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1일, 7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남북한의 외교 전투가 끝났습니다. 이 날, 한국과 시리아는 수교를 결정했습니다.
오늘날 남북한을 제외한 유엔 회원국은 191개이고 그 나라들 가운데 한국과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이제 하나도 없습니다. 남한이 모든 유엔 회원국과 수교를 했다는 뜻입니다.
1948년에 남북한의 분단 이후 남한도, 북한도 자신들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 정권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60년대 말까지 다른 나라들은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하지 못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서울과 수교한 나라는 평양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없었고, 평양과 수교한 나라는 서울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없었습니다.
1970년대 초 들어와 상황이 조금 바뀌어 남북한과 동시에 수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초까지 서울과 평양은 가능한 한 많은 국가와 수교를 하기 위해 매우 심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1990년대 들어와 남한이 먼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진영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사회주의 나라들은 거의 모두 다 남한과 수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본 이유는 경제였는데요. 남한은 북한보다 경제력이 수십 배 컸기 때문에, 경제 협력 대상으로 매력이 컸습니다.
그래도 지난 20년 동안 여전히 남한과 수교하지 않고, 북한만 수교 관계를 맺은 국가들이 몇 개 남아있었고 마지막까지 남한과 수교를 거부한 나라들은 꾸바(쿠바)와 시리아였습니다.
하지만 작년 말, 꾸바는 대한민국과 수교했습니다. 기본 이유는 경제협력입니다. 꾸바는 수교 이전부터 북한과는 무역이 거의 없었지만, 남한과 매우 유익한 경제 교류를 많이 했습니다.
시리아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처럼 세습 독재 국가였던 시리아를 통치한 아사드 가문은 무려 54년 동안 잔혹한 독재를 이어갔고 북한에서 군사 지원을 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북한은 시리아로 공군 부대를 보낸 적도 있습니다.
1967년과 1973년에 시리아가 제3차 중동전쟁에 참전하고 이스라엘과 싸웠을 때, 북한은 시리아로 전투기 조종사를 파병한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은, 핵 개발을 꿈꾸었던 시리아로 핵기술까지 넘겼습니다. 북한의 기술 지원으로 만들어진 핵무기 연구소는 2007년에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으로 인해서 파괴됐습니다. 이 때문에 시리아 정권은 결국 핵을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에 시리아에서 혁명이 발생하고 아사드 일가의 정권은 붕괴됐습니다. 아사드 일가는 러시아로 도망갔습니다. 새로 수립된 시리아 정부는 친서방 민주 국가로 보기 어렵지만, 북한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매우 논리적 판단으로 남한과의 수교를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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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서울이 수교하지 않은 주권 국가는 이제 하나도 없지만, 평양이 아직 수교하지 않은 나라는 32개가 있습니다. 이들 나라는 압도적으로 우익 정권이 집권한 작은 나라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도 조만간 이들 나라 대부분과 수교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좋든 싫든 남북한은 현대 국제 질서 속에서 분단 국가보다 2개의 국가로 보이는 경향이 점점 뚜렸해지고 있는데요. 서울과 시리아의 수교는 이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