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호실 리정호의 눈] “장성택 처형 후 동력 상실한 원산갈마관광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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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흥총국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입니다”

[북한 전직 고위 관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은 정권과 핵심 권력층의 비밀을 파헤치고, 오늘날 북한 정책의 허와 실을 짚어보며 정치, 경제, 사회를 분석해 보는 ‘39호실 리정호의 눈’,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와 함께 합니다.]

" 김정은은 애초에 이런 대규모 관광 지구를 구상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해외에서 경험했던 물놀이장, 승마장, 스키장 같은 시설들에 푹 빠져 있었죠."

김정은 총비서가 직접 현지 시찰을 하며 내년 5월 개장을 지시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사업은 애초 그의 구상이 아닌 리수용과 장성택의 제안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일본인과 한국인 관광객 수십만 명을 유치하고, 관광 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려 했던 건데요. 하지만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이 사업은 동력을 잃게 됩니다.

" 그 당시 20대 철부지였던 김정은은 국가 관광은 물론 국가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이끌어갈 능력이 없었습니다."

리정호 대표는 김 총비서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내년 5월까지 관광지구를 완공하고, 러시아인을 초청해 북러 간 정치∙군사 협력을 강화하려 할 것으로 내다보는데요. 하지만 유지비도 나오기 힘들어 투자 대비 운영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입니다.

리수용, 장성택의 구상으로 시작… 김정은은 ‘유흥시설’만 관심

[ 기자] 리정호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북한에서 진행 중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 사업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하는데요. 김정은 정권의 상징적인 개발 사업으로 불리며 내년 5월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많은 의문과 궁금증이 쏟아지고 있거든요. 대표님께서 이 사업의 내막을 잘 알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요. 우선 대표님께 꼭 묻고 싶은 것은, '김정은 정권이 왜, 어떻게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건설하게 됐을까' 입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 KPDC 대표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 리정호 KPDC 대표

[ 리정호] 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김정은의 꿈과 현실이 혼재된 상징적인 프로젝트(사업)입니다. 처음 발표됐을 때 국내외의 큰 관심을 받았죠. 그런데 많은 분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김정은 개인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진짜 설계자는 바로 노동당 행정부에서 국가관광총국을 담당하던 리수용 부부장과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 부장입니다. 당시 이 두 사람은 북한 경제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기존의 경제구조로는 도저히 관광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개방적인 관광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원산과 금강산을 국제 관광지로 개발하고, 연간 12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하려 했던 거죠. 그들이 세운 그 대담한 계획이 바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입니다.

[ 기자]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애초 김 총비서가 생각한 사업이 아니었다는 것부터 흥미로운데요. 원래는 전혀 생각지 못한 프로젝트였다는 겁니까?

[ 리정호] 정확합니다. 김정은은 애초에 이런 대규모 관광 지구를 구상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해외에서 경험했던 물놀이장, 승마장, 스키장 같은 시설들에 푹 빠져 있었죠. 그래서 마식령 스키장이나 미림 승마장이 만들어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시설들은 보여주기식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은 떨어집니다. 북한 내부에서 이용하려면 오히려 손해를 보죠. 특히 김정은이 마식령스키장 건설에 집착했는데, 그 지역은 교통이 불편해 사람들이 갈 수가 없어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리수용 부부장이 제안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 조성은 김정은에게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당시 저도 리수용 부부장을 마식령스키장 건설지휘부에서 만났을 때 “원산시와 마식령스키장을 하나로 묶어 원산 국제 관광지로 조성하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교통 조건도 좋아질 것”이라고 토의한 바 있습니다. 이는 마식령 스키장의 이용률을 높여 외화를 벌 수 있는 방법으로 보였고, 무엇보다 원산은 김정은의 어린 시절 추억이 서린 고향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그 지역을 국제적인 명소로 만드는 것은 김정은의 자부심과도 직결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2년에 이 사업이 처음 구상되고, 2013년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결정됐습니다. 그리고 장성택 부장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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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 개장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2024년 3월 26일) / 구글어스

장성택 처형 이후 상황 급변… 아무것도 몰랐던 김정은

[ 기자] 저도 김 총비서 집권 초기 전국에 물놀이장이나 영화관, 스케이트 공원 등을 많이 지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설명하신 내용만으로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의 기획부터 건설 공사까지 그 규모가 상당한데요.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자금이 충분했는지 궁금합니다. 김정은 정권은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확보했습니까?

