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최근 막을 내린 제2회 17세 이하 세계여자축구대회에서 남한이 우승했습니다. 2008년 1회 대회 우승국인 북한은 이번엔 스페인에 지면서 4위에 머물렀습니다. 남북한의 청소년 여자 축구선수들이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한 역사의 현장에선 같은 말을 쓰지만 뜻이 통하지 않아 남북한 선수가 서로 오해하는 그런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남한에 사는 탈북자들은 남한을 심지어 같은 말을 쓰는 외국이라고까지 표현하는데 남북한의 말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봅니다.
남한의 이명박 대통령이 세계 여자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선수와 대표단 관계자를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하며 전해진 뒷이야기입니다. 남한 언론에 보도된 기사 내용을 정리하면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대회 기간에 남한 선수들은 준비한 고국의 음식인 불고기와 김치를 싸서 북한 선수단을 찾아가 전달하려고 했는데요. 북한 선수들은 “일 없습네다”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한 선수단이 머쓱한 표정으로 음식을 갖고 밖으로 나서자 북한 선수들이 하는 말이 “그렇다고 그냥 음식을 가져가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해서 주고 왔다는 후일담입니다.
남한 신문은 우리 ‘대표팀이 음식주자 북한팀 거절하다 다시 받아’ 또는 불고기, 김치 건네자 “일없다” 더니 라는 제목으로 그날 어린 축구선수들 간에 있었던 일화를 간략하게 보도했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단호한 거절’이란 표현입니다. 하지만 탈북자가 말하는 일 없습니다란 북한 말은 남한 사람이 이해한 그런 뜻이 아닙니다. 숭의동지회 최청하 사무국장입니다.
최청하: 여러 사람 모였을 때는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말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 없습니다가 북한에서는 일반적인 인사니까 그렇게 너무 고깝게 생각할 것은 없고요. 지금 개성공단에 간 남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흡사한 일이 많습니다. 2-3명이라도 있는데서 뭘 주면 절대 일없습니다 하고 받지 못하고 그렇게 대답하지만 여자 스타킹이라도 손에 쥐고 있다가 개별적으로 만났을 때 주면 스스럼없이 받고 그렇게 한다더라고요. 눈에 띄면 안 되니까 작은 여자 스타킹을 준다고 하던데…
북한 주민이 쓰는 ‘일 없습니다’란 말은 남한에서 쓰는 ‘괜찮습니다’라는 가벼운 사양의 뜻이지 거부나 거절의 부정적 뜻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 타국인 베네수엘라 앞바다에 있는 인구 130만 명의 작은 섬나라 크리니대드또바꼬(트리니다드)에서 있었던 축구대회. 남한 선수들은 같은 동포로 처음 만나는 북한 선수들에게 반가운 마음을 정치와 이념을 떠나 표현하고 싶었는데 결국 북한 선수단의 무뚝뚝함에 적잖게 섭섭함을 느꼈다는 겁니다.
북한식 표현인 ‘일 없습니다’는 남한 사람에게 오해를 사는 대표적 예입니다. 남한에서 대학을 가기 위해 치르는 논술시험에 남북한 언어의 차이에 나온 예문을 하나 소개합니다. 상황은 친구 소개로 처음 만나는 남한 여성과 북한 남성 사이에 벌어집니다. 남한 여성이 1시간 늦게 약속장소에 나납니다.
여성: (미안해요) 영철 씨 오래 기다리셨어요. 제가 많이 늦었죠.
영철: 일 없습니다.
남한 여성은 늦어서 미안한 마음에 영철의 눈치를 살피지만 사과를 받아주지 않자 은근히 화가 나면서 영철이 속이 좁은 남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영철이 남한 사람이고 여성이 약속 시각에 늦게 나타났다면 이렇게 답했을 겁니다.
여성: (미안해요) 영철 씨 오래 기다리셨어요. 제가 많이 늦었죠.
영철: 괜찮아요. 1시간밖에 안 기다렸는걸요.
