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동아시아에서는 대만과 중국의 갈등이 더 깊어지고,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한반도의 긴장도 높아졌는데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동북아시아 정세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한국전쟁과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직접 겪었던 한반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닌 상황입니다.
RFA 한국어 방송이 신년 특집으로 마련한 [해 넘긴 우크라 전쟁]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출렁이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정세를 노정민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국제사회 질서 바꾼 우크라이나 전쟁 ... 동북아로 파장 확대
[와타이 타케하루]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많은 건물들이 붕괴했고, 러시아 군인들에 의한 처형이나 고문 등 전쟁 범죄도 목격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러시아 군인들의 시신도 봤습니다. 마치 지옥과 같았죠.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직접 우크라이나로 가 전쟁 상황을 취재했던 일본인 와타이 타케하루(Watai Takeharu) 기자.
그 해 3월부터 한 달 반 동안 전장을 누비면서 피범벅이 된 희생자들을 보고, 유가족과 피난민들의 통곡을 들었던 그는 전쟁의 공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고 고백합니다.
[와타이 타케하루] 소리에 매우 민감합니다. 총격 소리와 포탄 소리 때문이죠. 제가 전쟁터에서 일본으로 돌아오면 문을 닫는 소리나 천둥소리 등에 매우 공포심을 느끼고, 때로는 큰 목소리에도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300일 넘게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미 수만 명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군인들이 숨지고 부상을 당한 데 이어, 400명이 넘는 어린이를 포함해 1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희생됐습니다. 이마저도 최소한의 추정치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절망하는 이유는 이 전쟁이 금방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와타이 타케하루]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이 지나 2년이 넘을 수도 있겠죠.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전쟁이 금방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쟁이 계속될 거라고 말이죠.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미콜라이우에서 집에 폭격을 맞은 안 엘레나 씨도 결국, 전쟁을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 엘레나] 처음에는 내일이나 모레쯤 전쟁이 끝날 거라고 희망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지 않고 매일 시내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겁니다. 제가 살았던 시골 마을에서는 사람들에게 빨리 대피할 것을 알려왔습니다. 지하에 피신해 있을 때도 집 다락이 무너지면서, 그 순간에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 전쟁이 동북아시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지적합니다. 오늘날에도 대규모 전쟁 발발 가능성이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동북아시아 지역 내에서도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위험한 상황이 충분히 올 수 있다는 겁니다.
제성훈 한국 외국어대학교 노어과 교수는 RFA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사회의 질서를 바꾼 사건이며, 군사력 사용이 더 빈번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제성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 주도의 단극 패권 체제에 도전한 주요 강대국의 최초 군사적 도전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더 커진 거고요. 탈냉전기 30년 동안 ‘주요 강대국 간 이견은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이제 깨진 거죠. 군사력 사용이 더 빈번해지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만-중국', '한반도' 갈등 최고조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은 계속 높아졌습니다.
지난 해 8월, 중국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맞춰 대만을 겨냥해 포위 실탄 사격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에 나섰습니다.
또 10월에는 미국의 정보당국으로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에 대한 침공 준비를 지시했다’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제성훈 교수] 대만에 대해서는 미국의 확실한 안보 공약이 있습니다. 그럼 중국은 정말 미국과 맞붙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때 미국이 참전하게 되면 우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자동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고, 이건 동북아시아의 지역 전쟁이지만, 사실상 세계 대전이죠.

한반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은 2022년 1월부터 11월까지 총 62발의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는데, 이는 1984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였습니다.
또 2022년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이 지난 38년 중 최다 횟수를 기록할 만큼 한반도의 긴장은 어느 때보다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러시아 출신 한반도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학교 교수는 RFA에 북한을 비핵화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합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북한 정권은 이번 사건(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비핵화가 자살행위라는 생각을 더 굳게 믿게 됐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핵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시작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중러 대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가 굳어지고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제성훈 교수] 일단 중국과 러시아가 굉장히 밀착될 것이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계속 수행하고 있고요. 한반도의 중심으로 북중러 대 한미일의 대립 구도가 심화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북한에 대해 다룰 수 있는 한국의 지렛대도 굉장히 줄어들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6.25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든 전쟁 가능성
6.25 한국 전쟁을 직접 겪었거나 북한의 도발로 피해를 입었던 한국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한국 충청남도 부여에 사는 윤청자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윤청자]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고) 저는 막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어요. 6.25 생각을 하니까. ‘누가 좀 말려줄 수 없을까’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6.25 전쟁이 생생해요.
윤 씨는 한국전쟁에 이어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한 천안함에서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
[윤청자]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요 .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해요. 말할 것도 없지, 가슴 아픈 말을 어떻게 다 해.

그로부터 8개월 뒤인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주민 정창권 씨는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발사한 170여 발의 포사격을 직접 겪었습니다. 그중 한 발은 정 씨의 집 지붕을 뚫고 침실로 떨어졌습니다.
[정창권] 나중에 뉴스를 들어보니까 6.25 전쟁 이후 최초로 북한의 포탄이 남한에 떨어진 사례라고 그러더라고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전시 상황이죠. 마을 전체가 다 불바다였으니까 그때는.
연평도 주민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 당시의 기억 때문에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할 때마다 늘 불안함을 느낍니다.
[정창권] 평상시에 한국은 굉장히 위험하잖아요 . 북한을 더 위험스러운 존재로 여기고 있고, 더군다나 우리는 북한과 직접 맞닥뜨린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이 북한과 해전도 두 번 겪었고, 포탄이 떨어지는 사건도 처음 겪었는데 그게 다 연평에서 일어난 사건들이거든요.
전인범 전 한국 특전사령관은 “아직 6.25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북한이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를 실전 배치함에 따라 언제든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전인범] 지금 우크라이나를 보시면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하루에 백 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곱하기 3~4가 부상을 당한다는 거예요. 만약에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 정도의 피해를 각오해야 하지 않느냐고 보는데, 그래도 우크라이나는 우리보다 면적이 커요. 우리는 북한과 접촉한 지역에 많은 민간인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특히 민간 피해가 훨씬 더 클 여지가 있어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중국과 북한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입니다.
[안드레이 란코프] 푸틴 대통령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매우 위험하고 윤리적으로도 매우 나쁜 행위를 했는데, 중국 시진핑과 북한 김정은도 오판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인범]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지만, 어떤 불미스럽고 위험한 사고가 날까 봐 염려되는 것이고요. 우리 한반도에서도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 북한이 공격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북한이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정말 큰 전쟁으로 갈 수가 있고...
[정창권] 전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접점에서 느끼는 사람들이 바로 연평도 사람들이거든요. 뉴스에 나오는 것도 연평도고, 국지전이 벌어졌다고 하면 그것도 연평도고, 그래서 연평도 사람들은 안보적인 측면에서 매우 투철해요.
2022년에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가져다준 사건으로 꼽힙니다.
누구도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어느 때보다 군사적 긴장이 커진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동북아시아의 정세도 더 출렁이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