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거짓과 진실] 가짜 김일성

0:00 / 0:00

그가 사망한 1994년까지 김일성은 근 반세기 동안 북한을 통치해 왔습니다. 광복이후 북한 땅에 나타난 김일성에게는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김일성이 가짜라는 소문입니다. 이 같은 김일성 가짜 설은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오늘 김 씨 일가의 거짓과 진실에서 수그러들지 않는 김일성 가짜 설에 대해 살펴봅니다.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지금의 만경대에서 태어난 김일성의 유년시절 이름은 김성주였습니다. 그가 김일성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 제2권에 그가 어떻게 김일성이란 이름을 사용 되었는지 적혀 있을 뿐입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1930년 초 김일성이 김성주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을 당시 그 지역에 김혁이라는 사람이 노래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만든 노래 가운데 '조선의 별'이란 노래가 있었는데 '조선의 별'이란 김성주를 지칭하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18살에 불과했던 김성주는 이에 대해 김혁을 엄하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혁과 그의 동지들은 김성주를 '조선의 별' 이라는 뜻에서 '한별이'라고 불렀고 나중에는 한자로 '일성'으로 고쳐 부르고 다른 공산주의자들도 그 이름에 결의 했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김성주가 김일성이 된 것은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둔갑한 것에 대한 또 다른 주장이 있습니다. 당시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는 '김일성 장군이 나타나 일본군을 무찌르고 조선을 해방할 것'이라는 민간설화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김일성 장군은 백마를 타고 종횡무진 만주벌판을 달리며 일본군을 무찌르는 신화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 때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하던 김성주는 이러한 민간설화를 이용해 자신 스스로가 김일성이라고 칭하고 지역 주민들과 공산당원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훗날 김성주는 김일성이란 이름으로 소련군에 입대해 일본군과 싸우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김일성 가짜설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해방 직후입니다.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벌어진 김일성 장군 환영회에서 소련군 사령관 로마넨코 소장은 김성주를 시민들 앞에서 김일성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당시 환영회에 모인 군중들은 김일성이 백발을 휘날리는 노장군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나타난 인물은 서른 살도 안돼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김일성이 군중들 앞에서 연설을 시작하자 군중들은 웅성 되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가짜다"라고 소리치자 환영회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소련군은 총을 발포해 가며 군중들을 진압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김일성 가짜 설은 남북 분단이후 남쪽에서는 반공교육을 통해 거의 확실한 사실로 인식되어 왔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냉전시대 남북 간의 치열한 체제 경쟁 속에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을 깎아 내리려고 우익 세력들이 유포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은 미군정의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한반도 분단 이전에도 김일성 가짜설이 돌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설득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남쪽에서는 김일성 가짜 설을 놓고 연구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 두 사람이 이명영 전 성균관 대 교수와 서대숙 전 하와이대 석좌 교수입니다. 두 사람은 김일성 가짜 설에 대해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이명영 교수는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가짜였다는 시각에서 김일성의 행적을 연구해 왔습니다. 이명영 교수는 당시 김일성이 3명이 존재했는데 첫 번째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소속으로 1937년 30대 중반의 나이로 전사했으며, 두 번째 김일성은 첫 번째 김일성의 뒤를 이어 활동하다가 1944년에서 45년 사이 사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김일성이 북한의 지도자가 된 가짜 김일성이라는 것입니다.

서대숙 교수의 입장은 다릅니다.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이 바로 동북항일연군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던 김일성이라는 주장입니다. 서대숙 교수의 말입니다.

서대숙

: 김일성이란 이름은 유명했다. 김일성이 공식석상에 나타난 모습을 보고 모두 “가짜다” 라고 했다. 가짜가 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유명한 그 김일성. 전설에 나오는 그런 김일성은 없다. 우리가 독립운동에 대해서 많이 연구를 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란 전설적인 사람은 없다.

서대숙 교수는 북한의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선전하는 것처럼 김일성이 백마를 타고 종횡무진 하던 전설적인 인물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한편, 이명영 교수는 당시 동북항일연군 토벌하러 나섰던 일본군 토벌대로부터 입수한 사진을 바탕으로 김일성이 가짜였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진에는 9명의 무장군인이 있고 동북항일연군 2군 6사장 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명영 교수는 이 사진에 북한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일성의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도 똑 같은 사진이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 측은 사진 중앙에 서 있는 인물이 김일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동북항일연군 2군 6사장으로 알려진 그 인물은 안경을 썼을 뿐 더러 김일성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그 인물이 김일성의 상관이었던 중국인 위증민 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말은 김일성이 위증민의 사진을 자기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사진에 나온 인물이 김일성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남쪽의 대부분 학자들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업적을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그렇지만 김일성이 사망한 지 16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김일성의 진위 여부에 대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천보 전투 등 김일성의 항일투쟁에 대한 북한 당국의 과대 포장과 김 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은 반세기 넘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짜 김일성 설에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김 씨 일가의 거짓과 진실‘ 오늘 순서를 마칩니다. 진행에 이규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