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자유아시아방송은 최근 북한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선서문을 입수했습니다. 총 다섯 개 조항으로 구성된 선서문에는 과거 김정은 총비서를 '수령'으로 표현했던 것과 달리 '위대한 김정은 동지'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선대 수령의 업적보다는 김 총비서에 초점을 맞춘 김정은 시대를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천소람 기자가 이 선서문의 특징과 의미를 살펴봤습니다.
선대 수령 유훈보다 김정은 업적 강조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최근 북한 내부로부터 입수한 선서문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 선서문은 북한의 모든 기관과 단체에 배포되는데, 일반적으로 특정 모임에서 간부들이 앞에 나가 선서문을 읽고, 사람들이 따라 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명절과 각종 기념일 또는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동맹에서 먼저 선서한다는 겁니다.
특히 이 선서문은 충성 결의와 내부 결속을 위한 것으로 보이며 북한의 근로 단체, 조선직업총동맹, 농업근로자동맹, 청년동맹, 여성동맹 등에 속하는 전 주민이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RFA가 입수한 선서문은 총 다섯 개의 조항으로 구성됐으며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계승하고 주체혁명을 이어나가기 위해 투쟁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김정은 북한 총비서를 계속 강조하는데, 구체적으로
-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정치 사상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할 것,
-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령도에 절대 충성하고 복종하며, 백두혈통만을 따르는 충신이 될 것,
-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해 사회주의 건설에 힘차게 참여할 것,
- 위대한 김정은 동지께서 안겨준 정치적 생명을 귀중히 간직하고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에 투쟁을 벌일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5. 위대한 김정은 조선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국가의 존엄과 명예를 수호하며, 조국통일과 주체혁명의 최종 승리를 위해 싸워나갈 것을 맹세하고 있습니다.
선서문이 처음에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한 번 언급하지만, 그 뒤로 김일성, 김정일에 관한 말은 없습니다.
또 과거 선서문에는 김 총비서를 지칭할 때 ‘위대한 수령’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번에는 조항마다 ‘위대한 김정은 동지’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도 특징입니다.
선서문을 분석한 일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지난 22일 RFA에 “이번 선서문에는 김정은 시대를 강조하고 있는 게 큰 특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과거에는) 김일성 대원수님, 김정일 대원수님의 영도를 잊지 말고 그 유훈을 관철해야 한다는 내용들이 계속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선서문에서는) 이런 표현이 거의 사라지고, 단순히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지킨다고 언급하면서 '위대한 김정은 동지'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과거 선대 수령의 업적보다는 현시대의 김정은 업적을 강조하는데, 그것에 대해 목숨 바쳐 지켜야 한다는 것이 새롭고 최근 이야기일 거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성장 한국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도 26일 RFA에 “김일성-김정일주의가 아닌 김정은 총비서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차별화를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정성장] 기본적으로 김정은에 대한 충성, 맹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아닌 김정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유산, 유훈과 차별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사상,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실제 김일성-김정일 정책과 김정은 정책은 다른 것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명에 대한 수령의 의도에 절대적으로 충성한다는 것이 많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이 선서문은 기본적으로 지금 김정은의 지시, 지도를 절대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 중심의 영도가 확실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걸 더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정 센터장은 이 선서문이 김 총비서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언을 강조하는 10대 원칙과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조국 통일’ 빼고 읽어라”.. 상부 지시 하달
전문가들은 이 선서문이 최소 2021년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판단합니다. 선서문 안에 ‘조국 통일’이라는 단어가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해 말(12월 3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가 ‘적대적 교전국’으로 고착됐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지난달 15일 개최한 제14기 제10차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남북 경제협력과 관련한 법과 합의서를 모두 폐기하기도 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조국 통일’ 문구가 나온다는 것은 당 중앙에서 방침을 내리기 전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이거는 ‘청년동맹 대상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에 대한 언급도 있었잖아요. 2023년에 아주 강하게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에 대한 경고를 사회적으로 했습니다. 이것도 올해보다는 작년에 많이 강조한 부분이고, 금년도 과제로는 약간 시간이 지난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내부 소식통은 올해도 이 선서문이 사용됐는데, ‘조국 통일’ 부분을 제외하고 읽으라는 지시가 상부로부터 내려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성장] 전에 작성됐지만, 개정판이 나오기 전에는 기존의 것으로 선서하면서 (조국 통일 부분을) 제외하고 읽을 수도 있겠죠.
또 정성장 센터장은 2021년 8차 당대회를 계기로 북한이 본격적으로 김 총비서를 위대한 수령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며 그 이후에 나온 선서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성장] 선대보다 김정은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2021년 제8차 당대회 이후에 나온 선서문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제8차 당대회를 계기로 김정은의 지시를 가장 중요한 절대적인 지침으로 받들면서 김일성, 김정일과 차별화했기 때문입니다. 선서문에 들어있는 내용도 비슷합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에 대한 개인적인 언급이 전혀 없잖아요.
북한 선서문은 한 번 작성되면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이 선서문이 올해도 계속 사용되고 있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와 탈북민의 관측입니다.
하지만 ‘조국 통일’과 같이 수정할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새로운 선서문이 내려올 가능성도 작지 않아 보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