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한인권법 20주년] ‘북한인권특사’의 역할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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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자유아시아방송은 이 법을 통해 임명된 ‘북한인권특사’의 의미와 역할을 조명했습니다. 제이 레프코위츠 초대 북한인권특사부터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한 로버트 킹 전 특사, 그리고 공석 6년 만에 임명된 줄리 터너 특사를 통해 북한 인권에 대한 이들의 노력과 바람을 직접 들어봤습니다.]

미 북한인권법이 보장한 ' 북한인권특사 '

지난 2004년 3월 23일, 미국 연방 하원에 상정된 ‘북한인권법안’ (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of 2004).

몇 차례 수정을 거친 이 법안은 같은 해 7월 만장일치로 하원을 통과한 뒤 9월 28일 상원도 만장일치로 통과했습니다.

[ 샘 브라운백 / 전 미 상원의원 (2004. 09. 24)] 이것은 위기입니다 . 북한의 인도적 위기이자 인권 위기입니다 . 북한인권법은 이러한 문제를 부각시키고 북한 내 인권 비극을 다루는 세계 많은 나라들의 모범이 되기를 희망하는 미국의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

2003년 ‘북한자유법안’을 제출한 샘 브라운백 (Sam Brownback) 전 상원의원을 비롯해 북한인권법안 공동 발의자인 제임스 리치(James Leach) 전 상원의원, 톰 랜토스(Tom Lantos) 전 하원의원 등이 법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상∙하원을 통과한 북한인권법안은 2004년 10월 18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신속히 발효됐습니다.

이 법안은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한 ‘인도적 지원 제공’, ‘정보의 자유 촉진’, ‘북한 난민 보호’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으며 특히, 대통령이 국무부 내에서 북한인권특사를 임명할 것을 명시했습니다.

미국의 북한인권특사는 정확히 무슨 일을 하며, 지금까지 북한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북한인권법에 따르면 대사급 직위를 부여받는 북한인권특사의 핵심 역할은 미 국무부 인구난민이주국과 협력해 탈북 난민을 보호하고, 북한 주민의 기본적 인권 개선을 위한 미국의 노력을 총괄하고 촉진하는 겁니다.

이에 따라 당시 부시 대통령은 2005년 8월 19일, 첫 북한인권특사로 제이 레프코위츠(Jay Lefkowitz) 전 백악관 국내정책 부보좌관을 임명했습니다.

[ 제이 레프코위츠 / 초대 미 북한인권특사 ]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인권특사를 임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은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

레프코위츠 전 특사는 임명 직후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 등 다른 국가들에 북한 인권 상황에 대처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4월에는 부시 대통령이 탈북민들과 납북 일본인 가족을 백악관에 초청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07년 3월 1일,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열린 북한 인권 청문회.

이날 레프코위츠 전 특사는 당시 미국에 난민 자격으로 정착한 탈북민 수가 30명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주민이 박해를 피해 탈북한 경우 미국 정부가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북한인권법을 통해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레프코위츠 전 특사는 북한인권법에서 강조하는 조항을 토대로 탈북 난민이 미국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 제이 레프코위츠 / 초대 미 북한인권특사 ] 북한 주민이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돕고 , 그들이 중국에 의해 체포돼 북송된 후 강제 수용소에 보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 중요한 비정부기구들과 함께 공식 또는 비공식 소통 창구를 통해 일했고 , 이들과 함께 북한 난민들이 궁극적으로 한국 , 또는 미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임기 동안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레프코위츠 전 특사는 북한 주민에게 외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 제이 레프코위츠 / 초대 미 북한인권특사 ] 한 젊은 탈북 여성과의 대화가 기억납니다 . 그녀가 어린 시절 ,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으로 한국 드라마를 몰래 보고 있었는데 , 그 마을에 경찰이 들어와 불법 VCR 과 테이프를 압수하기 위해 마을 전체의 전기를 끊고 가족 모두를 체포했다고 합니다 . 우리가 했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 자유아시아방송 '(RFA), ' 미국의 소리 '(VOA), 그리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민간 단체들이 북한을 조금이라도 개방하도록 돕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2009년 11월 24일에는 미국의 두 번째 북한인권특사로 로버트 킹이 임명됐습니다. 그는 25년간 톰 랜토스 전 하원 외교위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내며, 북한인권법 제정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입니다.

