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퍼스트레이디, 닮은듯 다른 옷차림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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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최근 남북한의 퍼스트레이디(영부인)들이 공식 석상에 입고 나온 옷차림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대비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건희 여사는 검소한 옷차림으로 등장한 반면 리설주 여사는 김정은 총비서의 흰색 원수복과 색상을 맞춰 동등한 지위를 나타내는 듯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남북한 퍼스트레이디들의 패션정치, 박수영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남북 퍼스트레이디 같은 흰색 의상 , 다른 의도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리설주 여사는 김정은 총비서의 흰색 ‘공화국 원수복’과 색상을 맞춘 듯 하얀 투피스를 착용했습니다. ‘원수’는 북한군 내 최고 계급으로 흰색 원수복은 최고 통수권자의 지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리설주 여사의 흰색 의상도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이어 이달 10일에 열린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김건희 여사는 한 영세업체에서 제작한 순백색의 원피스를 입었습니다. 김건희 여사는 소상공인 진흥 차원에서 사비로 이 의상을 구매했다며 서민 경제에 신경 쓰는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이렇듯 같은 순백색의 옷차림이지만 이를 통해 전하는 정치적 의도는 사뭇 달랐습니다.

조한범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3일) RFA에 흰색 투피스를 입은 리설주 여사가 북한 주민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으리라 짐작했습니다.

[조한범]이번 열병식에서도 단연 리설주 여사가 눈에 띄었다고 할 정도로 평양 시민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의상과 더불어 리설주 여사는 열병식에 참여한 각급 군 지휘관들을 직접 격려하는 등 ‘한 발 앞으로 나온 정치’를 선택했습니다.

반면 김건희 여사의 취임식 패션 키워드(주제)는 ‘검소함’과 ‘한 발짝 뒤’였습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원은 김건희 여사의 이런 태도가 딱딱한 윤 대통령의 이미지를 상쇄하고 경제를 생각하는 정권임을 각인시키려는 노림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조한범]김건희 여사로서는 청렴하고, 깨끗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보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아요. 또 검찰총장 출신이었던 윤 대통령의 다소 경직된 이미지를 중화시키는 친서민적인 행보가 필요한 상황이고, 지금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그런 것들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이렇게 보는 거죠.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대표는 김 여사의 의상이 ‘한 발짝 뒤’, ‘조용한 내조’를 상징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박영실]기본적으로 김건희 여사가 이번에 취임식에서 입고 나온 옷이 하얀 색상이었죠. 이 색상을 통해서 깨끗한 출발을 보여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조용한 내조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순백색 원피스를 통해서 어필하지 않았느냐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커리어우먼(직업여성)으로서 전문적이고 절제된 이미지도 아울러서 연출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분석입니다.

아울러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박 대표는 설명합니다.

[박영실]영부인 패션 자체가 국제 경제는 물론이고 국내 경제에까지 파급 효과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에서 우리 대한민국 국내 패션 그런 경제에 아무래도 부흥을 위해서 소상공인을 통한 맞춤복을 선택하지 않았느냐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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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총비서와 그와 나란히 걷는 리설주 여사 (위).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그 뒤에서 걷는 김건희 여사 (아래). /연합 (Photo Illustration)

리설주 , 고급 패션으로 서민들과 차별화된 권력 과시

이처럼 남북한이 상반된 퍼스트레이디 이미지를 구축중인 배경은 뭘까?

조한범 선임연구원은 리설주 여사가 이번 열병식에서처럼 북한 사회가 권장하던옷차림이 아닌 서구적이고 화려한 의상을 택한 이유는 차별화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한범]패션에서 굳이 서민적인 이미지를 표출할 필요가 없죠. 오히려 서민과 차별화된 이미지를 부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중의 여론을 신경 써야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한 나라의 수장과 측근이 사치스러워 보일 경우 부적절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지만, 최고지도자를 신성시하는 북한에서는 오히려 일반 서민들과의 차별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겁니다.

