는 게 평수가 정해져 있고 협소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창고도 하나 없고요. 또 북한에는 김칫독을 묻는 창고움이 따로 있거든요. 텃밭을 가꿔서 농사라도 지어 먹고살 수 있는 땅 자체가 다 국가 소유로 넘어가고 마는 상황이니까요. 실질적으로는 (주민들이) 불만스러워 하거든요. 근데 북한 정권에서는 입주 행사를 크게 열기도 해요. 그러면 입사증을 받는 주민들이 (감격해) 우는 모습을 찍어서 보도하기도 했고요. 그럴 때는 정말 형식적인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이 눈물을 보이는, 그런 쇼를 했죠.
[기자] 2021년부터니까 북한이 이미 3년 넘게 4만여 세대의 농촌 살림집을 건설하지 않았나요?
[김일혁] 했다고는 하는데 맛보기 식으로 한 거지, 모든 북한 사람이 입주한 것도 아니거든요. 이 지역에 몇 동, 저 지역에 몇 동, 이렇게 조금씩 해서 주민들을 몰아넣기 시작했는데, 집이 없거나 혹은 군관 제대군인, 특류영예군인 등 일부 사람에게만 형식적으로 집을 줬고요. 그리고 아직도 건설 중에 있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당시에도 한창 건설이 진행 중인 지역들도 있었거든요. 소문에는 5년 안에 전국적으로 주택을 완공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볼 때는 5년 안에 못 합니다. 글쎄 한 10년 정도 지나면은 할 수도 있겠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붕괴 사고나 인명피해가 났을 것이 분명하고요. 또 사고 소식이 밖으로 누설되지 않게 비밀을 엄수하는 상황이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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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된 농촌살림집 ?... 전기 없고, 여전히 아궁이 사용
[기자] 새 살림집은 이용 허가증을 받아야만 입주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게 정확히 어떤 개념인가요. 허가증을 받는 순서가 있나요?
[김일혁] '입사증'이라고 부릅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어떤 순서가 있냐 하면 군관 제대군인,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군 장교로 근무하다가 전역한 군인을 북한에서는 군관이라고 부르거든요. 군관 제대군인은 나라에서 우선으로 돌봐줘야 한다는 혜택이 있습니다. 그래서 군관 제대군인의 가족들에게 제일 먼저 입주 우선권을 주는 거예요. 또 교사, 의사 등이 2차 순위권에 듭니다. 그 외에 나머지는 농장원과 노동자를 모두 포함한 일반 사람들이 그다음입니다.
[기자] 김일혁 씨는 새 살림집에 들어가 보신 적 있으신가요?
[김일혁]저도 내부에 들어가 봤는데, 탄이나 나무를 땐 열기로 온돌바닥을 달궈서 사람이 누워 잘 수 있는 구조입니다. 밥을 지어 먹어야 하니까 가마솥은 기본적으로 4개 정도가 걸려 있고요. 부뚜막도 있는데, 탄을 뗄 수 있는 아궁이와 나무를 뗄 수 있는 아궁이 두 개가 있습니다. 북한 도시의 집들은 탄을 뗄 수 있는 아궁이밖에 없거든요. 근데 시골이다 보니 나무와 탄을 같이 뗄 수 있는 구조로 시공했어요. 북한에 석탄 매장량이 엄청 많지만, 주민들이 탄을 척척 사서 뗄 만큼 경제적인 능력이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탄을 떼는 아궁이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탄을 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있을 때는 앞으로 국가에서 무상으로 주민들에게 탄을 공급해 주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거든요. 근데 글쎄요, 어떤 특정 지역에서 잠깐 그랬을지 모르지만, 전국적으로 다 하기에는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탄을 캐려고 해도 탄광에 인력이 모자란 실정이라서요.
[기자]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도 제공되나요?
[김일혁] 냉장고가 들어가 있는 집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에요. 그것은 국가에서 어떤 홍보를 목적으로 '우리 당에서 이런 사람을 이렇게 도와줬습니다'라는 것을 보도할 때 홍보용으로써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가는 혜택입니다. 군 복무를 하다가 다쳐서 몸이 불구가 되거나, 심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특류영예군인이라고 하거든요. 극소수라는 건 천 가구 중에 한 집 정도입니다. 근데 냉장고를 들여다 놓으면 뭐 합니까. 전기가 없는데. 그래서 사용을 못 하는 상태거든요.
[기자] 그래도 새 살림집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요?
[김일혁] 아파트 사는 주민은 도적(도둑)을 안 맞아요. 북한에는 도적이 워낙 많기 때문에 방범 장치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거든요. 아파트에는 입구에 경비 초소라는 게 있잖아요. 한국에도 경비실이 있지만, 아파트를 출입하는 외부인들도 들어갈 수 있잖아요. 하지만 북한에는 철저하게 이를 따지고, 누구라도 볼 일이 있어서 찾아가면 경비실에 꼭 등록해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주민증 같은 공민증을 보여주면서 경비실에 보고하고 다니는 거예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또 북한에서는 로열층이 2층입니다. 낮은 층에 살아야 힘이 덜 들거든요. 북한에는 전기가 없으니까,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계단을 걸어 올라가거든요. 근데 층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힘들잖아요. 탄 같은 걸 가져다 떼려고 해도, 계단을 올라가면서부터 고생하는 거죠. 그래서 2층이 값이 제일 비싸고, 1층과 3층이 두 번째로 비쌉니다. 그리고 4층부터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값이 점점 싸져요. 또 북한에는 가정집마다 축산을 안 하는 집이 없어요. 도시에 사는 사람도 보통 가정집에서 돼지 한 마리씩은 기르거든요. 근데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도 안방은 사람이 살고, 작은 방을 창고처럼 사용하면서 여기에다 돼지를 키우고 합니다. 먹고살기 위한 방법인 거죠. 그래서 단층집을 더 선호합니다.
“개인 텃밭은 국가가 소유… 빼앗긴 북 주민은 불만”
[기자] 김정은 총비서가 이를 통해 '애민주의'를 앞세우는 것 같은데, 이런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보시나요?
[김일혁] 대부분의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낡은 집이라 해도 텃밭이 다 있습니다. 작게는 10평부터 시작해서 보통 200평 정도씩은 다 있거든요. 텃밭을 관리해 먹고살아도 식량이 떨어져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인데, 이제는 그 텃밭마저 다 뺏기니까 이게 불만으로 표출되는 거죠.
[기자] 이렇게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땅까지 소유하려는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김일혁]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보입니다. 제일 첫 번째로는 정치적 목적이에요. 주민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건데요. 북한 주민이 예전 같지 않거든요. 아무리 북한 당국이 강요하고 교육해도, 부모님 세대와 달리 2030 세대들은 세뇌가 안 됐어요. 많이 깨어 있거든요. 그리고 경제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대한 야망이 있으니까, 북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정권으로서는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김정은으로서도 건설 자재가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서라도 주택 건설을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목적인데, 여기저기 분포돼 있던 주민들을 한 곳으로 집결하고, 본래 이들이 소유하고 있던 땅이나 텃밭을 고스란히 국가 소유권으로 가져오면서 국가 토지를 늘리는 데 보탬이 되게 하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북 압축파일' 오늘은 북한이 과제로 내세운 농촌살림집 건설 사업의 실태에 대해 탈북민 김일혁 씨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김일혁 씨,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