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은 탈북을 했거나 정부가 파견한 사업일꾼 그리고 외교관들 일텐데요. 오늘은 러시아 벌목공으로 나갔다가 한국에 정착한 최태선 씨를 통해 북한 해외노동자에 대한 실태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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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선: 3개월을 살다가 안되겠다 해서 가자마자 러시아 말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거기 벌목 간 사람들은 다 도망칠 준비를 한단 말입니다.
최태선 씨는 러시아 벌목공으로 갔다가 남한에 정착한 사연을 알리고 싶다며 기자에게 연락을 해봤습니다. 그가 처음 해외로 나갔던 것은 고난의 행군 시기 이전 입니다.
최태선: 제가 1989년 북조선에서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할 때 내가 평양 공병국에 있을 때 김일성이 아프리카 북부 예멘에 병원을 건설하라고 해서 우리 공병국이 나갈 때 제가 처음 외국에 나가게 됐습니다.
첫 번째 외국행은 군에 있을 때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갔었던 것이라면 두 번째 러시아는 자신이 원해서 지원한 겁니다.
최태선: 1989년 아프리카 북부 예멘에 공병국에서 남강회사 소속으로 나갔다가 들어와서 1992년 러시아 붕괴될 때 들어왔단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때야 세상을 나가서 세상이 이렇구나 하는 것을 45살 넘어서야 알게 됐고 평양서 생활 하다가 1995년 제대가 돼서 함흥 갔다가 그곳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러시아로 벌목을 가던 해서 다시 이 땅을 떠나야겠구나 하고 1999년 12월에 함흥에서 공식적으로 도당 간부과에 제기를 해서 벌목 가는 여권이 시작됐단 말입니다.
기자: 아프리카 예멘을 가셨을 때 하신 일은 뭔가요?
최태선: 북부 예멘에 갈 때는 북한에서 떠날 때 직업을 임명합니다.
기자: 직업을 임명 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최태선: 건설로 남강회사란 이름으로 건설로 가는 데 나는 후방부 있잖습니까?
기자: 후방부요?
최태선: 먹고 살고 하는 후방부의 요리사로 갔었단 말입니다. 거기 도착해서는 식당에서 사람들 4명정도 데리고 아침, 점심, 저녁을 했는데 아침에는 빵을 먹고 저녁에는 밥을 먹고 점심에는 국수를 해주고 간부들인 보위지도원, 초급당 비서, 지배인, 지사장 등은 따로 간부들 밥해주는 요리사로 있었습니다.
최 씨는 외국에 갈 때 자신의 여권을 소지할 수 없었습니다. 지도원이 관리합니다.
최태선: 우리가 들어올 때 여권을 가지고 왔는데 보위지도원이 두만강에서 여권 뚜껑만 보여주고 주지는 않습니다. 여권을 주면 도망칠까봐. 들어와서 그것을 사업소에 받치고 다시 귀국해 나갈 때 여권을 본단 말입니다.
러시아는 벌목공으로 갔지만 실제 업무는 그곳 현지에서 정해집니다.
최태선: 내 옆에 있던 젊은 황해도 사람이 뭐라고 하냐면 “최 아바이 나는 식당근무 하는 것이 싫다면서 아침에 늦잠을 자고 싶은데 5시에 일어나서 밥하는 게 싫은 데 안 할래요?” 이건 요리사가 아니고 밥해주는 식당 근무란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한다고 했어요. 소대장한테 말만 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벌목을 하러 가서는 식당일을 하게 됐단 말입니다. 나무 하는 것보다 식당일 하는 것이 낫지 나무 하다가 깔려 죽느니 이게 낫다 생각했습니다. 그때 러시아에서 밥은 마음대로 먹을 때란 말입니다. 그때 러시아 벌목이 부흥기 때였습니다. 달러를 한 달에 200달러 줄 때란 말입니다.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간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지급되는 돈만 보위부에 받치면 외부 노동도 암암리에 눈감아 주는 듯 했습니다.
최태선: 사업소에서 이탈해서 나와서 얼마 돈을 벌어 집으로 간다 이랬어요. 그때는 1년 2년 나왔다가 돌아가도 보위부에 돈만 주면 다시 조국으로 귀국 시켰단 말입니다. 집에 달러도 보내고 편지도 보내고요. 그런데 나중에 두 명이 이탈해 나왔는데 하는 말이 들어가지 말라고 들어가면 우리를 두만강 물에 초절임 하고 돈을 안주면 북에 들어가 북조선 함흥에 둘둘이라는 교화소 6개월짜리에 보낸단 말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으니까 북으로 가는 것을 포기 하고 라디오도 듣고 한국을 동경하면서 이제는 뛰어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증명서도 없이 살잖습니까. 나올 때 여권 없이 달아났단 말입니다.
북한 노동자들의 작업장 이탈 현상도 심했는데요.
최태선: 옛날에 자시네 나갔을 때 95년에는 60명이 다 달아나서 거기 60명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내가 나가니까 20명이 있더라고요. 사업소 보위지도원과 부기장은 우리 이탈한 것을 보고 안하고 계속 러시아에서 나오는 돈을 다 받아 먹는단 말입니다. 우린 이탈해서 이제 사업소에 없는 사람인데요. 이렇게 사업소가 이뤄진단 말입니다. 해외 나온 사람은 한 사람당 문화비가 나오고 뭐가 나오고 해서 우리가 북에서 올수록 중대에 나오는 돈이 많은데 우리 돈을 다 떼 먹는단 말입니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얼마나 될까? 최태선 씨는 자기도 훗날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를 통해 알게 됩니다.
최태선: 나는 거기서 3개월 일했는데 돈을 보지도 못했단 말입니다. 돈을 주지 않는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돈을 주면 다 도망가니까요. 내가 12월에 일을 시작했는데 7월에 준다는 겁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돈을 주면 돈을 가지고 달아날까봐.
기자: 일할 때는 실수령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단 말이군요?
최태선: 이제 와서 들어보니까200달러가 아니고 당비 받치고 뭐 떼고 한 달에 40달러인가 50달러를 줬다는 겁니다. 나는 뒤늦게 알았단 말입니다.
최태선 씨는 러시아 벌목공으로 갔다가 20년을 러시아에 살다 지난 2016년 남한에 입국해 현재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최태선: 다른 나라 가자는 것이 아니고 보위부 지도원 집에 있는 사업소를 이탈해서 거기서 떠나서 내가 주인이 돼서 내가 일거리를 찾아 돈을 벌자고 3개월만에 뛰어 나와서 세월이 흘러서 러시아 모스크바도 돌아보고 일도 하고 라디오도 듣고 머리가 깨서 한국에 왔단 말입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북한 해외노동자와 관련 러시아 벌목공으로 있다가 남한에 정착한 사례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