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코로나 방역을 위한 국경봉쇄와 대북경제제재로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북한은 중앙집권식 계획경제 구조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 속에 주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는데 경제를 살리기는 커녕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경제 관련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방안 마련에만 골몰하고 있는 건데요.
북한의 지난 한해를 되짚어보고 전망하는 시간 [2023전망] 두 번째 시간으로 오늘은 북한의 경제상황을 박수영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북 , 1 년 내내 물가 고공행진 …턱없이 부족한 비료에 생산도 부실
시장 위축 속 물가 고공행진, 코로나 공식 인정, 중앙집권적 경제 강화.
북한의 지난 한 해 경제는 이 세 단어로 함축할 수 있습니다.
이 중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건 물가입니다.
나타샤인권협회 손혜영 대표는 지난해 말 북한 지인으로부터 “올 한 해 북한 물가 상승을 살갗으로 여실히 느꼈다”는 말을 들었다고 RFA에 전했습니다.
직접 재배한 강냉이(옥수수)를 쌀과 교환해서 생계를 이어가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5년 전만 해도 농사에 필요한 비료와 강냉이를 1대 1의 비율로 맞바꾸었지만 근 3년간 중국산 비료 확보가 불가능해진 탓에 3대 1의 비율로 비룟값이 치솟았습니다.
100 kg의 비료를 얻기 위해 강냉이 300kg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손혜영 ] (지인이) 말하는 게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농사하기가 너무 힘드니까 비료를 안 썼대요. 그러니까 감자나 콩이나 강냉이나 농사가 잘 안돼서, 감자도 제일 큰 게 계란만 한 거라더라고요.
북한 쌀값도 2012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대폭 상승했습니다.
아시아프레스의 ‘북한 시장 최신 물가 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킬로 당 6천 원대를 돌파해 12월 기준 백미는 1kg당 6천 100원에 거래됐습니다. 2018년 12월(백미 1kg당 4천 340원)에 비해 1.4배 가량 상승했습니다.
[ 손혜영 ] 옥수수를 몇 kg 팔아야 흰 쌀을 1kg 살 수 있는데 이 상황이면 농민들이 죽는 거죠.

역시 북한의 지인과 연락을 이어오고 있는 탈북민 하예진 (신변보호를 위해 가명요청) 씨도 최근 통화에서 식자재뿐 아니라 생필품의 가격 상승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 하예진 ] 생필품 같은 거라든가 사람들이 많이 쓰는 그런 것들이 들어오지 않다 보니까 많이 비싸지고 있죠. 사실 버는 것도 많이 힘들어졌는데 물가도 오르고 그런 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조한범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평균 4천 원대였던 백미값이 6천 원대를 돌파해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조한범 ] 11월 말 기준으로 쌀값이 6천 원이 넘어간 것은 근 십 년 만에 처음이에요. 추수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각종 지표는 최악의 상황이거든요. 이게 일시적인 게 아니고 대북제재와 자력갱생(고집)이라고 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기인하고 있고 단기간에 해결이 안 되죠.
북 , 시장통제 강화 …"가정집 식당 운영 금지 , 2 인 이상 고용 금지 "
이런 가운데 지난해 북한 시장 개수는 늘어났지만, 단속 탓에 실제 활동량은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분석됩니다.
일본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당국의 엄격한 관리와 통제로 시장 경제가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이시마루 지로 ] 장마당을 단순한 공간으로서의 시장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시장은 장소, 공간일 뿐이죠. 시장 경제 시스템의 활동량 자체를 봐야 하는데, 그런 개인 경제 활동 자체에 대해서 아주 심각한 통제에 나섰어요.
일반 가정집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금지했고, 장마당에 물건을 팔기 위해 두 명 이상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금지했습니다.
이에 따라 장마당에 물건을 운송해주던 사람도 고용할 수 없게 됐고, 운송업에 쓰이는 손수레의 크기까지 제한하고 나섰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손혜영 대표도 주요 도시에서 거리가 먼 농지대일수록 중간 수송비가 더 많이 들어 비료를 구하기 더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 손혜영 ] 운송에서 뜯어 먹어, 철도에서 뜯어 먹어, 도착해서 보안원들이 뜯어 먹어, 그다음에 도착하면 작업반에서 뜯어먹고, 그다음에야 밑에 사람들한테 (수익이) 가는 데 얼마큼 되겠어요. 땅은 땅대로 (척박하고) 곡식은 곡식대로 안 되고 하니까 (지인이) 하는 소리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북 경제 회복하느냐 마느냐 …코로나 방역 여부에 달렸었다
이처럼 물가가 상승하는 가운데서도 북한은 국가 주도 무역과 국경봉쇄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연구원 정은이 박사는 북한 당국이 경제를 희생하더라도 코로나 방역에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습니다.
