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히로시마 대학교 객원교수 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와 함께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는 '한반도 톺아보기' 입니다. 최근 급변하고 있는 한반도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는 시간으로 대담에 박수영 기자입니다.

북 , 사유농과 밀무역으로 대규모 아사 사태는 겨우 면해
<기자>북한은 지난 26일 '농업'이라는 단일 주제로 2개월 만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다시 개최했습니다. 앞서 한국 통일부도 최근 북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현재 북한의 식량 사정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마키노 요시히로 :제가 취재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1990년도의 고난의 행군 정도는 아니다"는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고난의 행군 당시에는 북한 안에서 100만 명 이상이 아사했다고 합니다. 국제기관이나 각국 정부의 추정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해마다 식량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50만-100만 톤 정도 모자란 상황이 계속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아사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산간지역 같은 시골 지역에 등록되지 않은 농경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농민들은 여기서 나온 수확물을 국가에 바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를 열심히 가꾸고 수확량도 (집계에 비해) 비교적 많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북한과 중국 국경 지역에서 일어나는 밀무역입니다. 다만 2019년 이후 신종 코로나비루스 대유행 때문에 북·중 국경지대가 봉쇄돼서 양국 간 밀무역 양도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또 김정은 총비서는 이미 2021년 6월 회의에서 식량 사정이 '긴장 상태'라고 인정한 바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하루에 세 번 식사를 두 번으로 줄이면서 대응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여러 시골 지역에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 농경지도 많지 않기 때문에 (식량난이)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물류의 제한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골 지역에서 아사자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식량을 구하려고 우왕좌왕하면서 사회의 기능이 마비됐던 고난의 행군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김씨 일가 호화생활과 무력 과시로 실질적 농업 부문 투자 부족
<기자>새시대 농촌혁명 강령을 실현한 지 1년 만에 식량 문제가 다시금 불거지고 있는 건데요. 소위 말하는 "절박하고, 전투적인 과업"으로 농사를 앞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 문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뭐라고 봐야 할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김정은 총비서도 2011년 말 권력을 계승한 후에 몇 번이나 농업이나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바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개혁을 많이 했지만 주로 협동농장에서 일하는 농장원들을 한 명-네 명 정도의 그룹으로 나눈 포전담당책임제도 도입했습니다. 개인이 일한 성과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해서 생산성을 향상하려고 했다는 말이죠. 그리고 2022년에는 옥수수 생산보다 밀과 보리 생산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바도 있었습니다. 1년 중 가을에 보리나 밀의 씨를 뿌리고 여름에 수확하면 옥수수와 이모작도 가능하다는 거죠. 또 김정은 총비서는 농촌 개혁도 호소한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올 2월 당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변혁적인 농업 투쟁을 해야 한다고 재언급했기 때문에 과거에 추진했던 정책이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실패했던 많은 원인 중 하나는 포전담당제가 이도 저도 아니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결국 사유재산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을 충분히 향상하지 못했다는 말이죠. 그리고 역으로 북한은 시골 산간지에서 사유지로 쓰였던 등록되지 않은 농경지를 등록시키려 했기 때문에 농민들이 반발했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또 화학비료나 농업기계인 트랙터 등이 아주 부족합니다. 태풍 등 대규모 자연재해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도 돼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군이나 고위 당 간부의 생활을 우선시하면서 농업에 대한 충분한 투자를 안 해왔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생겼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자>농업을 주제로 한 이번 전원회의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이 이번에 연 당중앙위원회 전체 회의는 특징이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김정은 총비서가 간부들이 지시를 듣지 않고 아무 것도 안 했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연설에서 "당 전체에 강력한 지도체계가 확립되고 전체 인민의 단결된 힘이 있는 한,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역으로 보면 당 지도력이 부족해서 인민들이 단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김정은 총비서가 지시한 농촌·농업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즉, 당 지시는 틀림이 없는데 주민들이 따라오지 않았다고 의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북한 간부들은 최고지도자에 (농업 부문이 실패한) 이유는 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김씨 일가의 가족이나 측근들에 호화스러운 생활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부문에 제공할 수 있는 돈이 없다"는 말을 못 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총비서가 '나는 옳은 지시를 하고 있는데 밑에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당 지시는 어쩔 수 없이 객관적이지 않고 정치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노동신문도 2월 25일 "신념을 갖고 농업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도 하나의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회의를 백 번, 천 번 열어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북 , 보릿고개 앞두고도 '김주애 띄우기'에 집중"
<기자>이처럼 주민들의 식량난은 여전히 심각한 가운데, 김정은 총비서의 딸 김주애가 고급 외투에 가죽장갑을 끼고 열병식에 등장해 호화로운 식사를 하는 모습이 방영됐죠. 이를 두고 북한 주민들이 "화가 치민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는데, 북한 당국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보시는지요?
마키노 요시히로 :이번에 북한 당국이 김주애가 호화로운 식사를 하는 장면을 공개했는데 그 대상이 일반 북한 주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붉은 귀족'들을 상대로 일반 주민들이 북한 체제에 저항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김주애를 보고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북한 정부에 반발심이 들어도 자기나 가족들이 불행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행동은 안 하리라 봅니다. 북한이 이처럼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김주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붉은 귀족이나 국제사회에 보여주려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붉은 귀족을 상대로 김정은 총비서 가족은 로열패밀리의 몸통이고 김여정 가족은 곁가지라고 인식시키려는 노림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이는 '붉은 귀족들이 김여정 부부장에 줄을 서는 게 아닌 김정은 총비서에 줄을 서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유엔이나 한미일이 계획하는 제재가 북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또 북한 로열패밀리는 일본이나 영국의 왕실과 같은 권위가 있다는 것을 선전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봄철 기근을 뜻하는 춘궁기가 다가오면서 북한 식량난이 더 심해지리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이 세계식량계획 지원을 희망하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통일부는 밝혔는데요. 다만 3월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으로 남·북·미 긴장감이 팽팽한 상황에서 한반도 내 협력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마키노 요시히로 :북한은 상황이 어려워 유엔의 지원을 받는다 해도 적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이나 한국에서 식량 지원은 절대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도 붕괴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최고지도자는 북한에서 하느님과 똑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신자들의 생활이 너무 어려워도 하느님을 비판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은) 스스로 기도가 모자라기 때문이고,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 같고요. 북한에 식량이 모자라더라도 (체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협력도 신중하게 대응할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현재 북한은 젊은 세대에게 세뇌의 효과가 별로 없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젊은 세대 사이에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존경심이 낮기 때문에 앞으로 최고지도자를 비판할 가능성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세대의 김주애 씨를 등장시키거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젊은이들이 한국 문화에 영향을 받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북한의 젊은 세대가 국제사회의 여러 가지 정보에 접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김정은 체제가 오래가지 못 하리라 생각합니다.
<기자>네, 마키노 기자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