이렇게 같은 말이지만 다른 형태로 사용되는 말도 있지만 아예 북한에선 쓰지도 듣지도 못한 말이어서 어리둥절 해하는 일도 있습니다. 탈북자 최이정 씨입니다.
최이정: 여기 사람들은 모르는 데 우리 북에서 남한에 오면 확실히 의사소통이 안 되고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처음 남한에 와서 신문을 보는데 무슨 말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언어를 잘못 쓰지 않는가 하고 내가 오히려 남한 사회를 의심하게 됐습니다. 기억나는 것이 부동산에 대한 언어가 나오는데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북한에선 사유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부동산 자체가 없거든요.
남북한의 언어가 한 뿌리에서 나와 단지 표준어와 사투리만 존재하던 것이 분단의 상황 속에서 각기 다른 언어 정책과 문화로 그 의미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말도 있고 의미가 뒤바뀐 것도 있습니다.
최이정: 오징어와 낙지가 남한과 북한이 완전히 반대말입니다. 여기서 낙지라고 하면 북한에선 오징어입니다. 또 북한에선 돼지 머리나 돼지 대가리라 하면 나쁘게 생각하는데 남한 식당에선 돼지 대가리란 말을 자꾸 씁디다. 우린 듣기가 거북하죠. 언어 차이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쏘겠다 하면 총을 쏘겠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음식을 한턱낸다는 말을 쏘겠다고 하고 또 오빠라고 하면 친형제를 말하는 데 여기선 이성이 늙은 사람이 오빠, 젊은 사람도 오빠, 애들도 오빠 하니까 오빠란 말이 너무 광범히 하니까 좀 별라고 이상했습니다.
한 나라의 표준어를 알려면 그 나라의 텔레비전에서 하는 보도를 들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확한 발음과 올바른 말을 사용하기 때문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남한의 공영방송인 KBS 텔레비전 방송과 북한의 중앙텔레비전 방송의 시작 부분을 잠깐 연속으로 들어봅니다.
남한: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다. 10월1일 금요일 kbs 아침 뉴스 타임입니다. 벌써 시월이군요. 계절은 완연한 가을인데요..
북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10월1일 금요일 음력으로 8월24일입니다. 지금부터 오늘 중앙텔레비죤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남한에 표준어가 있다면 북한에는 문화어가 있습니다. 표준어는 남한의 중부지방 서울말에 바탕을 두고 있고 북한의 공식 언어는 서북지방 평양말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든 것입니다.
저희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매주 참여해 자신의 남한생활을 전해주는 탈북자 출신의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자주 쓰는 일상생활 용어는 남북한이 같지만 전문 용어나 환경에 의해 새로 만들어진 말들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주성하: 제일 어려웠던 점이 나라 이름이 남북한이 다 달라요. 팔레스타인을 북한에선 팔레스티나라도합니다. 제가 국제부에 있다 보니까 나라 이름을 새로 다 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저도 모르게 북한식을 씁니다. 예를 들어서 회의를 조직했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남한에선 진행했다 뭐 이런 식으로 하죠.
북한에서 어문학을 공부한 탈북자 이일웅 씨는 북한의 말이 고집스럽게 한자어와 외래어를 거부하는 면도 있지만 아름다운 한글을 지키려는 노력은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이일웅: 여기서 쓰는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끓는 모양새를 지글지글이라는 말만 쓰는데 지글지글은 어떤 의미에선 거부감을 줍니다. 자글자글 재글재글 얼마든지 몸에 와 닿는 아름다운 말이 많단 말이죠. 이런 것도 문제가 있다. 저는 그렇게 보는 사람입니다.
말은 시간이 지나며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집니다. 그래서 한집안에서 자녀와 대화를 나눌 때 아버지가 자녀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50년 이상 떨어져 사는 남북한 사람이 쓰는 말은 서로 얼마나 변해있을지는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눠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듯합니다.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 오늘은 남북의 언어 차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