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북한 영변 핵 단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에 따르면 우라늄농축시설 인근에서 봄철 모내기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또 황해북도 평산군 우라늄정련공장 일대의 농경지에서도 밀과 보리를 재배하는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전문가들은 방사능 오염이 심각히 우려되는 핵 시설 내에서 식량을 재배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 사안을 조사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보도에 한덕인 기자입니다.
“영변 핵시설부터 폐기물 처리장에서도 영농활동”
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 랩스(Planet Labs)가 지난 5월 4일에 촬영한 북한 평안북도 영변의 핵시설 단지.
핵 단지 남쪽에 위치한 우라늄농축시설을 확대해 보면 핵물질저장고와 원심분리기실 인근에서 벼 모판과 함께 모내기를 준비 중인 것으로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위성사진을 분석한 한국 한반도안보전략연구원의 정성학 연구위원은 16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영변 핵 단지 전체가 방사능으로 오염됐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지만, 단지 내 일부 땅에서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를 짓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정성학] 위성 사진에서 왼쪽 아래를 보면, 모내기 철을 앞두고 시설 내에서 벼 모판을 조성해 놓은 것이 세 곳에서 식별됩니다. 비닐을 씌워 하얗게 보이는데, 북한 농촌에서 봄철 모내기를 준비하는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핵 물질 방사능 오염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시설 내에서 모판을 조성하고 벼를 재배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핵 단지 내에서 근무하는 군인과 근로자들이 자급자족, 자력갱생을 위해 자체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의 민간 위성 분석가인 제이콥 보글(Jacob Bogle) 씨도 지난 15일 영변 핵시설 내에서 이뤄지는 농업 활동에 대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인간의 소비를 목적으로 조성된 것이 분명하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이 지역에서 재배되는 농작물은 대부분 영변 지역의 과학자와 기술자, 경비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소비할 것이란 설명입니다.
또 보글 씨는 “북한의 식량 부족과 ‘자력갱생’ 정책의 하나로 거의 모든 이용 가능한 토지가 경작되고 있다”며 “이는 군사 기지와 핵 시설은 물론 오염된 토양과 공업 폐기물 처리장에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영변 핵시설 내에서 모내기 준비만 관측된 것이 아닙니다. 매년 봄과 가을마다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 주변에는 수확한 밀이나 옥수수, 보리 등을 말리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정성학] 그리고 위성사진으로 영변 핵시설 내에서 농사 관련 활동이 포착된 사례는 또 있습니다. 영변 5메가와트 원자로 지역을 보면요. 봄이나 가을이면 원자로 주변 도로상에 노란색의 물질을 말리는 모습을 위성사진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곡물을 널어 말리는 건데요. 가을에는 옥수수를 수확한 뒤 햇볕에 널어 말리는 거고요. 봄에는 밀이나 보리를 수확해 햇볕이 좋은 도로나 건물 지붕, 양지바른 곳에 널어 말리는 겁니다.
미 연구기관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조셉 버뮤데즈(Joseph Bermudez) 선임연구원도 지난 1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분명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다”라며, “대부분 서양 국가는 핵 관련 시설 주변에 일정 범위를 두고 그 안에서는 식량을 재배하지 않는데, 북한 영변의 모습은 매우 드문 경우”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셉 버뮤데즈] (구글어스 위성으로) 영변 지역을 살펴보면 원자로 바로 서쪽에 다양한 작물이 자라는 또 다른 밭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쪽으로 갈수록 기차역 남쪽에 큰 농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의 식량 공급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영변 핵 시설 외에 다른 미사일 기지를 보더라도 모든 곳에 어떤 형태로든 농업 활동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버뮤데즈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이러한 관행이 1990년대 이후 크게 늘어났는데, 특히 고난의 행군 기간 북한이 에너지와 식량 부족 등으로 핵 시설, 미사일 기지 등으로 식량 운송이 어려워지면서 더욱 두드러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밖에도 황해북도 평산군 우라늄정련공장 인근에서도 밀과 보리를 재배하는 농경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재배 면적이 전체 13.9헥타르(4만 2천 평) 규모에 달하는데, 공장 주변의 논과 밭에서 재배하는 밀과 보리에 대한 오염 가능성과 함께 안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돼 왔습니다.

전문가들 "불필요한 위험 초래… 현장 조사 시급"
영변 핵시설 단지와 우라늄정련공장 인근에서 이뤄지는 농업 활동과 관련해 올리 하이노넨(Olli Heinonen) 스팀슨연구소(Stimson Center) 선임연구원은 지난 17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핵시설 내에서의 농업 활동은 신중하지 않으며 불필요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역임한 하이노넨 선임연구원은 과거 국제원자력기구가 영변을 조사했을 당시 심각한 방사능 오염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 검사관들은 1992년 여름부터 2002년 말까지, 그리고 2007년 여름부터 2009년 4월까지 영변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하이노넨 선임연구원은 해당 지역에 대기, 토양, 지하수의 방사능 오염 여부에 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는 상황이지만, 방사능 오염뿐 아니라 일부 장소에서 사용되는 유독 화학물질에 따른 위험성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이는 영변뿐만이 아니라 풍계리 핵실험장과 평산우라늄광산, 정련공장 등에도 해당한다며, 핵실험장이 있는 풍계리 지역이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이노넨 선임연구원은 덧붙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핵폭발 시 대부분 플루토늄과 핵분열 생성물은 터널에 남아 있지만, 강력한 폭발로 산이 균열되고, 눈이 녹은 물과 빗물 등이 방사성 핵종을 지하수로 운반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다시 강을 타고 풍계리 마을을 지나 동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 통일부는 지난 15일부터 탈북민을 대상으로 피폭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전수조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이노넨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가 풍계리를 비롯한 핵실험 지역 출신 탈북민들의 방사능 오염과 영향을 파악하는 조사를 시작한 것은 좋은 일”이라며 “이는 상황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위성사진만으로는 핵 시설 내에서 재배된 곡물이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방사능은 저장고의 두께에 따라 유출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진만으로는 오염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곡물이 저장고에 든 핵물질과 얼마나 가까운지, 저장고의 밀폐 성능은 어느 정도인지 등도 추가로 고려해야 합니다.
조셉 버뮤데즈 선임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더 많은 과학적 증거와 토양 검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조셉 버뮤데즈] 결론을 내리기 전에 북한에서 암의 평균 발병률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탈북민들의 증언 외에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상적으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해당 지역에서 토양 검사를 수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평산에는 우라늄광산 시설이 있으며, 거기에는 큰 폐수 처리장이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의 건강과 생계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에 대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겁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대한 현장 탐방과 조사가 시급하다고 조언하지만, 북한 당국이 국제기구의 조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어 우려가 커지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 사안의 조사를 추진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자 한덕인, 에디터 노정민,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