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여객기 납북자, 송환하라

아버지와 사촌과 함께 찍은 사진.
아버지와 사촌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황인철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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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그리워 하며 지난 50년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남한 민간 여객기 대한항공 즉 KAL기 피랍 납북자 가족들 입니다. 올해가 북한에 의한 여객기 납북 사건이 있은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떤 사연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KAL기 납치 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는 아버지 황원 씨를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습니다. 먼저 어떤 사건이었는지부터 정리해 봅니다.

황인철 대표: 지난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김포행 국내선 YS-11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정오 12시 25분 북한의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 강제 납치된 사건입니다. 당시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 등 총 51명인데 그중 간첩 1명을 제외하고 50명이었습니다. 승객 39명만 송환하고 나머지 11명은 아직도 돌아오진 못한 비극적 사건입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남북 양측은 송환문제로 협상이 있었지만 황인철 씨의 아버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황인철 대표: 1970년 2월 14일 39명만 송환돼고 증언을 해주었는데 당시 왜 승무원 4명과 승객 11명이 돌아오지 못했는지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의 아버지가 MBC 피디로서 출장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셨는데 사상교육 시간에 공산주의 이론에 대해 반박을 하시고 또 민간 항공기 납치 행위는 국제사회 안에서 용서받지 못할 범죄 행위이며 국제범죄라는 사실에 대해 알고 계셨기 때문에 돌려보내 달라고 북한 당국에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 요구를 한 저의 아버지를 군인들이 와서 끌고 갔고 한사람 두사람씩 이후 11명이 그 무리에서 사라졌다고 증언을 해주셨어요. 그 얘기를 통해 당시 국제적십자위원회가 11명을 조속히 송환하라고 했는데 북한이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해서 북한에 머무는 것이다란 주장을 했던 거죠. 다시 한 번 요구했던 것이 너희들의 주장이 그렇다면 제3국과 제3자를 통해 자유의사만이라도 확인하자 했는데 북한이 거절했습니다.

강제납북된 사람들을 송환하라는 요구에 대해 북한은 자발적으로 북한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을 뿐 강제억류한 사람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에대해 남한정부는 국제사회의 협조를 통해 돌아오지 못한 사람의 송환 노력을 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오늘에 이릅니다.

황인철 대표: 1970년도 7월 말에 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 조속한 송환을 요구 하는 결의안이 나오게 됐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제286호에 따라 모든 유관당국자들에 호소를 하면서 조속하게 송환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결의안이 나오게 됐고 제25차 유엔총회에서 항공기 불법 탈취에 관한 규탄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가 됐지만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한…

최근 몇 년간KAL기 납치 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는 한국정부와 국제사회에 납북자 송환에 대한 운동을 가열차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황 대표의 노력은 지난 9월 3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비경제부처 부별심사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성일종 국회의원은 정부 각료를 상대로 납북피해자의 송환 문제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에 대해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에게 묻습니다. 잠시 녹화된 국회방송 들어보시죠.

성일종 위원: 우리국민이 50년 전에 납북이 된 겁니다. 지금도 정부의 고도의 정치적이고 외교적 사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지금 KAL기 납북 사건과 관련해 작년 12월에 다시 진정이 접수됐습니다. 그래서 인권위원회에서 지금 검토를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각하 사유는 그런 사유로 두 번 각하가 된 것은 맞습니다. 다시 검토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성 위원이 김연철 통일부 장관에게 질의 합니다.

성일종 위원: 통일부 장관님 우리국민이 북한에 가서 11명이 있단 말이죠. 우리 통일부에선 그동안 어떤 조치를 하셨나요? 또 2018년 12월 11일 새롭게 진정이 됐습니다. 이 정부가 얘기 하는 것이 국가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 사건에 대해서 우리국민이 11명이 지금 못 돌아오고 있는데 국가적 책임을 지금 통일부는 다 하고 있습니까?

김연철 통일부 장관: 예, 50년이 지났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것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성일종 위원: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김연철 통일부 장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일종 위원: 분명히 말씀 하셨지요. 노력하신다고요. 맞습니까?

김연철 통일부 장관: 네, 그렇습니다.

통일부 장관에 대한 질타에 이어 성 의원은 이어서 외교부에 대해서도 재차 이 납북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요구합니다.

성일종 의원: 외교부 차관 나오셨죠?

외교부 차관: 네, 차관 나와 있습니다.

성일종 위원: 1970년도의 헤이그 협약이라고 있죠? 항공기 불법납치 억제 협약이 있죠.

외교부 차관: 네,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일종 위원: 그리고 71년 몬트리올 협약 이것도 알고 계세요? 국제사법 재판소에 이러한 범인들에 대해 제소할 수 있는 것 알고 계십니까?

외교부 차관: 제가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만 몬트리올 협약이 그런 취지로 규정 돼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성일종 위원: 그러면 이 사건에 관계가 돼서 이것을 이 규정에 따라 우리 외교부가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안하십니까?

외교부 차관: 네, 관계부처와 협의를 해서 검토를 하겠습니다.

성일종 의원은 올해 우루과이와 아이슬란드 정부가 유엔에서 KAL기 납북문제에 대해 제기를 했고 국제엠네스티도 송환운동을 벌여주는데 한국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면서 정부 차원의 납북자 송환 노력을 요구했습니다.

지난 50년동안 왜 가족이 생이별 해야 했고 지금도 만날 수 없는지 명쾌한 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현재의 남북분단 상황을 고려할 때 국가인원위의 답변처럼 이 문제가 고도의 정치적이고 외교적 사안 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북자 가족은 정부가 이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해 가족들은 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황인철 대표: 사실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면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정보가 북한에 전달만 되는 것이고 혹시나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보니까 그런 것들이 힘들어요. 연세드셔서 올해 82세인데 어떤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고 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데 상황에 따라서 어떤 때는 말이 나오고 어떤 때는 말이 안나오고…

북한에서 남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11명은5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마도 북한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지도 모릅니다. 여러 복잡한 상황을 남한 피해자 가족이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고통스런 세월을 보내온 겁니다.

황인철 대표: 그분들도 그렇죠. 1970년부터 72년까지는 한국정부가 송환을 위해 노력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에는 그런 노력이 없었는데 당시 나왔던 이야기가 가족들이 조용히 하고 있어야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얘기가 주입이 됐어요. 그러다보니 거기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되고 길들여지는 부분이 있죠. 그리고 또 한가지는 가족의 변형이 오게됨으로 해서 상당히 다들 어려워 하는 면도 있고요.

KAL기 납치 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는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아버지와의 생이별은 정치적 문제도 외교적 문데도 아닌 천륜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에 대해 납북피해자 송환운동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합니다.

황인철 대표: 일단 제가 주장하는 것은 사실 저의 아버지가 북한에 있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년동안 강제억류가 된 상황이거든요. 그래도 생사확인을 통해 뵈야하지 않을까 하는 그 마음에 송환을 저희가 원하는 것이죠.

1969년 아버지 황원 씨가 납북될 당시 황인철 대표는 두 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50년이 지났습니다. 황 대표는 사진속 아버지가 아니라 실제 만남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황인철 대표: 아버지 건강 하시고요. 국제사회에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니 뭔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지 않는가 싶습니다. 아버지 건강 유지하시고요. 꼭 한 번 뵙고 아버지와 같이 한 번 목욕을 하고 싶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해결되지 않고 있는 50년 전 KAL여객기 납북 사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