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칼럼] 총 대신 어머니 목소리를

지난 27일 조선중앙통신은 ‘사회주의 위업을 무장으로 받들어 가는 길에 청춘도 희망도 다 바칠 뜨거운 열망으로’ ‘평양시 안의 고급중학교 300여 명 졸업반 학생들이 최전연 국경초소들로 용약 탄원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탄원한 고급중학교 졸업반 학생들을 축하하는 모임이 평양시 청년공원 야외극장에서 진행되었다며, ‘혁명의 군복을 입고 청춘시절을 값높이 빛내이는 것은 우리 시대 청년들의 가장 큰 영예이고 자랑’이라고 강조하는 연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기사는 청년들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수호자의 총을 메는 것’은 ‘새 세대들의 숭고한 정신세계의 발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북한 당국은 인력이 부족한 험지의 사업장과 건설 현장 등지에 청년들의 노력을 ‘탄원’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배치해 왔는데요. 이 정책은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인 직업을 선택할 권리 또 희망하는 직업에 종사하며 생활을 영위할 권리 등을 위반하는 인권유린이기에, 국제사회의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의 취향과 의사, 희망과 무관하게 무리로 배치하고, 청년들이 스스로 ‘탄원(자원)’했다고 주장하는 이 정책은 북한 사회의 오랜 관행으로 고착되어 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북한 당국은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 방식으로 북한 인민군 병사들을 다른 나라의 전쟁터로 파병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에 잡힌 북한군 포로는 대부분 20대의 청년들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중학교를 갓 졸업한 평양시 청년들의 국경초소 탄원 보도가 예사로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최근 한국 언론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터로 파병되어 우크라이나군이 생포해 전쟁포로가 된 북한 병사들을 취재했는데 파병 북한 군인들이 전한 이야기가 충격적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인 쿠르스크로 지난해 말에 파병되었다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된 두 명의 북한 군인은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입니다.

지난해 10월 초 자강도 홍수 피해 복구 지원에 나갔다가 바로 러시아로 파병돼 12월, 전장에 투입됐답니다. 이들은 2천 5백 명가량의 북한 인민군 병사들과 함께 러시아 전쟁에 파병되었는데, ‘훈련 받으러 유학 간다’ 또는 ‘훈련을 실전처럼 하러 간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다른 나라 전쟁에 투입된다는 사실 설명도 없었고 당연히 파병에 동의하는지 묻지도 않았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먼 길을 와보니 러시아가 시작한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투입됐더라는 설명이지요. 물론 부모님께도 행방을 알리지 못했고 이미 파병 전 10년간의 군 복무 시절에도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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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파병된 부대의 담당 보위원들은 우크라이나 군의 무인기 조종사들이 사실은 모두 ‘한국 군인’이라는 거짓말로 군인들을 속여, 북한 병사들은 한국 군인들과 싸운다고 상상하며 전투에 임했다고 합니다. 거기다 전쟁 포로로 생포되는 것은 변절이나 같다고 사상 교육 받으며 ‘잡히면 자폭하라’고 지시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구호로만 외치고, 실제 정책에서는 인민의 생명을 기계의 부속품보다 더 가볍게 여기는 특성이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러시아 전쟁터로 파병한 인민군 병사에 대한 처우는 당연히 국제법을 어깁니다. 1981년에 북한 당국도 가입하고 비준해서 북한 국내법과 같은 법적 효력을 지니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의 많은 부분에 위반한 행위입니다.

우선 북한 당국은 국제 규약의 ‘당사국 정부가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할 의무’를 방기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서로 소식을 접할 수 없도록 방해한 조치는 국제 규약의 가족 보호, 사생활에 대한 자의적 간섭을 금지하는 조항을 위반했습니다.

또 ‘강제실종보호협약’에 따라 국가는 ‘개인의 운명이나 소재를 공개하지 않아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방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요. 북한의 군 당국은 수천 명의 북한 인민군 병사들을 사지로 내몰아, 국가가 국민의 강제 실종을 방조했으며 국민 보호 의무마저 저버렸습니다.

북한 당국은 미래가 창창한 인민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심각한 인권 유린과 기본적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를 정책적으로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데요. 그런 중에도 여전히 10대 청년들에게 ‘혁명의 군복을 입고’ ‘조국을 위해 총을 메는 것’을 가장 큰 영예이자 자랑이라고 주장합니다. 진정으로 군복 입은 청년들이 군인의 신분과 군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고 싶다면, ‘잡히면 자폭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최소한 ‘살아 돌아오라’는 부모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북한 당국은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보호하는 국가의 도리를 정책으로 펼칠 방안을 강구해 보길 바랍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