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코미디 무대 –평양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건축교류위원인 차상욱 건축사.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건축교류위원인 차상욱 건축사. (사진제공 –차상욱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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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최근 남한 가수들의 공연이 평양 대동강변에 있는 동평양대극장과 평양시내 중심 보통강변에 있는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각각 있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공연이기에 더 많은 관심이 평양에 쏠리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부터 세 차례에 거쳐 평양의 건축물은 외부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남한의 아이 에프 건축사 사무소 대표이며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건축교류위원인 차상욱 건축사를 통해 알아봅니다.

기자: 평양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거대한 쎄트장’이다 입니다. 이말은 러시아의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1년 동안 8살된 소녀 진미의 가족을 통해 평양에서 촬영한 기록영화 <태양아래>(Under the Sun)를 상영할 때한 말입니다. 만스키 감독은 “거대한 세트장이 된 평양에서 인간다운 삶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 해서 당시 화제가 됐는데요. 이말을 확대해석하면 평양의 건축물은 사람이 편히 살기 위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영화촬영장의 것과 같다고도 해석이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상욱 건축사: 북한을 방문해서 평양을 다녀온 사람들이 평양에 대한 소감을 피력할 때 ‘거대한 세트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6.25 전쟁 이후 유구한 역사의 문맥들이 깔끔하게 파괴되었던 평양은 김일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블랙코미디의 무대’로 조성된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영화감독 만스키의 묘사가 알려지기 전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 전역을 아예 ‘극장’이라고 규정한 서적도 발간된 적이 있습니다. 2013년에 정병호, 권헌익 두 분이 공동으로 펴낸 ‘극장국가 북한’이 그것입니다. 그 외에도 북한주민들의 해괴한 행태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 환경에 대한 소회를 피력함에 있어 비슷한 언어로 묘사하는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사실만 보더라도 ‘거대한 세트장’으로서의 평양은 반론의 여지를 찾을 수 없다고 봅니다.

기자: 건축사가 보는 평양이란 도시의 특성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차상욱 건축사: 세계 유수의 도시들이 현재의 모습을 지니기까지 당대의 지배자들이 직접 도시계획에 영향을 행사했던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북한은 2차 세계대전 후 다른 공산국가에서 그랬듯이 사회주의의 수도로 거듭난 ‘모스크바’를 본 따 도시를 재건했습니다.

여기서 평양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모스크바를 조금 알아야 합니다. 레닌이 장악한 모스크바는 당대의 도시계획가들이 제안해온 아이디어들을 현실공간에 구현함으로써 혁명의 수도로 각색되기 시작합니다. 소위 ‘사회주의 도시계획론’이라 일컬어지는 모스크바 구성의 원칙은 ‘상징의 도시’, ‘생산의 도시’, ‘녹색의 도시’, 그리고 확장을 거부하는 ‘소규모 도시’로 요약될 수 있는데요. 평양과 모스크바가 도시의 윤곽에 있어 확연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세부적인 모습에서 이 네 가지의 원칙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두 도시는 외견상 대단히 유사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자: 평양과 모스크바가 닮은 꼴이면서 분명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차상욱 건축사: 평양은 20세기 초, 도시계획가들이 지녔던 순순한 의도로부터 이탈해 ‘변종 주체사상의 도시’로 진화해온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의미를 지녔다 할 수 있는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도시의 맥락 속에서 상징으로 부각시키려 했던 원칙들은 우상화된 개인의 시각화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버렸고, 나아가 모든 도시계획 원칙에서 으뜸으로 변질시켰다는 점을 지적하는 겁니다.

또한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도시가 확장 될수록 도시빈민의 열악한 주거환경이 개선되기는 커녕, 외곽으로 밀려나 더욱 열악한 삶을 이어가게 되는 노동자의 악순환을 개선해 보고자 고안된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원칙들이 평양에서는 주민통제와 노동력 착취의 수단으로 심화 발전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다른 사회주의 도시와 차별되는 평양의 도시계획적 특성이라 해도 무방할 겁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평양을 ‘거대한 세트장’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원칙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 굳이 서울과 평양을 비교하자면 차이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차상욱 건축사: 지난 2014년에 열렸던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한국관의 주제가 바로 서울과 평양을 대등한 위치에 던져놓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답을 찾아보라는 취지를 담았거든요.

