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이 정치, 경제, 군사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미국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 국적의 화물선이 이달 초 북한 해역에 진입한 이후 자동식별장치를 끄며 자취를 감췄습니다.
또 이 선박이 북한 해역에 머무는 사이 ‘화물 경보’와 ‘제재 관련 경보’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는데, 이는 불법 환적이나 거래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지적입니다. 한덕인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시아 화물선 , 북한 해역에서 ' 신호 상실 '
지난 2월 5일 러시아 해역에서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돌연 사라진 러시아 국적의 화물선 ‘사할린8’호(IMO 8330516).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선박 운항 자료를 분석하는 이스라엘의 해운정보업체 ‘윈드워드’에 따르면 북한과 인접한 러시아 해역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약 13시간 후인 다음날 6일, 북한 해역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의 배타적경제수역에 들어선 ‘사할린8’호는 이곳에서 약 20시간을 머문 것으로 나타나 북러 간 접촉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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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윈드워드 보고에 따르면 ‘사할린8’호는 지난 2일 러시아 해역을 출발한 이후 최근(11일)까지 북한, 한국, 일본 등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잇달아 통과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위치 신호가 끊기고, ‘화물 경보’와 ‘제재 관련 경보’가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선박이 북한 해역에 머무는 사이에도 화물 경보가 발생했고, 한동안 위치가 추적되지 않는 ‘신호 상실(Lost)’ 상태도 이어진 겁니다.
이처럼 ‘사할린8’호가 북한 해역에 약 20시간을 머문 뒤, 한국과 일본 해역을 지나는 과정에서 다수의 화물 관련 경보와 제재 경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것은 불법 환적이나 거래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것이 윈드워드의 설명입니다.
특히 이 선박은 이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해 지난 2023년 7월 미국 재무부의 제재 대상 목록에 오른 사할린 해운사 소속 선박 중 하나로 제재를 위반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또 우크라이나 국방부 산하 정보국(GUR)이 운영하는 '전쟁과 제재'(War & Sanctions) 홈페이지에 기재된 '사할린8'호에 관한 공식 설명에도 "사할린8'호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으며, 러시아 극동 지역의 중요한 해상 운송 및 에너지 프로젝트와 관련돼 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보국에 따르면 사할린 8호는 폐쇄형 철도 갑판을 갖춘 이중 갑판(double deck) 구조의 쇄빙형 롤온/롤오프(ro-ro) 선박으로, 철도 화물열차와 차량 및 승객을 운송할 수 있는 다목적 선박입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 러시아 국적의 냉동 화물 선박인 ‘볼호프’(Volkhov, IMO 9196424)도 ‘사할린 8’호와 유사한 수상한 항적을 보였습니다. ‘볼호프’호는 윈드워드가 '밀수위험이 있는 주시 대상'(moderate risk)으로 지목한 선박입니다.
또 다른 해운정보사이트인 ‘마린트래픽’과 윈드워드에 따르면 ‘볼호프’호는 지난 6일 ‘사할린8’호의 AIS신호가 사라진 러시아 해역에서 신호를 끄고 항해했는데, 북한 해역을 거치는 약 이틀간 행방을 감췄다가 8일 한국 포항시 인근 해역에 다다라서야 위치가 다시 포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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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선박의 대북 제재 위반 가능성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정황과 관련해 북한과 러시아가 해상 물자 교역뿐 아니라, 최근 제기된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파병설 등과 맞물려 군사적, 경제적 협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알렉산더 마체고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 9일 러시아의 언론매체 로시스카야 가제타와 한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부상을 입은 수백 명의 러시아 병사들이 북한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혀 북러 간의 의료 협력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또 나토(NATO) 군사위원회의 새 의장인 쥐세페 카보 드라곤(Giuseppe Cavo Dragone) 제독도 지난 10일 우크라이나의 군사 전문 매체인 '아미인폼'(ArmyInform)과 한 인터뷰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과 미사일, 심지어 인력까지 공급하고 있다면서, 이는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더불어 한국 국방부는 1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에서 ‘우크라이나전 파병 후 무기·탄약 등 대러 지원을 지속하고 있고, ‘최강경 대미 대응 전략’ 기조 아래 수사적 비난과 무력 과시를 하고 있다’며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위해 장사정포 200문 이상을 지원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일본의 공영 방송인 NHK가 최근 북한이 올해 러시아와 협력해 무인기 생산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한 것처럼 북러 간의 군사, 정치, 경제 협력은 계속 밀착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해역을 지날 때마다 러시아 선박이 보여준 의심스러운 행동들이 대북 제재 위반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유엔 회원국들이 해상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온전히 준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한덕인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