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올해는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 남한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되고 있는데요. 오늘은 남한의 영토학자인 조병현 박사를 통해 단재 신채호 선생의 자료가 북한에 있다는 소식 그리고 최근 북중 국경지역의 모습에 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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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박사님, 최근에 열린 행사에 다녀오셨다고요?
조병현 박사: 네, 1919년 9월 11일 ‘통합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에서 많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최근 청주시에서 공연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선택’과 대전에서 개최한 베이징 독립운동의 ‘세불꽃’ 자료 전시회에 참여하고 왔습니다.
기자: 베이징의 세불꽃은 무엇을 말합니까?
조병현 박사: 일제강점기 당시 중국 베이징에 있었던 세 사람을 말합니다. 우당 이회영과 심산 김창숙, 단재 신채호가 삼걸 입니다. 우당은 안동 명문가의 후손으로 6형제가 재산을 모두 팔아 서간도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고 심산은 3.1혁명 때 33인의 유림대표로 수 많은 독립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단재는 역사학자, 작가, 언론인으로 여순감옥에서 순직한 독립운동가 입니다.
기자: 조 박사님이 관람한 ‘세불꽃’ 전시회와 연극 ‘선택’은 모두 단재 신채호 선생님과 관련이 있군요?
조병현 박사: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축구장에 가면 큰 걸게 그림에 적혀 있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문구에서 단재 선생님의 역사관과 국가관을 알 수가 있습니다. 현재 가장 존경받는 독립운동가 입니다. 특히 선생님의 며느리와 자주 만나다 보니 최근 단재 선생님에 대해 공부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기자: 단재 신채호 선생님이 어떤 분이었는지. 그분의 업적이랄까요? 한가지만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조병현 박사: 일제강점기 최고의 명문장으로 꼽히는 ‘조선혁명선언’을 선생님이 작성했습니다. 당시 무장투쟁전선의 최고의 무기였지요. 북한에서도 잘 알려진 의열단 김원봉의 요청에 의하여 작성했는데 내용은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 조건을 다 박탈하였다…’로 시작하는데 독립운동 이념과 전략을 이론화해 천명한 선언서 입니다.
기자: 단재 선생님의 며느님은 암투병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건강하십니까?
조병현 박사: 네. 그렇습니다. 암은 완전히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며느님은 북경에서 오래 사시다가 귀국했는데 단재 선생님이 중국으로 망명하기 이전에 살았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 토지를 찾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재 선생님의 친필 원고가 평양인민대학습당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를 확인하는 일을 제가 돕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또 연길을 다녀 오게 됐습니다.
기자: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친필 원고가 평양인민대학습당에 있다고요?
조병현 박사: 그렇습니다. 저도 매우 놀랐는데요. 인민대학습당에 친필 원고 등 50종 5천여 쪽의 단재 자료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약 40년 전 1980년에 김일성종합대학교에 유학했던 우리민족대학교 김병민 연변대학교 전 총장님이 확인한 사실입니다. 남한과 중국에도 없는 자료가 북한에서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변대학교와 러시아 연방극동대학교를 방문해서 자료를 확인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연길에는 자료 때문에 가셨던 거군요.
조병현 박사: 연변대학교 김병민 전 총장님을 만나서 그 자료가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것입니다.
기자: 평양에 어떤 자료가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됐습니까?
조병현 박사: 역사적으로 소중한 자료들 입니다. ‘단군강역도만주국’ ‘고구려사’ ‘선랑사통론’ ‘조선사통론’ 등 역사분야 자료와 ‘꿈하늘’, 용과 용의 대격전‘ ’건륭황제의 꿈‘, 백세 노승의 미인담’ 등의 소설과 ‘고려영’, ‘큰바람’, ‘금강산‘ 등의 시, 이 밖에도 기행문 등 110㎏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남한에는 없는 자료들이 북한에 있다는 거죠?
조병현 박사: 인민대학습당에 보관돼 있다는 겁니다. 그 사실을 김병민 전 총장님을 만나서 확인하게 됐습니다.
기자: 그런데 이러한 자료들이 왜 남한에는 없는 겁니까?
조병현 박사: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국가에서 돌보지 않아 먹고 살길이 막막하니까 유족들이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팔았고 또 단재가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만에 갔다 체포되어 여순감옥에서 순직했는데 그 당시 중국 북경 하숙집에 있던 자료들이 해방 후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수집해 북한에 전한 것으로 알려 있습니다. 그래서 남한에는 이런 자료들이 없습니다.
기자: 후대를 위해서라도 뭔가 해야할 것 같은데요?
조병현 박사: 네, 그렇습니다. 단재 선생님은 남북한에서 존경받는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 작가였습니다. 지금도 일본과 중국은 한반도 재침과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남북 관계가 어렵지만 역사와 문화관광 부분의 교류협력은 재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재를 통해 문화 교류의 물꼬를 틀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화제를 바꿔 보겠습니다. 자료 확인차 중국과 러시아를 다녀오셨는데요. 남북상황이 그리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박사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조병현 박사: 네, 2018년 4.17 남북 판문점 공동선언 이후 크게 진전이 없어 걱정입니다. 특히 지난 2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을 현지지도 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시설들을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지만 저는 낙후된 시설을 새로 건설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보고 어떻게 해서라도 이번에 창의적인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봅니다. 수풍댐과 봉황산, 백두산, 압록강과 두만강의 국경지역과 연해주 수이푼 강을 조망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반드시 금년 내에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기자 : 북중 국경지역 쪽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조병현 박사: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가는 곳 마다 인산인해 입니다. 중국은 우리와 공동유산인 관광자원을 잘 활용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3번씩이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 지니까 경계심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와 영토교육도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자: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 어떤 것 들이 있을까요?

조병현 박사: 우리가 잘 아는 ‘민족시인 윤동주 생가’를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로 둔갑 한 지 오래됐고 압록강변에도 국경비를 세워 영토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25일 방문해 확인했는데 1920년 홍범도 장군이 이끈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봉오동 전투 지역인 ‘봉오동’을 ‘수남촌’으로 지명을 변경하였습니다. 봉오동 전적지 기념비가 있는 이곳은 최근 남한의 새마을사업을 본 받아 마을 모습이 변모하여 연간 80만 명이 방문하기 때문에 지명을 바꿔 우리에게 친숙한 봉오동을 우리의 기억에서 지우고 있는 것 입니다.
기자: 이제는 마칠 시간이 됐습니다. 간단히 정리를 해 주시지요.
조병현 박사: 매번 느낍니다만 이번에도 단동 여객선 터미널이나 연변 박물관, 방천지구 관광안내도에 ‘동해(조선해)’를 ‘일본해’로 표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을 때 땅과 바다를 빼앗기고 분단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남북이 통합하여 단재가 꿈꾸던 고구려인의 기상과 한민족의 역사를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하면서 저도 일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기자: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조병현 박사: 네, 감사합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남한의 영토학자인 조병현 박사를 통해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자료가 북한에 있다는 소식과 함께 북중 국경지역 모습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