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은둔의 나라로 알려진 북한. 하지만 오늘날 인공위성이 촬영한 사진으로 북한 전역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됐습니다.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살펴보고, 정치·경제·사회의 의미를 분석해보는 ‘줌 인 북한’. 정성학 한국 경북대학교 국토위성정보연구소 부소장과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북한 황해남도에 위치한 ‘과일비행장’에 전투기 10대가 5년 가까이 똑같은 자리에 주기돼 있습니다. 물론 모형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실제 전투기라면 유류 부족, 정비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방치됐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황해남도 태탄비행장에도 지난 4년간 움직임 없는 붙박이 전투기 14대가 확인됐는데, 이것도 역시 모형이거나 실제 방치된 전투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과일비행장에는 한때 도로 위에 옥수수를 널어 말리는 모습이 관측되면서 최근 북한 공군 전투력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위성사진 분석 전문가인 정성학 부소장과 함께 자세한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 정성학 부소장님. 안녕하십니까? 북한 황해남도 과일군에 비행장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 오랜 기간 주기돼 있는 전투기 모형이 있다면서요?
[정성학]이 비행장은 황해남도 과일군 온천리에 있는데요. 황남 ‘과일’ 또는 ‘온천비행장’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비행장은 미그-29 전투기가 전진 배치돼 있고요. 서부작전비행사 소속으로 대탄비행장, 누천리 비행장과 함께 대한민국 서북 5도를 위협하는 공군력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전투기가 출격하면 10여 분 만에 서울 상공에 도달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요. 그동안 이 비행장의 좌측 주기장에 비행기 10대가 항상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6년 10월 3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전투기 10대가 처음 포착된 이후 작년 5월 24일까지 같은 자리에 붙박이로 놓여 있었는데요. 최소 4년 8개월 동안 위치 변동 없이 같은 자리에 주기돼 있던 겁니다.
- 전투기가 5년 가까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것도 이례적인데요. 실제 전투기가 아닌 모형이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정성학] 맞습니다. 조금의 위치 변동 없이 4년 8개월간 그대로 고정돼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실제 전투기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물론 이 전투기들이 비행 후 돌아와 같은 자리에 주기할 수도 있을 텐데요. 하지만 거의 5년간 똑같은 위치와 방향으로 다시 주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모형물일 가능성이 큰데요. 예로부터 전장에는 모형물을 이용해 적을 기만하는 행위가 있지 않았습니까. 제가 한국 공군본부에 직접 문의해 보니 공군 비행장의 관계자는 “이 붙박이 전투기 10대가 모형일 수도 있고, 실제 전투기일 수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 위성사진으로는 모형과 실제를 구분하기가 어려운가요 ?
[정성학] 쉽지 않습니다. 인공위성 또는 항공기 촬영 사진을 이용해 전투기나 탱크 등 모형물을 탐지하는 노력이 대부분 실패했는데요. 왜냐하면 같은 크기에 같은 색상으로 페인트칠한 모형물에 대한 영상탐지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은 매우 구분이 어렵습니다. 또 위치 정보를 이용한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는데, 이처럼 붙박이 전투기가 장기간 위치 변동 없이 머물러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만용 모형물로 간주합니다. 황해남도 태탄비행장에도 움직임 없는 붙박이 전투기 14대가 확인됐는데, 이것도 역시 모형이거나 실제 방치된 전투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전투기 14대는 지난 4년간(2015.10.27~ 2019.11.07) 위치 변화 없이 붙박이로 있다가 2021년 9월에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전투기가 15대로 늘어나고 위치도 조금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전투기가 방치돼 있었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나요 ?
[정성학]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만약 실제 전투기였을 경우 이렇게 오랫동안 같은 장소에 방치해 둔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전투기를 띄울 만큼 기름이 충분치 않았거나, 비행할 정도로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가능성입니다. 실제 한국 공군 비행장 근무자는 “북한은 항공연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비행 훈련 없이 전투기를 그냥 주기해 놓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연료 부족이나 기계 결함, 정비 문제로 전투기들을 5년 가까이 방치했다면 전투기 내부에 있는 고성능 기계와 전자장비 등이 고장 나거나 훼손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 그것이 모형이었든 아니면 실제 전투기였든 , 그 동안 이 '과일비행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정황이 확인됐다면서요?
[정성학] 2020년 10월 24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으로 확인한 과일비행장의 모습을 살펴보니 지하 격납고와 활주로를 연결하는 도로 위에 옥수수를 널어 말리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가로 95m, 세로 14m 넓이로 노란색 면적이 보이고요. 인부 두 명이 그 가운데에서 작업 중인데, 사진 촬영 일시가 10월인 가을철임을 고려하면 옥수수를 수확한 뒤 장기 보관을 위해 햇볕에 널어 말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북한 군인들은 자급자족과 자력갱생을 위해 공군비행장 내 남는 땅에서 옥수수 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한국에서는 공군 부대 안 도로 위에서 옥수수를 널어 말리는 것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또 과거 겨울에 촬영한 황해남도 태탄비행장의 위성사진을 보면 눈 덮인 활주를 전혀 치우지 않은 모습도 확인됐는데요. 그만큼 정비가 안 된 모습에서 북한 공군 전투력의 현주소도 엿볼 수 있습니다.

- 네 . 오늘 살펴본 북한 황해남도의 '과일비행장', '태탄비행장'의 모습이 어떤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성학] 공군 활주로는 언제든 전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늘 정비돼 있어야 하는데요. 활주로 정비가 잘 안 돼 있고, 주변 도로에서 옥수수를 널어 말리는 것에서 공군 전투력의 약화, 비행장의 기능 상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비행장에 장기간 방치된 전투기들이 모형일 수 있지만, 실제 전투기였을 경우 북한 공군의 열악한 전투력 실상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 전투기의 고장 가능성도 크고요. 따라서 앞으로 국제사회는 경제난과 유류 부족에 따른 북한 공군의 군사 동향을 수시로 살펴볼 필요가 있고요. 계속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 전역의 공군비행장 운영실태를 면밀히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네 . 오늘은 북한 황해남도의 '과일비행장'의 모습을 통해 북한 공군 전투력의 현주소를 짚어봤습니다. '줌 인 북한' 오늘 순서는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위성사진 전문가 정성학 부소장과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