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 저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입니다"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의 비밀을 파헤치고, 오늘날 북한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보며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해 보는 ‘39호실 리정호의 눈’,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와 함께 합니다.]
105층, 330m 높이에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를 갖춘 북한의 류경호텔은 체제 선전을 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야심작이었습니다. 해외 투자까지 끌어들여 북한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는데요.
“평양시 한복판에 볼썽사납게 서 있는 모습은 북한 경제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상징적인 신호로 비쳤는데요. 이처럼 김정일의 정치적 야심이 만들어낸 거대한 유령 건물은, 무너져 가는 북한 체제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외관 공사만 겨우 마친 류경호텔은 평양 시민들 사이에서도 ‘껍데기뿐인 건물’이라며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류경호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 호텔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북한이 개방 정책을 택하고 시장 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김정은 정권이 이러한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류경호텔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현재와 같은 상태로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상원 시멘트’ 공장, ‘류경호텔’ 투자금까지 뜯긴 오라스콤
[기자] 리정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이집트의 통신회사 오라스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북한에서 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 수익을 내려 했던 오라스콤이 결국, 북한에 뒤통수를 맞고 철수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당시 오라스콤이 대북 사업을 위해 상원 시멘트 공장에도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리정호] 네, 북한에서 이동통신 서비스를 재개하려는 리수용 대사의 노력은 2007년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때 오라스콤의 대북 투자는 이동통신 사업에만 국한하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상원 시멘트' 공장에 대한 투자입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오라스콤이 미화로 약 1억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보도했는데 정확한 액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만약 이 정도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다면, 공장 설비 대부분을 교체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이 공장을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평양-원산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늘 보던 공장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상원 시멘트 공장은 평양시 상원군에 위치한 대규모 시멘트 생산 기지로, 1980년대 중반 김정일이 직접 지시해 건설했습니다. 당시 평양에서는 대규모 건설 열풍이 일었고, 이에 필요한 시멘트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노동당 39호실이 유럽에서 최신 생산 설비를 도입해 공장을 지었고, 1989년 4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노동당 재정경리부가 담당해 공장을 운영했는데, 김정일이 직접 생산과 공급까지 세세한 방침을 제시하면서 북한 내 주요 건설 사업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업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공장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습니다. 17년 이상 가동한 설비가 노후화됐고, 잦은 정전과 전력 부족으로 대형 회전로와 소성로 등 주요 장비가 심각한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평양을 비롯한 주요 건설 현장에 시멘트를 원활히 공급하지 못하게 되자 김정일은 이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리수용 대사가 직접 오라스콤의 나기브 사위리스 회장을 설득해 투자를 유치했고, 세계 최대 시멘트 업체 중 하나인 프랑스의 ‘라파즈’(Lafarge) 까지 끌어들여 필요한 설비를 도입해 가동이 멈췄던 상원 시멘트 공장을 다시 정상화하게 됩니다.
이 성과는 리수용 대사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으며, 훗날 그가 오라스콤이 북한 내 이동통신 사업을 승인받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김정은 역시 상원 시멘트 공장의 신세를 톡톡히 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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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제가 오라스콤의 대북 투자를 취재하던 당시, 이동통신 사업권을 독점하는 조건으로 1992년에 건설이 중단된 류경호텔의 외벽 마감 공사도 투자했다고 들었습니다. 류경호텔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이뤄진 건가요?
[리정호] 네, 맞습니다. 제가 직접 리수용 대사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김정일은 오라스콤의 이동통신 사업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흉물처럼 방치된 105층 류경호텔의 외벽 공사까지 함께 추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리 대사는 또다시 오라스콤을 설득해 류경호텔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냈고, 2008년부터 중국 건설업체인 '화청 그룹'을 끌어들여 외벽 시공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초기 투자 규모는 약 3천만 달러로, 외벽 마감 공사에 필요한 강화 유리 등 건설 자재를 수입하는 데 사용했고, 이후 총 1억 달러를 투입해 105층 외벽을 회색의 반사 코팅 강화 유리로 마감하는 공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 3년 만인 2011년 7월경에 완공했는데요. 김정일도 사망하기 전, 완성된 류경호텔 외관을 직접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류경호텔은 김정일이 1980년대에 피라미드 형태로 높이 330m, 105층 규모의 초고층 건물을 구상하고 준비한 야심작입니다. 1987년 8월에 착공식을 했고, 프랑스 회사와 노동당 설계실이 설계를 담당했으며, 건설은 노동당 재정경리부가 조직한 ‘105 당원 돌격대’가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경제난으로 골조만 완성한 채 공사는 완전히 중단됐는데요. 제가 당시 노동당 재정경리부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이 과정을 직접 지켜봤기 때문에, 공사 중단의 배경과 자금난, 경제난의 실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105층 류경호텔이 유령 건물 된 이유는?
[기자] 공사 중단의 배경과 자금난의 실상을 알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30m 높이에 달하는 대규모 류경호텔 건설을 지시한 이유가 뭔가요. 호텔을 지어서 외국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고, 이를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려 했던 걸까요?
