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거리 교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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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을 북한주민이 외부 사람들보다 더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감옥 이야기일 겁니다. 단순히 죄를 지었으니 죄값을 치룬다. 이 정도는 생각하겠지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기에 병보석으로 풀려 나오는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지 그저 두려울 뿐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함경북도 회령시에 있는 전거리 교화소에 대해 알아봅니다.

양은경: 대사면이 있어서 김주석 탄생일 맞아 1년 반 하고 나왔습니다. 북한 자체가 나라를 배반하게 만들잖아요.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탈북여성 양은경(가명) 씨에게는 아직도 악몽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전거리 교화소에서의 1년반 생활입니다. 양 씨의 죄목은 탈북이었습니다.

양은경: 우리가 왜 부모자식 버리고 중국에 갔으며 중국에서 이리저리 팔려가고 인간취급을 못 받으니까 남한행을 택한 거잖아요. 나라 자체가 배반하게 만들잖아요. 우린 목숨걸고 굶으면서 나라에 충성하는데 왜 조국은 주는 게 없는가 그것을 알아야 하는데…

양 씨가 북한에서 수감됐던 곳은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비교적 세상에 잘 알려진 곳입니다. 전거리 교화소의 수감자 절반 이상이 탈북자였다는 것이 이들의 말인데요. 남한의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발간한 ‘북한 구금시설 운영체계와 인권실태’에 따르면 함경북도 회령시 전거리에 있는 전거리 제12호 교화소는 수용인원이 800~1000명 정도인데 1990년대 말부터 중국으로부터의 탈북자 송환과 사회불안정으로 인한 일탈범죄가 늘면서 수용한계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원래는 남자만 수감됐지만 2007년초부터 여자들도 수감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9년에는 늘어나는 여성 수감자 때문에 여자 교화소를 새로 짓게 됩니다. 양 씨가 전거리에 수감됐던 것은 2007년 7월 입니다.

양은경: 회령 다음에 전거리라고 예전에는 남자만 수용한 감옥이고 여자는 개천에 갔는데 그때 4월 5일까지 판결받은 사람은 개천에 가고 4월 15일 이후는 재판 받은 사람은 전거리 갔어요. 개천에 간 사람은 다 죽었다고 했어요. 정부에서 죄수가 너무 많아지는까 전거리도 받으라고 해서 여자도 갔거든요. 그때 초창기니까 남자들 감방을 한칸 씩 해서 칸막이를 막고 들어갔어요. 남자 출근할 때는 여자가 돌아서고요. 하루에 중국에서 붙잡혀 온 여자가 수 십명씩 됐어요. 함경북도 도내에 있는 사람이 다 거기 왔어요. 우리 그때 남자 반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여자들이 10명 20명 모으기 시작할 때고 인원이 불어나면서 속도전 식으로 여자들 감방을 남자 감방 뒤로 지었어요

기자: 보통 방에는 몇 명이나 생활하게 됩니까?

양은경: 내가 감자반에서 일했는데 150명 있었어요. 처음에는 50명 이었는데 그 다음 계속 인원이 불었어요. 죄인이 매일 들어오잖아요.

기자: 한방에 150명이 다 자는 것은 아니잖아요

양은경: 2층 침대가 있어요. 인원은 늘고 감방은 작고 하니까 2층 침대를 만들어서 엇갈리게 잤어요.

남한에서는 변호사를 통해 감형을 받거나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는데 북한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양 씨는 말했습니다. 그런데 운이 참 좋았다고 합니다.

양은경: 한국 기도가 3년입니다. 나는 중국에서 심사받을 때 서류를 잘 써줘서 한국 기도로 안 하고 돈 벌러 중국 간 것으로 썼거든요. 2년을 받았어요. 그리고 전거리 갔거든요.

기자: 북한에서 감옥을 간 것은 처음이였나요?

양은경: 네, 처음이지요.

기자: 처음인데 감옥에 2년 있으라 해서 하늘이 캄캄했었겠어요?

양은경: 그렇지요. 그때는 전거리 교화소에서 살아나온 사람이 없다고 소문 났거든요. 그때는 남자 감옥이라 나와도 똥독이 올라서 거진 집에 와도 죽었거든요. 그때는 가슴이 철렁했어요. 어떻게 전거리 가서 생활할까 하고요. 도둑질 하거나 사람 죽이면 남자는 다 전거리 교화소 갔어요.

기자: 똥독이 오른 사람은 형기를 마치고 나온 것이 아니라 몸이 아프니까 풀려난 것이군요.

양은경: 아니죠. 병보석으로 나온 거죠.

기자: 전거리 교화소에 도착한 첫 날은 어땠습니까?

양은경: 그때는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다른 곳에서 들어온 여자들이 한 15명 있었어요. 신입방이란 것이 있는데 여기를 거쳐 본방으로 가거든요. 감옥규정이 있었어요. 신입반에서 공부를 하고 가요. 군대로 치면 신병훈련 끝나고 본대로 가는 것하고 같죠.

기자: 신입방에는 얼마나 있습니까?

양은경: 한 달 정도 있는데 감옥생활 규정을 다 외워야 합니다.

사회와 다른 격리된 감옥생활. 한 달간 수감 생활을 위한 규정들을 외우고 나면 본방으로 가서 자신의 형량을 살게 됩니다. 교화소에선 생활용품이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아서 물품을 챙겨야 합니다.

양은경: 여기 한국감옥에는 신발이나 옷을 다 주잖아요. 그런데 거긴 아니예요. 다 가지고 가야합니다. 복장이란 것이 옛날 통내의 처럼 생겼고 단추가 없어요. 주머니도 없고 몽땅 꼬매야 합니다. 그리고 흰천으로 이름을 박아야 해요. 머리도 규정이 돼있어서 짧게 귀 위로 깎아요.

기자: 여자도 짧은 머리를 한다는 말이죠.

양은경: 네, 머리를 자주 깎아요. 감자반, 남새반, 강냉이반, 축산반4개 반이 있는데 선생님들이 가위를 줘요. 비오는 날은 일을 못하니까 머릴 깎아요.

기자: 개인 사물은 어떤가요?

양은경: 그런 것은 없습니다. 바늘, 가위, 칼 이런 것 일체 안되고 갈아 입을 옷, 칫솔, 치약, 비누, 수건 이런 것은 본인이 준비해야 합니다.

기자: 신입반과 본 반의 차이는 어떤가요?

양은경: 신입반 때는 계속 공부만 합니다. 마당이나 쓸고 감옥 밖에는 못 나갑니다. 본반에 가서 남새반 , 감자반 조직 해서 일하러 나갑니다. 신입반 때는 안에서 남자들이 산나물 뜯어오면 산나물 선별하고 양배추 이파리 손질하고 그래요. 일체 우리때는 밖에는 못 나가고 그랬어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함경북도 회령시에 있는 전거리 교화소에 대해 증언을 들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교화소 안에서의 생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