2009년부터 2017년 1월까지 약 7년 2개월 동안 북한인권특사직을 맡았던 킹 전 특사는 처음 지명됐을 당시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 로버트 킹 / 전 북한인권특사 ] 북한인권특사직을 만든 법안에 참여했기 때문에 제게 이 자리를 맡겨준 것은 매우 큰 영광이었습니다 .

특히 그는 북한인권특사로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북한 인권 개선을 연계하는 전략을 추진하게 됩니다. 북한 정부가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수용함으로써 인권 문제를 개선하도록 물꼬를 튼 겁니다.

또 킹 전 특사는 과거 동유럽 공산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에서 일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대북 정보 전달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했습니다.

[ 로버트 킹 / 전 북한인권특사 ]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핵무기와 군사 문제에만 집중해 왔습니다 . 하지만 미국 의회의 많은 의원들과 한국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북한 주민과 그들의 권리에 더 많은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 북한 주민이 정보에 접근할 권리와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누리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 이것이 미국이 시도하고자 했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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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남포항에 도착한 미국 선박에서 밀봉지 하역을 돕는 인부. /AP

미 북한인권특사의 첫 방북

2011년 5월, 킹 전 특사는 미국의 북한인권특사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게 됩니다.

제이 레프코위츠 초대 북한인권특사도 두 차례나 방북을 추진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북한은 미 북한인권특사의 역할을 북한 내정에 대한 간섭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레프코위츠 전 특사의 재임 기간인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북한이 핵 개발과 인권 문제로 인해 미북 간 외교적 긴장이 매우 높았던 때이기도 합니다.

[ 제이 레프코위츠 / 초대 미 북한인권특사 ] 사실 저는 두 번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었습니다 . 그중 한 번은 방문을 불과 24 시간 정도 남겨두고 북한이 도발을 했습니다 . 지하 핵실험을 감행했고 , 그 시점에서 우리는 평양 방문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

대북 인도적 지원에 중점을 뒀던 킹 전 특사는 2011년 첫 방북에서 북한 당국과 인도적 지원에 대해 논의하게 됩니다. 북한 주민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겁니다.

[ 로버트 킹 / 전 북한인권특사 ] 북한이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가 매우 분명했습니다 . 비행기를 타고 북한 전역을 내려다보면 시골 지역의 생활 여건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 제가 랜토스 의원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을 때 시장을 둘러봤습니다 . 소비재의 가용성이 높은 유럽 , 미국 , 인도 등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 북한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 대다수의 북한 주민이 이를 소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

그리고 약 9개월 후인 2012년 2월에 이뤄진 두 번째 방북.

킹 전 특사는 북한과 식량 지원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미국은 북한에 24만 톤의 식량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킹 전 특사는 두 번째 방북을 통해 북한의 식량 상황과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수집했고, 북한과 대화 창구를 유지하면서 인권 문제와 인도적 지원을 논의할 기회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킹 전 특사는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이 미북 관계 개선에 관심이 없었던 때에 방북한 것은 자신에게도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 로버트 킹 / 전 북한인권특사 ] 우리가 만난 북한 관리 대부분은 미북 간의 우정에 대해서는 기꺼이 축하했지만 , 실질적인 문제나 걱정거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훨씬 어려웠습니다 .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 ' 모든 것이 괜찮다 ' 고만 말했는데요 . 그게 참 어려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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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태국 치앙라이 지방 경찰서에서 탈북자들이 법원으로 호송되고 있다. /Reuters

미 북한인권특사의 의미

지난 2014년, 북한 인권 유린 실태를 상세히 기록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가 국제사회에 공개됐습니다.

이 보고서는 유엔이 주도하고 독립적인 조사에 의해 작성됐지만, 킹 전 특사가 미국 정부와 유엔, 그리고 여러 인권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북한 인권 상황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고, 이는 COI 보고서 작성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됐습니다.

