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 북한 대사관 벽에 ‘음식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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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아프리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의 북한 대사관 벽에 붙어 있던 '함께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란 주의 사항을 지난 5월 자유아시아방송 취재진이 입수했습니다. 그 안에는 독특한 음식들의 조합을 나열하면서 건강에 어떻게 해로운지를 설명했는데요. 세네갈 현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식자재도 언급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보건∙의료 체계가 열악한 가운데 해외에 파견한 외교관들의 건강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붙여놓은 ‘보여주기식’ 안내일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서혜준 기자가 보도합니다.

열악한 의료 환경… 해외 파견자들을 위한 ‘위생 선전’

' 소고기와 시금치 – 독작용이 생길 수 있다'

' 근대와 닭알 – 배가 몹시 아프고, 설사를 하며 생명에 위험을 준다'

' 꿀과 게 – 해롭다'

' 토끼고기와 진채- 머리카락이 빠질 수 있다'

아프리카 세네갈 주재 북한 대사관 벽에 붙어 있던 ‘함께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의 내용입니다.

두 가지 특정 식재료를 함께 먹으면 배탈이 나거나 위장병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귀가 먹을 수 있다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구체적인 설명 없이 ‘해롭다’, ‘중독된다’, ‘눈을 상할 수 있다’고 쓰여있는가 하면, ‘메밀’, ‘근대’, ‘메추리고기’, ‘진채’ 등 세네갈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식자재도 적혀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함께 먹으면 중독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음식’도 소개했는데, ‘감초와 잉어’, ‘단고기(개고기)와 녹두’, ‘술과 커피’, ‘바나나와 토란’ 등을 명시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 취재진은 지난 5월 21일,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의 북한 대사관 벽에 붙어 있던 주의 사항 문서를 입수했습니다.

당시 북한 대사관은 현지에서 철수한 상태로 북한 달력과 식료품 포장지 등 대사관 직원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남아 있었는데, 이 주의 사항은 화장실(위생실) 벽에 그대로 붙어 있었습니다.

해당 문서를 본 북한 보건의료 전문가인 안경수 한국 통일의료연구센터장은 RFA에 “북한 해외 파견자들에게 위생 선전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똑같은 주의사항이 세네갈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주재 북한 대사관이나 외화벌이 사무실에도 붙어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 안경수] 왜냐하면 북한 같은 경우는 인력이 더 소중한 국가고, 어떻게 보면 사람 한 명이 노동으로 돈을 벌어 북한에 보내야 하는 한 부대(unit)니까요.

특히 열대성 기후를 띤 아프리카에서 음식을 먹고 탈이 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이같은 주의 사항을 더욱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안 센터장은 덧붙였습니다.

2019년 탈북한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도 최근(6월 17일) RFA에, “대체로 북한 외교관들이 해외에 파견되면 현지에서 받을 수 있는 의료 혜택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 류현우] 물론 신체 검사를 하고 합격한 사람들이 파견되는 건 분명한데, (해외에) 나가서도 병에 안 걸릴 거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저도 쿠웨이트에서 근무를 할 때 그런 식의 '함께 먹지 말아야 할 음식'과 관련된 것을 프린트해서 붙여놓고 있었어요. 그리고 세네갈에는 어떤 음식이 있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맞는 음식인지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도 그런 걸 붙여놓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드네요.

안 센터장은 과거 자신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찾았던 병원 게시판에도 식이 요법과 약초의 효능 등이 적혀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 안경수] 굉장히 아이러니한 거예요. 최첨단 과학이 있어야 할 병원 게시판에 이런 게 붙여져 있어요. 북한은 고려의학, 그러니까 한의학 등에 중점을 많이 두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해외 공관에 이런 게 붙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전문적인 자료는 중앙에서 선전용으로 뿌린 자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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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으면 중독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음식’에 관한 주의 사항 /RFA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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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당 문서에 언급된 음식의 조합과 부작용은 의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일까.

북한에서 소아과 의사로 일한 탈북민 출신 한의사 김지은 씨는 RFA에 “조금 엉뚱하고, 한국 사람들이 볼 때 매우 이상하겠지만, 북한에서는 실제 이렇게 따르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문서에 명시된 음식의 성질에 따라 몸에 해로울 수 있다는 건 과거 ‘동의보감’ 등에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겁니다.

[ 김지은] (예를 들어) 메밀은 찬 성질이 약재입니다. 근데 수박도 우리가 여름에 먹잖아요. 수박도 찬 성질이 과일이거든요. 찬 것과 찬 것을 먹게 되면 속이 몹시 차고, 그러면 배가 많이 아프단 말이죠. (또 다른 예로) 꿀이나 사탕과 게, 원래 이 두 음식은 상극으로 알려져 있어요. 과학적으로 '어떤 근거냐' 하게 되면 답변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옛 서적들에는 게장을 먹고 꿀을 먹거나 사탕을 먹으면 설사하고 몸이 두드러기가 나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기록돼 있어요.

또 김 씨는 ‘중독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음식’ 중 단고기(개고기)와 녹두의 예를 들었을 때, 개고기는 성질이 따뜻해 몸을 보호하고 양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반면, 녹두는 성질이 차고 양기를 끌어 내리기 때문에 상극의 음식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김지은] 아주 타당성이 없지는 않지만, '매우 유치한 문서다'라는 생각이 사실 들기는 하거든요. '굳이 지금 시대에 이렇게 해야 되나'라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북한 특성상 간단한 상식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하려고 하고 있어요.

특히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병원 치료가 용이하지 않을 수 있어 미리 해외 파견자에게 주의를 주기 위한 예방 조치일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북한 외교관이나 외화벌이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비싼 약을 복용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북한 의약품을 챙겨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김 씨는 덧붙였습니다.

[ 김지은] 북한에서는 고려약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약품은 해외에서 굉장히 반응이 좋다고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런 약품들이 독성 실험이나 중금속 검사를 해보면 한국이나 발전된 나라들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들을 가지고 있죠. 그럼에도 치료에는 어느 정도의 상당한 유의성을 발휘한 약재들이 있거든요. 이런 약들을 해외에 가지고 나갔을 때 아주 고가의 약들을 쓸 수 없는 사람들한테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겠죠.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매우 필요할 수도 있거든요. 그 안에 독성이나 중금속이 있든 말든 일단 지금 당장 어떤 효과를 볼 수가 있다면 사용할 확률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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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성제약종합공장’이 생산한 ‘인삼 엑스’ 포장지가 세네갈 주재 북한 대사관에 버려져 있다. /RFA photo

아울러 그는 북한의 무너진 의료 체계로 인해 주민들은 몸이 아파도 병원 치료가 쉽지 않기 때문에 해외 파견자들도 가능하면 몸에 불편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미리 주의하고 예방하려는 조치일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다카르에 있는 약국에는 다양한 의약품들로 가득했고, 취재진이 직접 방문해 보니 손쉽게 필요한 약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사관 벽에 붙어 있던 주의 사항은 병원에 대한 접근성과 보건∙의료 혜택이 열악한 북한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 안경수] 북한이 현대적인 의학보다는 아직도 소위 민간요법, 음식 요법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겁니다. 한의학을 중시하는 건 북한의 의료 문화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첨단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결여된 기술력을) 보충하려는 겁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