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 보유)'라고 지칭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이병철 한국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를 두고 "북한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하려는 유인책, 즉 계산된 발언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또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핵 군축’ 협상에는 동의할 가능성이 작다며, ‘핵 동결’이나 ‘미니 비핵화’가 현실적인 대안이자 미북 협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대담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은 아냐 … 한국의 '핵무장'은 여전히 비현실적
[기자]이병철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현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우선 교수님께서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이병철]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로 지칭한 것과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핵무기 보유국(nuclear weapon state)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 지명자까지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로 칭한 것은 개인적으로 계산된 발언일 수 있다고 봅니다. 김정은 (총비서)에 호의적인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라는 간판을 새롭게 달아준 것이 아닌가란 의심을 해보기도 합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을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으로 부르는 것과 별도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실체를 놓고 미국이 새롭게 작명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클리어 파워’는 미국과 북한이 각자 표현하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북핵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되, 해석은 각자에게 맡기는 거죠. 이렇게 중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용어로 북한을 지칭한 후 협상장으로 유도하려는 일종의 유인책일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기자]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으로 한국 내에서는 핵무장에 대한 관심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면, 남한도 균형을 위해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건데요. 교수님께서는 지난 RFA 인터뷰에서 "한국의 핵무장은 실현 가능성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전히 똑같은 견해이신가요?
[이병철] 저는 예전과 변함없이 한국의 핵무장은 여전히 실현 가능성이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핵무기 위력에 버금가는 재래식 무기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음속 무기와 각종 드론(무인기), AI(인공지능)와 인공위성 기반 첨단 무기들로 인해 핵무기가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핵무기는 가성비가 높은 무기가 아닙니다. 보유 자체만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무기라고 보는데요. 초강대국들은 글로벌 전략상 높은 유지 보수 비용에도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성이 있겠지만, 북한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가 제재를 무릅쓰면서까지 핵무기 숫자를 계속 증대할 필요성은 점차 낮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재래식 무기에서 북한을 훨씬 능가하는 한국이 핵무장을 할 경우 국제적으로 제재가 이어질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 구조에서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저는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뉴클리어 파워' 발언 이후, 한국 정치인들이 핵무장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가의 이익보다는 정치적 측면을 더 고려한 것 아닐까요?
[이병철] 한국 내에서 핵무장에 대한 지지도는 일정하게 70% 정도로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권자의 지지에 부응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핵무장은 분명히 매력적인 구호입니다.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90%에 육박하는, 즉 수출이 막히면 빠르게 경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국가입니다. 핵무기 개발로 제재가 가해질 경우, 한국이 어떻게 온전히 버틸 수 있을까요. '핵무기를 갖고 싶다'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서로 매우 다른 개념입니다. 핵무장에 따른 대한민국의 이익과 손실을 면밀히 분석한 후 이를 근거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무장 주장은 손익 관점에서 볼 때 이익보다 손실이 큰 하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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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 '핵 군축' 동의 가능성 작아…'핵 동결', '미니 비핵화'가 대안

[기자] 그동안 미국의 대북 정책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비핵화'였는데요. 사실 미국 내에서도 '이젠 비핵화가 어렵다'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그래서 비핵화보다는 핵 동결과 군축 협상이 더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이것은 북한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죠. '비핵화 협상' 대신 '핵 군축 협상'이 가능할까요?
[이병철] 북한의 비핵화가 이전보다 훨씬 어렵게 된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많은 전문가가 북한의 비핵화를 두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데요. '핵 동결'이 '핵 군축'보다 훨씬 실현 가능한 옵션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핵 군축을 요구하겠지만, 미국이 이에 응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미국 입장에서 핵 군축은 러시아, 중국 등 핵 강국들과 논의할 의제라고 할 수 있는데, 북한이 핵 강국들의 핵 군축 논의에 끼어들 여지는 매우 좁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미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이른바 북한의 ‘미니 비핵화’를 위해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것은 하나의 가능한 옵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조건은 북한의 핵물질 생산 동결과 핵미사일 시험 및 발사 중지, 이에 대한 충분한 검증 수용 등 비핵화 선행 조치와 맞바꾸는 일입니다. 선행 조치에 대한 검증은 기술적으로도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미국 성조기가 펄럭이는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설치되고 북한으로 흘러가는 개혁 개방의 수문을 열 수 있다고 봅니다. 거래를 중요시하는 지도자로 평가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기자]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에 '뉴클리어 파워'라는 간판을 붙여준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미국이 이런 간판을 붙여주고도 북한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 정책을 계속 고수할 수 있을까요?
[이병철] 저는 미국의 외교 정책은 근본적으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이 세 나라의 핵 군축을 논의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지만, 그 의미는 핵 군축인 것으로 해석하는데요.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개인적으로는 '핵을 점점 없애야 한다'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에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핵에 관한 미국의 정책은 '핵무기를 점차 없애자'가 핵심 정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미북 대화까지 시간 걸릴 듯 … 올해 APEC도 분기점
[기자] 한국 정부는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 정책'을 버리면, 한국은 북핵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이병철] 이미 여섯 차례 핵실험을 한 현시점에서 김정은 정권이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내려놓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렇다고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으로도 보지 않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순간 NPT 체제는 붕괴 수순으로 갈 것이며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국가들도 빠르게 핵무장을 하려 할 겁니다. 트럼프 정부라고 해도 이런 대혼돈 상황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따라서 한국은 보수, 진보를 떠나 북한의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첫날부터 김정은 총비서에 대해 언급하는 등 미북 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3일 미국의 폭스 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김정은에게 다시 연락할 것"이라고도 말했는데요. 교수님은 미북 대화 가능성을 어떻게 내다보시는지, 만약 변수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병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총비서에 대해 개인적인 호감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 내 산적한 문제로 인해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북한 핵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미북 간 물밑 작업은 비밀리에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가시권 내로 떠오르기까지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본격적인 미북 대화는 올해 하반기에나 시작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다소 희망적인 관측으로는 올해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이 한국 경주에서 (10월 말에) 개최될 예정인데,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미북 간에 분기점이 형성될 수 있다고 예상합니다.
[기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총비서의 만남이 성사되기 위한 선행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군이 개입된 상황이라, 이 전쟁이 마무리된 이후에야 대화 또는 만남이 가능할 거라는 견해도 많습니다.
[이병철] 저는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갖고 있는 개인적인 꿈은 노벨 평화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중동 문제를 해결하고, 비핵화는 어렵겠지만 북한 문제까지 어느 정도 해결했다고 판단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과시하며 노벨 평화상 후보를 요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역할도 차츰 약해지고, 이에 따라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는 자연스럽게 어떤 형태로든 끝이 날 것으로 봅니다. 미북 간 대화의 물꼬가 어떻게 트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미니 비핵화' 내지 '스몰 딜(부분 합의)'로 출발점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자] 이런 가운데 현재 한국 지도부는 혼란스러운 상태인데요. 사실상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막혔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더 악화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통미봉남이 더 심해질 것 같은데요. 게다가 만약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 관계가 당장 개선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점은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이병철] 국내 정치 상황이 우울하고 비관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남북 관계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러 갈래로 꼬여 있다 보니 이런 남북 관계를 단기간에 풀어가기는 불가능해졌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한국과 결별하기로 굳게 작심한 상태잖아요. 그렇다 보니 북한은 혼란스러운 한국의 정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서, 갈수록 통미봉남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으로 예상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에서 차기 진보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단절된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기자]교수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의 이병철 교수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뉴클리어 파워' 발언에 대한 해석과 미국의 비핵화 정책, 미북 대화 가능성 등에 관해 짚어봤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