전시는 분단 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상반된 이념 속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변해 가는 서울과 평양의 모습을 보여 준 것뿐인데, 외국인의 눈에는 비교되는 두 도시의 이질감이 흥미롭게 느껴졌던지, 놀랍게도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황금사자상을 안기기까지 했습니다.

두 도시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서울과 평양 두 도시가 서로를 의식하며 개발경쟁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고, 서로 ‘다른 점’은 서울은 경쟁의 무질서로 소외계층의 그늘이 있던 반면, 평양은 국가주도 하에 도시전체가 계획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외관상 보기 좋았다는 분위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일견 공감할 여지를 지닌 듯 하지만 전시기획자들의 주관적 의도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저로서는 다른 관점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기자: 다른 관점이란 뭘 말하는 건지요?

차상욱 건축사: ‘도시와 건축’이라는 개념에는 ‘폐허와 유적’이라는 개념에 없는 중요한 요소 하나가 공존합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과 그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대단히 무질서해 보이는 건물의 군락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자유로운 인간의 삶이 어김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강력한 흐름과 질서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군락들이 모여 도시라는 거대한 생물로 진화하게 만드는 에너지인 것이지요. 도시가 창공을 날아가는 새들의 시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서울과 평양은 인간의 시야에서 비교되어야 타당합니다.

일단 지도로 확인되는 면적은 평양이 서울보다 훨씬 큰 규모입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우리의 수도권, 다시 말해서 서울과 경계를 접하는 위성도시들의 면적을 모두 합친 면적과 맞먹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뉴스 화면에서 접하거나 저들이 홍보하는 평양의 모습은 서울의 강남구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면적 안에서 촬영된 것이 전부입니다. 따라서 평양의 중심지역만을 가지고 거대도시 서울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래도 굳이 비교해 보자면, 강으로 나뉜 두 개의 지역이 관념적인 축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들수 있습니다. 한강의 북쪽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해 온 서울이 한강의 남쪽지역으로 확장된 것과 마찬가지로 평양도 대동강의 서쪽지역을 우선적으로 조성한 다음 동쪽지역으로 개발을 확대하였습니다. 이로써 두 도시 모두 ‘자연축’과 교차하는 ‘관념적인 축’을 갖게 되는데요. 동서로 흐르는 한강이 서울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경제문화의 축을 형성하듯이 평양 중심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동강이 만수대 언덕에 놓인 김일성 부자의 동상을 비추며 떠오르는 태양과 연결되어 동서를 잇는 사상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유사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기자: 다른 점은 어떤 것인가요?

차상욱 건축사: 다른 점은 무수히 많지만 상징공간이나 공공시설의 이질감을 논하기보다 ‘살림집건축의 배치방식’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명 ‘주택 소구역계획’이라 부르는 살림집 배치 방식입니다. 이것은 모스크바에 적용된 ‘미크로 라이온’이라는 주거배치 방식을 그대로 도입한 것이기도 합니다. 특징은 주거용 공동주택을 격자화된 도로변으로 배치하여 ㅁ자 형태로 구성하고 그렇게 조성된 단지 내부에 작업장이나 생산시설, 또는 근린공공시설 등을 두는 방식입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원칙 가운데 ‘생산의 도시’ 개념을 설명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한데요, 구 소련 초기부터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약되는 사회주의 체제의 인민들이 이동을 최소화하면서도 단위구역 내에서 생산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고안된 방식이기도 합니다.

ㅁ자 형태로 배치된 공동주택의 획일적인 단위주택은 무상으로 당시 인민들에게 공급되었던 것이었으니 투덜거릴 수는 없었겠지만, 조상 대대로 남향을 선호하는 우리민족의 특성은 철저히 무시되고, 획일적으로 계획된 틀안에 인간을 짜맞추는 사회주의 방식의 주거양상은 이념을 떠나 자연인의 주거형태로 적절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위적으로 계획된 평양 중심부의 가로이미지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것이 현실이라 저 같은 건축사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측면이다 이렇게 보니다.

평양의 이러한 가로이미지는 개인이 토지를 소유하며 그 위에 개인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건물을 지어나갈 수 있는 서울사람의 눈에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공포감을 자아내는 전체주의의 장벽처럼 다가온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평양의 건축물에 대해 차상욱 건축사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평양의 고층건물과 주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