[ 정은이 ] 가장 큰 변수 중 하나가 북한 당국이 코로나를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경제가 좀 더 호전되느냐, 좀 더 악화하느냐….
조한범 선임연구원도 코로나 방역 성패가 향후 북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북한 물가가 치솟고 경제가 불안정해져도 코로나 방역이 우선시됐다고 말했습니다.
[ 조한범 ] 만일에 코로나가 확산이 되면 걷잡을 수 없는 보건의료 위기가 올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완전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봉쇄형 방역을 했던 거고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로 인한 경제적 후유증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더 이상 봉쇄형 방역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온실농장 건설 등 농촌 주민들 겨냥 선전 · 선동 강화 …경기 침체 숨기려는 노림수
이런 가운데 경제 침체를 의식한 북한 당국의 선전·선동은 한층 강화됐습니다.
핵미사일과 핵무력 법제화를 통해 핵 개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위대한 승리의 해 2021년> 등 김정은 총비서를 주제로 한 기록영화를 방영해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높이려 했습니다.
손혜영 대표는 최근 들어 북한이 함흥청년1호발전소, 연포온실농장과 같은 북한 당국 주도의 건설물들을 내세워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 손혜영 ] "장군님께서 우리 농촌 살림집을 지어 주시고 우리에게 이런 크나큰 선물을 안겨주셨다"는 등의 보도를 저도 보거든요. 우리가 볼 때는 완전히 너무 어이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북한이 지난해 농촌 중심 선전·선동에 나섰다며 이는 북한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와 거리가 있는 주민들을 선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리라는 당국의 판단에서 비롯됐으리라 짐작했습니다.
[ 손혜영 ] 김정은 총비서가 (현지 시찰) 다니는데 보면 다 농촌 쪽이잖아요. 농촌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농장에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 들어와서 밥해 먹고 또 나라에서 준 집에서 먹고 살잖아요. 이는 '(장군님의) 너무 크나큰 사랑'이라고만 생각하죠.
조한범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국방력 강화를 통해 대내외적인 업적을 과시하는 한편 경제난을 덮기 위해 사회 통제와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 조한범 ] 최악의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가 지금 내세울 수 있는 건 국방력밖에는 없다'는 관점이고요. 경제난으로 사회, 주민들에 대한 통제와 처벌을 강화하고 그다음에 김정은 총비서 우상화로 체제 결속을 도모하고 있고, 국방력 강화로 대내외적인 김정은의 업적을 과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코로나 기간 각종 법 재정비 …체제 회복에 디딤돌 되나
이처럼 코로나로 경기 침체를 겪는 동안, 이면에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각종 법률 제정, 개정이 진행됐다고 정은이 박사는 설명했습니다.
[ 정은이 ] (법령의) 내용을 살펴보면 부동산 법이라든지, 은행 금융과 관련된 법이라든지, 방역은 물론이고 또 환경 부분에서도 상당히 새로운 법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또 국제 표준에 맞게 북한도 변해가고 있는 거죠.
이시마루 대표는 북한 당국이 일정한 양의 식량을 시장가보다 싸게 공급하는 ‘곡식판매소’를 통해 국가 배급 체계도 확립시키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이시마루 지로 ] 국가가 주식 유통을 장악해서 '음식으로 통제한다', 즉 '먹여줄 테니까 말을 들어라'는 옛날식으로 복구하려고 하는 움직임이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개인 휴대전화 단속까지 심해져 주민들이 외출 시 가능한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중앙통제는 강화되고 있지만,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무역은 서서히 풀릴 것으로 전망됩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봉쇄가 장기화함에 따라 경제적 피로감도 겹쳐 북한도 ‘방역 완화 정책’으로 나아가리라 전망했습니다.
[ 조한범 ] 대북 제재와 봉쇄형 방역 국경 차단 2년 이상의 국경 차단으로 이미 경제적 피로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북한도 어쩔 수 없이 경제적 필요에 의해서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고 있다. 따라서 방역을 아직 포기한 건 아닙니다만, 최근에는 방역보다는 수입, 교역 체계, 경제쪽에 방점을 두는 쪽으로 점차 전환해 가고 있습니다.
정은이 박사도 지난해가 북한에 사실상 재정비 기간이었다며 올해 국경봉쇄 해제를 예상했습니다.
[ 정은이 ] 북한이 새로운 수출입 물자 소득법도 많이 제정했고 또 의주 방역 관리 시설도 설치했잖아요. 그니까 굉장히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제로 코로나 (고강도 방역)가 아니라 국경을 여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가 상승과 장기 봉쇄로 인한 경기 침체 속에서도 경제회복이 아닌 중앙집권식 계획경제를 확립하는 데 초점을 맞춰온 북한이 올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