특히 킹 전 특사가 당시 미국의 탈북 난민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들은 증언을 수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면서, COI 보고서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 기자 ] 미국에 특사직이 많지 않음에도 북한 인권에 관한 특사가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

[ 로버트 킹 / 전 북한인권특사 ] 북한이 까다로운 문제 , 즉 특별한 문제라는 것을 뜻합니다 . 특정 국가에 대한 인권 특사를 두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고요 . 이는 북한의 인권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나타내는 겁니다 .

북한 인권 개선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 온 미국.

하지만 2017년 킹 전 특사가 퇴임한 이후, 미국의 북한인권특사 자리는 무려 6년 동안 공석이었습니다.

2017년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북한 인권보다는 핵 협상을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로 삼았고, 김정은 북한 총비서와 정상회담까지 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년 뒤 정권이 바뀌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도 북한인권특사 임명이 지연됐다가 2023년 10월, 세 번째 북한인권특사로 지금의 줄리 터너 특사가 임명됐습니다.

[ 로버트 킹 / 전 북한인권특사 ] 터너 특사가 그 자리에 임명됐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 그녀는 그 자리에서 미국을 대표하고요 . 미국이 북한 인권 상황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상징합니다 .

터너 특사는 취임과 함께 북한 인권과 핵 문제는 함께 다뤄야 하는 문제임을 강조했습니다.

[ 줄리 터너 / 현 북한인권특사 ] 저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문제와 안보 상황이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점점 더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 한 예로 ) 우리는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으며 , 그 노동자들은 무기 프로그램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수익을 창출하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 . 이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따라서 지금은 인권과 무기 문제를 통합적인 정책으로 다루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지금 더욱 중요합니다 .

또 터너 특사는 탈북민, 시민사회 단체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것은 물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대북 압박을 위해 유엔, 동맹국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 정보에 대한 북한 주민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터너 특사가 큰 관심을 두는 것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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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로버트 킹 전 특사 퇴임 후, 6년간 공석이었던 북한인권특사 자리를 채운 줄리 터너 특사. /연합뉴스

[ 줄리 터너 / 현 북한인권특사 ] 누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 콘텐츠 ( 정보 ) 의 질보다는 양이 중요하다고요 . 정보가 부족한 북한 주민에게 가벼운 콘텐츠인 한국 드라마부터 그들의 결정을 도와줄 수 있는 뉴스 콘텐츠까지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농작물을 어떻게 관리할지 도움이 되는 날씨일 수도 있고 ,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시장에 참여하는 방법을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콘텐츠일 수도 있습니다 . 그래서 저는 북한 주민에게 어떠한 정보든지 계속 더 많이 전달할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

이 밖에도 터너 특사는 중국 내 탈북민들의 강제 북송을 강력히 규탄하는 데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더 많은 탈북 난민을 수용하고, 이산가족들의 ‘영상 등록부’ 구축을 논의하는 등 다양한 부문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인권특사를 지낸 세 사람이 북한 주민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미국은 지금도 굶주리고 억압받는 그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에게 자유를 느끼게 해 주고 싶은 것이 이들의 공통된 바람입니다.

북한 주민이 여느 다른 나라 국민과 똑같이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을 누리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그날까지 미국 정부와 북한인권특사의 역할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 로버트 킹 / 전 북한인권특사 ] 전체주의 체제는 항상 문제가 있었습니다 . 때로는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 북한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 이웃인 일본과 한국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 장기적으로 이를 행하는 국가들의 역사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 그리고 김정은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

[ 줄리 터너 / 현 북한인권특사 ] 미국이 북한 주민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고 , 그들의 안녕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북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 그리고 북한 정권에는 , 우리가 여전히 북한 사람들을 위하고 있고 , 인권에 관한 대화에 열려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 북한 사람들이 성공하고 번영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 그래서 우리는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날이 곧 오기를 매우 희망하며 , 그날을 고대합니다 .

에디터 노정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