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은둔의 나라로 알려진 북한. 하지만 오늘날 인공위성이 촬영한 사진으로 북한 전역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습니다.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살펴보고, 정치·경제·사회의 의미를 분석해보는 ‘줌 인 북한’. 정성학 한국 경북대학교 국토위성정보연구소 부소장과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지난해 밀∙보리 농사로 농업정책 변환을 선언한 뒤 재배 면적을 늘릴 것을 지시했는데요. 하지만 위성사진에서 확인한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겨울철 밀∙보리의 재배 면적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우주청(ESA)이 운영하는 센티넬-2A호가 촬영한 영상에 따르면 북한 황해남도 재령군 용교리의 협동농장은 밀∙보리 재배 면적이 3년 전보다 약 17% 감소했으며, 북한의 대표적 곡창지대인 황해도의 재령평야에서도 20% 이상 줄었습니다.
겨울철 밀∙보리 면적이 감소한 이유는 코로나 발병에 따른 통제 강화와 북중 국경 봉쇄로 농자재, 일손 등이 부족한 데 따른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재배 면적이 줄어들면서 북한의 밀∙보리 생산량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정성학 부소장님 . 안녕하십니까? 김정은 정권이 지난해 밀 생산에 주력할 것을 강조하면서 재배 면적을 늘릴 것을 지시했는데요. 최근 위성사진에서 파악한 바로는 겨울철 밀∙보리 재배 면적이 오히려 예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요?
[정성학] 네. 유럽우주청이 운영하는 센티넬-2A호가 촬영한 북한 황해남도 재령군 용교리 협동농장과 주요 곡창지대 중 하나인 재령평야 일대의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이번 겨울 밀∙보리 재배 면적이 예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용교리 협동농장은 재배 면적이 3년 전보다 16.9% 감소했고요. 재령평야 일대도 밀∙보리의 재배 면적이 20.4% 줄어든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국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전체 곡물 생산량이 전년도보다 18만 톤 감소했는데요. 겨울철 밀∙보리의 재배 면적이 감소함에 따라 올봄 보릿고개 때는 고비가 가중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그렇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밀∙보리 재배 면적이 감소했다고 하셨는데, 황해남도 재령군 용교리 협동농장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정성학] 지난해 12월 11일에 촬영한 센티넬 영상을 보면 재령군 용교리 협동농장의 논에서 작물이 푸르게 자라는 모습이 확인됐습니다. 원래 겨울철에는 논이 맨땅을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12월에 무언가 자라고 있다면 그것은 밀이나 보리일 텐데요. 지난 늦가을, 벼 수확 후 밀과 보리를 심은 것이 겨우내 자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런데 3년 전인 2019년 12월 12일과 비교했을 때 재배 면적이 적잖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제가 두 위성사진을 비교해도 푸른색을 띤 재배 면적이 확실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 그렇다면 재배 실태는 어떤지 파악이 가능한가요?
[정성학] 네. 센티넬-2A호 위성이 촬영한 영상을 이용해 밀∙보리의 재배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식생지수(NDVI) 기법을 이용해 위성영상을 분석했는데요. 식생지수는 지표면의 식생 유무와 활력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로서 겨울철 밀∙보리 재배지역을 판별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용교리 협동농장을 보면 이번 겨울철 밀∙보리 재배 면적이 15.2헥타르인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같은 기법으로 2019년 12월의 영상을 분석해보니 그 당시는 18.3헥타르에서 밀∙보리가 자랐습니다. 밀∙보리 면적이 3년 전에 비해 17% 정도 감소한 겁니다.
- 그럼 , 재령평야에서는 재배 면적이 얼마나 줄어들었나요?
[정성학] 재령평야는 북한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입니다. 재령강을 끼고 황해남북도에 걸쳐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는데요. 재령평야 일대를 센티넬 영상으로 분석해 보니, 이번 겨울철 밀∙보리 재배 면적이 81.6헥타르로 3년 전인 2019년 12월의 102.5헥타르에서 20.4%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겨울철 밀∙보리 면적이 감소한 이유는 코로나 발병으로 통제가 강화했고, 북중 국경 봉쇄로 농자재뿐 아니라 일손이 부족한 데 따른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물론 북한의 전체 밀∙보리 생산량은 겨울철과 봄철의 생산량을 모두 합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이렇게 재배 면적이 줄어들면서 대체로 생산량이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한국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북한에서 밀 ∙보리 재배 면적이 늘어 생산량도 약 2만 톤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했는데요. 이후 일부 지역에서 겨울철 재배 면적이 이렇게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것 같습니다.
[정성학]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른 봄에 심어서 늦봄이나 초여름에 수확하는 밀∙보리 농사가 있고,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심어서 봄에 수확하는 밀∙보리 농사가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 촬영한 북한 위성사진 대부분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었는데요. 다행히 지난해 12월에 촬영한 영상에서는 눈이 내리기 전인 깨끗한 영상을 겨우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코로나 대유행으로 북중 국경이 봉쇄되기 직전인 3년 전 영상과 비교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는데요. 북한의 식량난 속에 올겨울 북한의 밀∙보리 재배 면적이 예년보다 감소한 것이 앞으로 북한의 식량 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입니다.
- 마지막으로 그 동안 저희가 다뤄왔던 평산우라늄공장 주변의 농경지에서도 밀과 보리를 재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요 ? 안전성에 문제가 없을까요?
[정성학] 네. 황해북도 평산군 평화리에 있는 우라늄정련공장 일대의 농경지에서도 겨울철 밀∙보리를 재배하는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전체 재배 면적이 약 13.9헥타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한국의 인터넷 대북 매체인 ‘데일리NK’의 보도(2022년 1월 22일)에 따르면 우라늄공장 일대가 방사능과 관련된 독극물로 환경이 심하게 오염돼 인체에 끼치는 부작용이 크다는 소문이 돈다고 하거든요. 당연히 공장 주변의 논과 밭에서 재배하는 밀∙보리에 대한 오염 가능성도 우려되고요. 안전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끝으로 겨울철 북한의 밀 ∙보리 재배 면적의 감소가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정성학] 최근 한국언론이 정보당국자와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개성시에서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요. 양강도와 함경도 등 국경지역뿐 아니라 개성시처럼 상황이 좋았던 도시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서 보리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인데요. 구황이란 흉년과 기근에 굶주림을 면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위성사진에서 확인했듯이 밀∙보리 재배 면적의 감소는 북한 전체의 식량 생산량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요. 이번 겨울을 지나 올봄 보릿고개까지 북한 주민들의 식량 안보가 크게 우려되는 것이 지금 북한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 네 . 오늘은 겨울철 북한의 밀∙보리 재배 면적의 감소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줌 인 북한' 오늘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위성사진 전문가 정성학 부소장과 함께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정성학 부소장: chungsh1024@naver.com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