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루마니아 출신 여류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 속 북한 여성들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은 서구 유행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결코 외모에 관심 없는 것이 아니며, 개성을 드러내고픈 본능적 욕구는 더 꿈틀대고 있습니다.
여성의 날 특집, [RFA 스페셜]에서는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며 주로 여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미하엘라 노록 씨가 발견한 북한 여성들의 감춰진 아름다움을 노정민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획일화된 기준과 틀에 감춰진 표현의 자유

루마니아의 사진작가 미하엘라 노록 씨가 2015년에 방문한 북한의 수도 평양의 모습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화려함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거리는 한산했고,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많았으며 낙후된 지역도 적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옷차림에서도 서방의 유행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노록 씨가 어느 날 해 질 무렵, 평양 시내 한 거리에서 만났던 여성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매우 여성스러웠지만, 그녀의 옷과 머리 모양은 여전히 과거에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미하엘라 노록] 평양 여성들의 옷차림은 유행을 타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1980~90년대 스타일 같죠. 당시 소련 영화를 보면 이같은 여성들을 볼 수 있는데요. 오늘날 평범한 평양 여성들의 일반 패션이었습니다.
노록 씨가 여러 도시의 북한 여성들을 보며 또 느낀 점은 바로 획일화였습니다.
연령과 지역에 관계없이 모두 비슷한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보니 각자의 개성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북한 여성들의 삶까지 똑같아 보였다는 겁니다.
[미하엘라 노록] 모두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고 행동도 비슷했습니다. 연령대별로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고요. 오늘날 현대 사회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고, 교복과 유니폼, 전통 한복, 일반 복장 등에서도 유행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지역의 여성이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외교관인 남편을 따라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평양에 체류했던 영국인 린지 밀러 씨도 RFA에 비슷한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 여성들이 옷과 머리 모양 등 외모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만, 개인의 행동을 엄격히 통제하는 북한 사회에서 개성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는 겁니다.
[ 린지 밀러 ]한번은 북한 여성과 장신구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 있고, 머리 모양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평양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옷과 외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노록 씨는 북한 여성들을 촬영하면서 그들이 지키고 넘지 말아야 할 보이지 않는 선이 있음을 체감했습니다.
심지어 여성들이 신는 하이힐에도 규정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미하엘라 노록] 물론 일부 여성들이 파마를 하거나 화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전혀 과하지 않았고요. 하이힐도 신었지만,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하이힐에도 어떤 규정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또 북한에서 축제가 있을 때는 모든 여성들이 전통 한복을 입는데, 북한에서는 한복을 입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북한 여성들이 따라야 할 경계선과 규정이 있다는 겁니다.

“유행에 뒤처진 것 같지만, 결코 외모에 관심 없는 것 아냐”
2019년에 탈북한 김민희 씨(북한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북한에서 외모와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실제 옷도 잘 사 입었습니다.
한국 생활 3년 차인 김 씨는 (3월 2일) RFA에 오히려 북한 여성들이 한국 여성보다 외모에 대한 욕구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제한적이지만, 옷과 머리 모양으로 개성을 드러내고 변화를 꿈꾸는 여성들의 마음은 똑같다는 겁니다.
[김민희 (가명)] 북한 여성들의 구매력이 크죠. 한국에서는 남이 입는 옷에 대해 별로 관심을 안 두던데요. 그런데 북한은 안 그래요. 못 먹어도 옷은 잘 입으려 하고, 누가 특이한 옷을 입으면 그 옷을 입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 옷을 사러 다니고, 신상품이라고 하면 그것이 전국적으로 다 풀립니다. 또 명품은 잘 몰라도, 외국 상표는 인정하고 그런 것을 입으려 하죠.
다른 탈북 여성 정유나 씨도 (2월 24일) RFA에 외모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는 한류의 역할도 컸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유나] 외모는 무조건 한국 드라마를 따라 한다고 보면 됩니다. 리설주도 한국 화장품을 쓴다는 뉴스가 나왔더라고요.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외국 상표의 인기가 더 좋았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김민희 (가명)] 북한 여성들이 옷과 화장품을 가장 많이 사는데, 한국 일부 화장품은 인기가 정말 많습니다.

린지 밀러 씨에 따르면 북한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고 있는데, 이는 연령이나 지역과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신발과 장신구 등 사소한 것에서부터 틀에 박힌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는 것이 밀러 씨의 설명입니다.
또 날씬한 몸매처럼 아름다움의 기준도 점점 서구화되는 추세입니다.
[ 린지 밀러 ] 대부분 북한 주민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꼭 일해야 하잖아요. 가족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반면, 평양 특권층의 젊은 여성들은 '몸매가 신경 쓰인다', '날씬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대비가 됐습니다.
북한 여성 25명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노록 씨는 그들에 대해 “북한 여성들이 세계적인 유행에 뒤처진 것 같지만, 그렇다고 외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히려 획일화를 강요하는 북한 체제의 어두운 단면이 북한 여성들의 외모에 투영돼 있다고 그는 꼬집었습니다.
또 노록 씨는 북한 여성들이 사회적 통제, 경제적 빈곤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공산주의 독재국가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든 삶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미하엘라 노록] 모든 여성들은 외모와 패션에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북한 여성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독재 국가에서 따라야 할 규정이 있기 때문에 서방 국가들처럼 과감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록 씨는 북한 여성들로부터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서구적 미의 기준과 성형수술 등으로 개성을 잃어가는 때에 북한 여성들에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겁니다.
또 아름다움에는 특정한 기준과 방향이 없는 다양성이 존재하는 데 북한 여성에게는 또 다른 전통적 미의 영역이 있었다는 것이 노록 씨의 설명입니다.
[미하엘라 노록] 사진에서 봤듯이 저는 북한에서 다양한 연령, 계층, 장소에서 북한 여성들을 만났는데요, 그 경험이 참 좋았습니다. 물론 북한 당국의 통제 때문이겠지만, 과하지 않은 화장, 자연스러운 머리 모양 등에서 순수함과 정직한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100여 개 국가를 여행하며 전 세계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남기고 있는 노록 씨는 공산주의 독재체제 아래서도 고유한 개성을 간직하고 있는 북한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그녀가 언젠가 다시 북한을 찾을 때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운 환경에서 외적으로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는, 북한 여성들의 달라진 모습을카메라에 담아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