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러시아의 기습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24일로 발발 일 년을 맞았습니다. 이번 전쟁은 수많은 인명 피해와 인도주의적 재난을 낳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는데요.
남북한으로 나뉜 한반도처럼 우크라이나도 영토 분할 형식으로 종전을 모색하는 이른바 ‘코리안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 핵문제 해법도 훨씬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일 년을 되짚어봤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키 어려워”
2월 24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일 년을 맞은 가운데 미국 워싱턴에서는 이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토론회가 잇따라 열렸습니다.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충격적이지만, 전쟁 과정도 예상을 뒤엎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러시아의 군사력이 그 동안 과대 평가됐다는 지적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방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는 겁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국가들의 결속력과 대응이 강력했다는 분석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에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주를 이뤘습니다.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신미안보센터’의 안드레아 켄달-테일러 선임연구원은 (2월 16일)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어느 쪽도 협상에 관심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며 “타협할 명분도, 전쟁을 멈출 동기도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제성훈 한국 외국대학교 노어과 교수도 (2월 20일) RFA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할 능력도, 그렇다고 타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고 분석했습니다.
[제성훈] 그래서 전세가 비등한 상황에서 계속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거고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제압할 수 없는 이유는 서방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거죠. 또 우크라이나는 이제 와서 협상하기는 굉장히 힘들 것 같아요. 그러기에는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결국, 전쟁을 멈춘다는 건 타협을 해야 하는데 이 타협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환경 같습니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영토에서 러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이 목표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이를 실현하기까지 전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러시아를 연구하는 미 하버드대학 데이비스 센터의 알렉산드라 바쿠르 센터장은 (2월 15일) RFA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네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러시아 또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 둘째는 정전협정이나 휴전을 맺는 것, 셋째는 양측이 모종의 협상에 합의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넷째는 갈등의 장기화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어느 쪽도 목표에 달성했거나, 협상에 나설 명분이 없기 때문에 전쟁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고 바쿠르 센터장은 내다봤습니다.
한반도식 영토 분할 (Korean scenario) 종전… 쉽지 않아
이런 가운데 지난 2월 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고위 관리로부터 ‘코리안 시나리오’, 즉 한반도식 영토 분할이 언급됐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한국처럼 민주주의 국가로 남고, 돈바스를 비롯해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은 러시아 영토로 분할된 채 종전하는 방식입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지난 7일, “우크라이나가 서방 동맹국이 제안한 한국식 시나리오를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우크라이나의 희망 사항일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NSC) 서기도 같은 날 자신의 인터넷 사회연결망인 트위터에 “우크라이나는 한국이 아니다”라며 “38선이나 다른 분계선, 외부에서 주장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시나리오는 없을 것”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한반도식 영토 분할’에 분명한 거부 의사를 나타낸 겁니다.

알렉산드라 바쿠르 센터장도 양측이 ‘한반도식 분할’에 합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내다봤습니다.
[알렉산드라 바크르] 한반도식 분할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휴전을 하고, 한국처럼 비무장지대를 두는 것에 동의하는 것을 가정합니다. 하지만 양측 모두 ‘시간은 여전히 자기편’이라 믿기 때문에 어느 쪽도 전쟁을 멈추겠다는 선의의 합의를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
미 국무부는 ‘한반도식 분할’을 전제로 한 종전 가능성을 묻는 RFA에 (2월 17일) “미국은 주권 국가들이 그들의 안보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일관되게 말해 왔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습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양보하도록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습니다.
국무부는 나아가 “러시아가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겠다는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미국은 전쟁 중에 우크라이나와 협력을 더욱 강화해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서 최대한 지렛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미화 5억 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 계획을 밝혔습니다. 이번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를 러시아에 보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반도의 분단과 단순 비교 어렵다는 지적도
이병철 한국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월 17일) RFA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에 들어섰다며 우크라이나의 영토의 분할된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을 예상했습니다.
[이병철] 많은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가 어떤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분단이란 말은 좀 그렇지만, 분열된 양상으로 장기간 존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으로 이어진다면 그 상태가 ‘분단’이라는 용어로 사용될 수 있겠죠.
제성훈 교수도 우크라이나에서 ‘분쟁 상황의 동결’이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정반대라고 지적했습니다.
[제성훈] 제 생각에 러시아는 크게 반대할 이유가 없어요 . 왜냐하면 러시아가 이 전쟁을 벌인 것은 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섭니다. 정치적인 목적은 결국, 우크라이나를 최대한 자신의 영향권 내에 묶어두는 거잖아요. 그게 안 되면 서방의 영향력 아래에도 못 들어가게 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일단 러시아는 한반도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영토를 편입시켰잖아요. 반면, 우크라이나는 지금 상태에서 전선이 동결되거나 정전이 되면 자신들이 원했던 나토 가입이나 EU(유럽연합) 가입이 어려워지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적인 미래도 불투명해지고, 빼앗긴 영토를 되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미국 내 정치권의 경우 공화당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피로감도 감지됩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완전히 밀어내고 옛 영토를 되찾겠다는 목표가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하느냐’, ‘이쯤에서 끝내자’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종전을 압박하진 않을 거라고 바쿠르 센터장은 예측합니다.
[알렉산드라 바쿠르] 모든 것은 결국 우크라이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가 ‘한반도식 분할’을 받아들인다면 미국도 동조하겠지만,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영토 일부를 포기하도록 강요하지 않을 거란 겁니다.
신미안보센터의 리처드 폰테인 센터장도 (2월 16일)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히 두 나라의 갈등이 아닌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패권 전쟁인 만큼 미국이 쉽게 물러설 수 없으며, 상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지속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길어질수록 북핵 해법에 악영향
많은 한반도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지난 일 년 동안 우크라이나가 미 행정부의 외교정책에서 최우선 순위가 된 반면, 북한은 관심에서 더 멀어졌다고 평가합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미중 갈등 등에 집중하는 사이, 당장 해결 가능성이 없는 북핵 문제는 현상 유지도 괜찮다는 분위기라는 겁니다. 또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도발도 미국에는 일상적인 현상처럼 여길 만큼 익숙해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북한, 중국, 러시아 간 협력 강화도 점점 북핵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제성훈] 가장 큰 영향은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거죠. 그러면 미국이 북한 문제에 대해 적극성을 가지고 있느냐,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또 미국 입장에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서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데 유럽에서 이런 파열이 생기면서 관심이 분산되는 겁니다. 북한 나름대로 한반도에서 위기를 조장하는 거고요. 중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상쇄하려면 결국 러시아를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예요.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