[ 리정호] 솔직히 말해, 당시 김정은은 자금 문제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라"라고 명령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생각했죠.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내각이 그의 명령을 받아 각 기관과 지방으로 지시를 나눠주고, 자원과 인력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그런데 국가 전체가 하나의 프로젝트에 집중하면 당연히 다른 분야는 타격을 받게 됩니다. 김정은의 주요 건설 사업들은 혁명 자금, 즉 비자금에서 자재 비용을 충당하기 때문에 화려한 모습으로 완성되지만, 그 외의 다른 분야는 점점 황폐해지는 거죠. 이런 현상을 통해서 왜 북한 경제가 계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 기자] 저도 과거에 관련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는데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사업은 2014년에 한창 진행되다가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여러 가지 추측이 많았습니다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리정호] 아까 말씀드렸듯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처음에 리수용 부부장과 장성택 부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장성택이 그 프로젝트를 주도했는데, 그가 2013년 12월에 갑자기 처형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그의 공백으로 이 사업을 이끌어 갈 리더십 부재와 자금과 물자 부족 문제가 발생하면서 결국,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죠. 그 당시 20대 철부지였던 김정은은 국가 관광은 물론 국가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이끌어갈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 사업은 2013년부터 노동당 행정부가 주도했지만, 장성택을 처형한 이후에는 조직지도부에서 맡아 진행하다가 2014년 6월,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를 조성하는 정령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4년 후인 2018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최단기간 내 완공'을 지시했지만, 대북 제재와 자금 부족 문제로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완공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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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김일성 주석의 101번째 생일을 맞아 열린 기념 공연을 나란히 관람 중인 김정은 총비서와 장성택 부위원장 /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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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러시아 관광객 초청해 북러 협력 강화 나설 듯

[ 기자] 이 사업을 주도했던 장성택 부장이 처형된 이후 사업을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지면서 공중에 떠버린 거군요. 그러다가 올해 초 다시 공사가 재개됐고, 내년 5월 완공과 함께 개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왜 이 시점에서 김 총비서가 현지 시찰까지 하면서 다시 이를 추진하는 걸까요? 김 총비서에게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어떤 의미입니까?

[ 리정호]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대한 김정은의 의도는 단순한 관광지 개장이 아닙니다.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그리고 북한이 개방하지 않는 한, 대규모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힘들 겁니다. 따라서 그는 내년 여름, 러시아 참전 군인들과 관광객들을 초청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치적,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듯합니다. 또한,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들어간다면, 그를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로 초대해 이를 자랑하며 핵보유국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는 야망도 있을 수 있습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김정은이 집권 초기 자신의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첫 작품이라 할 수도 있고, 자기의 지도력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중국과의 미묘한 관계 탓에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몰려올 가능성이 작고,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된다 해도 특유한 그의 외교 스타일에 김정은의 전략이 얼마나 먹힐지도 미지수입니다.

애초 일본인, 한국인 관광객 유치가 목표… 결국, 운영 적자 불가피

[ 기자] 이렇게 관광지구를 완공했다 해도, 이용객이 적으면 수익도 적자이지 않겠습니까. 한편으로는, 일본의 조총련 관계자들이 방북할 때 이곳에 머물도록 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수익성 면에서는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 리정호] 조총련 관계자들이 단체로 온다 해도 그 숫자가 제한적이고, 할인 혜택까지 주게 되면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원래 리수용 부부장과 장성택 부장의 구상은 일본과 한국에서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이를 위해 크루즈 부두와 비행장, 철도를 현대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제재와 남북 관계 악화 등으로 이런 계획들이 거의 실현되지 않으면서 지금은 내수 시장이나 소수의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투자 대비 수익성이 손실일 수밖에 없고, 유지비도 나오기 힘듭니다. 북한에서의 건설 사업은 경제적 이익보다는 수령의 치적 쌓기,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기 때문에 100% 손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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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랩스가 2024년 9월 10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일대에 건설 노동자들의 임시 숙소로 추정되는 건물들이 보인다. / Planet Labs

[ 기자] 최근 이곳의 위성사진을 보면, 내년 5월 목표에 맞춰 공사가 매우 급하게 진행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렇다 보니 부실 공사의 가능성도 엿보이고요.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임에도 김 총비서가 내년 5월까지 완공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요. 또 그 결과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 리정호] 김정은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내년 여름 러시아인을 초청하기 위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제대로 완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사를 마친다 해도 이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일 겁니다. 결국, 원산갈마해안 관광지구는 김정은 체제의 꿈과 현실, 그리고 모순을 고스란히 반영한 상징적인 결과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 기자] 지금까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마지막으로, 애초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개방적인 정책을 반영하고 있는데요. 북한 체제의 본질과 모순되진 않습니까?

[ 리정호] 맞습니다. 김정은의 초기 전략은 개방을 통해 경제를 살리고, 체제의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이 많아지면 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두려움이 점점 커졌죠. 또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개방적인 경제 개발 계획은 점점 속도를 잃고 모순에 빠지게 됐습니다. 폐쇄적인 북한 체제와 개방 경제는 결국 공존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참고로 북한 원산시 송도원과 갈마명사십리 해안가는 천혜의 여름철 관광지입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마식령스키장이 있어 교통 조건만 갖추면 매력을 돋우죠. 하지만 이렇게 좋은 자연환경도 북한 독재자가 개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고, 어떤 체제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기자] 네, 지금까지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와 함께'김정은 정권의 복합적인 야망과 모순을 담고 있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리정호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