[조한범]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김건희 여사가 명품을 쓴다고 하면 바로 얘기가 나올 정도지만, 북한은 명품을 쓴다고 그게 전혀 문제가 안 되고. 오히려 인민과 차별화되는 걸로 받아들이거든요. 김건희 여사는 민주주의 여론을 신경 써야 하지만, 리설주 여사 같은 경우는 그럴 필요가 없죠.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도 (11일) RFA에 리설주 여사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의상은 북한 지배층의 권력 과시용 수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리설주 여사도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고급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 있는데 고급자나 고급 옷차림, 등을 과시하면, 북한 주민들이 "우리와 지도자와 지배층은 힘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박영실 대표는 리설주 여사가 옷차림을 통해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나쁘지 않음을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영실]리설주 여사는 명품을 통해서 북한의 경제 사정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자리에서는 명품을 선택하지 않았을까라고 짐작이 됩니다.

조 선임연구원은 북한 선대 최고지도자들보다 권력 기반이 약한 김정은 총비서에게 리설주 여사는 중요한 조력자라고 설명했습니다.

[조한범]김정은의 경우에는 그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같은 정치적 권위와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친인민행보 즉, 친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고 있고, 그 보조 역할을 하는 게 리설주 여사거든요.

그는 나아가 북한 당국이 리설주 여사를 언론 매체에 꾸준히 노출시켜 북한 주민들에게 리 여사를 ‘인민의 어머니’로 각인시키려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조한범]김정은 총비서는 지금 본인의 우상화와 함께 리설주 여사를 김정은 총비서에 버금가는 인민의 우상화, 나아가 인민의 어머니로 인식시키는 작업을 주로 본격화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북한 주민들에게 리설주 여사의 노출도가 커질수록 김정은 체제는 할머니 김정숙 여사의 이미지를 거스르려고 작업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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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석상에서 리설주 여사의 옷차림. /연합 (Photo Illustration)

김정은·리설주의 패션정치는 ?

북한은 옷차림을 통해 계급을 구분 짓거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등 패션정치를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마키노 기자는 과거 북한에서 사회주의 생활양식이라는 명분으로 서민들의 의상을 획일화시켰기 때문에 차별화된 의상이 권력을 상징하는 수단이 된다고 평가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북한은 옛날에 다 같은 군복이나 제복을 입었습니다. 이는 최고 지도자 이외에는 다 똑같다는 사회주의적인 이념과 북한 국경 기업소가 생산하는 옷차림 이외에는 구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가죽 코트는 김정은 총비서가 하사하지 않으면 입을 수 없어 가죽 코트가 권력의 징표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총비서가 김씨 일가의 권력을 견고히 하기 위해 패션정치를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에서는 볼 수 없는 정치 형태라고 말했습니다.

[조한범]북한에서 지도자는 백두혈통, 다시 말해 일반 인민과는 구분되는 신성한 영역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김정은 총비서와 사진을 찍는 것도 영광이고, 김정은 총비서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도 영광이고. 즉, 모든 것들이 지도자의 은혜에서도 비롯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설주나 김정은이나 모두 자본주의적 지도자와 완전히 다른 행보를 하고 있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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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gives field guidance during a visit to Samjiyon City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gives field guidance during a visit to Samjiyon City, North Korea in this undated photo released on November 16, 2021 by North Korea's Korean Central News Agency (KCNA). KCNA via REUTERS ATTENTION EDITORS - THIS IMAGE WAS PROVIDED BY A THIRD PARTY. REUTERS IS UNABLE TO INDEPENDENTLY VERIFY THIS IMAGE. NO THIRD PARTY SALES. SOUTH KOREA OUT. NO COMMERCIAL OR EDITORIAL SALES IN SOUTH KOREA. (KCNA/via REUTERS)
김정은 총비서가 북한 삼지연시를 방문해 현장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KCNA)이 2021년 11월 16일 보도했다. /Reuters

박 대표는 북한의 이러한 추세와 다르게 세계적으로 권력층의 검소한 소비가 대두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영실]우리나라에서는 전 세계적으로도 지속가능경영 같은 것들이 화제가 되면서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이 조금 더 검소해지는 추세이거든요.

마키노 기자는 전 세계적인 흐름과 상반되는 북한 권력층의 화려한 옷차림은 당분간 이어질 걸로 전망했습니다.

[마키노 요시히로]사회가 점점 성숙되면 (과시하는) 행위가 품격이 없는 행동이라는 비판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지도자에 대해서는 이러한 비판이 자주 나옵니다. 김건희 여사가 저렴한 옷을 좀 입고 나온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북한도 앞으로 사회가 성숙되성숙되어의 자유도 생기면한국하고 똑같이 될 것고 생각합니다만, 그 길은 아직도 멀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