[리정호]김정일은 1985년 8월, 45층 높이의 평양 고려호텔을 개업한 뒤, 더 높은 건물을 세우겠다는 의지로 류경호텔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1980년대는 김정일의 일생에서 기념비적 건축물을 많이 지은 전성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신 나라의 경제는 거덜 났죠. 류경호텔도 그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김정일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초대형 호텔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하고, 이를 강행했습니다. 당시 류경호텔의 건설 이유는 1989년 7월 1일에 개최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맞춰 외국인을 맞이할 목적이었는데, 하지만 진짜 이유는 남한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 따른 대응 성격이 강했고, 서울에 있는 249미터 높이의 63빌딩을 의식한 체제 경쟁 측면도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 시기 김정일은 국가 자본을 총동원해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를 위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광복거리’와 1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능라도 5월 1일 경기장’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데, 광복거리는 5.4km 구간에 폭 100m로 조성됐고, 주변에는 2만 5천 세대가 거주하는 고층 아파트를 비롯해 ‘만경대학생소년궁전’, ‘평양교예극장’, ‘청년호텔’, ‘광복 백화점’ 등 다양한 문화∙교육∙편의 시설이 들어섰습니다. 이 밖에도 ‘동평양 화력발전소’, ‘서산호텔’, ‘양강호텔’, ‘안골체육촌’, ‘동평양대극장’, ‘양각도 축구경기장’ 등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맞춰 완공됐습니다.
류경호텔도 1987년 8월 28일에 착공식을 했는데, 예정된 완공 기한인 1989년 6월까지 건물 뼈대만 솟아올랐습니다. 외벽과 내부 마감 공사는 하지도 못한 채 1992년, 건설은 완전히 중단됐습니다. 105층 330m 높이,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골조 건물이 평양시 한복판에 볼썽사납게 서 있는 모습은 북한 경제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상징적인 신호로 비쳤는데요. 이처럼 김정일의 정치적 야심이 만들어낸 거대한 유령 건물은, 무너져 가는 북한 체제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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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류경호텔은 17년간 외벽이 완성되지 않은 채 방치됐고, 부실 공사 논란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야간에 호텔 외벽에 LED 화면을 이용한 야간 쇼가 펼쳐지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건물을 지었으면, 어떻게든 이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북한은 류경호텔을 어떻게 이용하려고 했나요?
[리정호] 지금의 류경호텔은 외관상으로는 멀쩡해 보입니다. 또 야간에는 말씀하신 대로 호텔 외벽에 대형 LED 화면을 활용한 영상과 그래픽 효과를 이용해 화려한 조명 쇼를 펼치며 북한 체제를 선전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내부는 사실상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난 채 텅 빈 상태이며, 안전성에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류경호텔은 부실 공사의 흔적도 많았는데요. 콘크리트 구조물은 거칠고 균열이 많았으며, 일부 철근이 노출된 상태로 장기간 방치되기도 했습니다. 2008년에 중국 건설업체들이 투입돼 강도 시험을 진행하고 부실 시공된 부분을 보강했지만, 이는 외벽 보수에 한정된 조치였습니다.
류경호텔은 39호실 소속 류경지도국이 운영을 담당합니다. 노동당 39호실은 2011년 7월 외벽 공사를 마친 뒤, 15층 이상 호텔 상층부에 무역회사와 합영·합작회사를 입주시켜 외화벌이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 방침이 두 차례나 내려왔음에도 근본적인 인프라(내부 시설)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승강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전력 공급이 불안정했으며, 상하수도망이 구축되지 않아 실질적인 입주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39호실은 호텔 1층부터 15층까지를 외국 호텔 업체와 합작∙운영하려는 계획도 세웠지만, 이것도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리수용 대사는 한때 류경지도국장을 데리고 독일과 중동 투자자들을 만나 류경호텔에 관한 공동 운영 방안을 논의했지만, 폐쇄적인 경제 체제 탓에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류경호텔은 객실 약 3천700개, 2천 석 규모의 대형 회의장과 연회장, 대형 라운지(대합실)와 명품 상점들이 들어설 계획이었지만, 지금까지 텅 빈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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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오라스콤의 투자로 외관 공사는 마쳤지만, 내부 공사는 끝나지 않은 채 40년 가까이 방치된 류경호텔은 전 세계에서 가장 흉물스러운 건축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 과연 이 건물이 언제쯤 제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겠는데요. 정작 평양 시민은 이 류경호텔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도 궁금합니다. 류경호텔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리정호] 류경호텔이 지금까지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단순히 자금 부족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는 북한의 비효율적인 경제 운영 방식과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북한이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추진하고도 끝내 완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타당성보다 체제 선전과 정치적 목적을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류경호텔 건설을 시작한 것도 실질적인 관광 산업 활성화나 경제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준비하면서 국제 사회에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즉, 지도자의 정치적 야심에 의해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추진된 것이 문제를 일으킨 겁니다.
또 공사 초기에 프랑스 건설업체가 참여했지만, 북한이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아 철수했습니다. 대외 신용을 지키지 않고 시장 경제를 도입하지 않는 북한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는데요. 현재 평양 시민들 사이에서는 류경호텔을 ‘껍데기뿐인 건물’이라며 조롱하는 분위기입니다. 이 호텔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북한이 개방 정책을 택하고 시장 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김정은 정권이 이러한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류경호텔은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현재와 같은 상태로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기자]네. 지금까지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와 함께 '해외 투자까지 유치해 완공하려 했지만, 껍데기만 남은 류경호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리정호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