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혁명소조운동과 사상혁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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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동포여러분.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수행에서 사상혁명의 중요성은 김정일의 후계세습과정과 때를 맞추어 중시되었습니다. 북한정권은 사회주의가 완성된 다음에도 공산주의 사회를 달성하기 위하여서는 인간개조사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그러기 위하여 사상혁명을 심화, 발전시킨다는 의미에서 계속혁명사상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계속혁명사상은 김씨 일가의 영원한 후계세습을 위한 근거로 제시되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3대혁명소조원들의 역할이 강조되었습니다.

‘3대혁명소조운동은 3대혁명수행에 대한 당의 혁명적 영도를 철저히 실현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을 최대한으로 다그치기 위한 운동이다’는 것이 북한당국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3대혁명수행에서 기술혁명과 문화혁명을 잘 하자고 해도 사상혁명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며 담당단위들에 대한 사상혁명수행에 헌신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집단주의 사회인 북한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각종 조직생활에 매여 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북한당국이 전체 북한주민들을 이렇게 조직생활에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 놓은 이유는 그들에 대한 사상적인 교양과 통제를 항시적으로 하려는데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의 후계체제 확립을 위한 사상학습이 심화되는 과정을 장악, 통제하기 위해 3대혁명소조운동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982년에 북한 금성청년출판사에서 출판된 도서 ‘조선공산주의 청년운동사 2권’에는 당시 북한정권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청년대학생 3대혁명소조원들이 현장에서 보수주의, 관료주의, 형식주의 등 온갖 낡은 ‘잡귀신’들과의 날카로운 사상투쟁으로 대중의 혁명적인 열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김정일은 사상교양의 내용이나 범위, 사상학습 빈도, 학습정형총화 등 모든 실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유일적인 지도체제를 확립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을 실현하는 데서 3대혁명소조원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사상혁명은 사상교양과 사상개조, 사상투쟁 등을 말합니다.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원들의 임무는 ‘당중앙의 근위대·결사대, 친위대·돌격대’라는 사명을 깊이 명심하고 담당 단위의 간부들과 근로자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낡은 사상을 뿌리뽑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데 대하여 강조하면서 인간개조사업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노동당 조직비서였던 김정일이 매부였던 장성택을 당중앙위원회 3대혁명소조사업부 부장직에 올려놓은 것만 보아도 3대혁명소조운동을 김정일이 얼마나 중시했는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1987년 6월에 담당 단위인 강원도 김화군에 3대혁명소조원으로 파견되었을 당시 군당 3대혁명소조사업부에서는 소조원들이 월사업계획대장, 당정책집행대장, 사상학습정형총화대장, 주생활총화노트 등은 반드시 갖추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사상학습정형총화대장은 담당 단위의 관리일군들과 농장원들이 김정일의 노작들을 학습한 정형을 요해하여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내용을 기록하는 노트입니다.

1980년 10월에 진행된 당제6차대회에서 김정일이 처음으로 주석단에 등장하여 김일성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면서 그전에는 중앙당의 고위간부들에게만 알려졌던 김정일이 유일한 후계자로 북한주민들에게도 알려졌고 김정일의 연설문이나 논문들이 ‘김정일동지의 노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1982년부터는 대학들에도 필수과목으로 ‘김정일동지의 노작’과목이 생겼고 국가기관은 물론 공장 기업소들에서도 ‘김정일노작 학습’이 정규화되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김정일의 노작으로는 ‘항일유격대식 학습방법을 널리 받아들여 김일성주의 학습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자’, ‘반당반혁명분자들의 사상여독을 뿌리빼고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울 데 대하여’, ‘당사업방법을 더욱 개선하며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 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킬 데 대하여’, ‘도·시·군 당위원회들 앞에 나서는 과업’ 등 수십 건에 달했습니다.

소조사업부 월사업총화에서는 3대혁명소조원들이 해당 단위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김정일의 노작 학습정형을 요해한 자료를 종합하여 도당 3대혁명소조사업부, 중앙당 3대혁명소조사업부를 거쳐 직접 김정일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이전에 중앙당 신소과를 거쳐 김정일에 보도되던 것과 달리 직접 보고된다고 하여 이것을 3대혁명소조 직보선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김정일의 노작학습을 위한 정치사상학습 참가정형을 현장에 나가서 직접 요해하였고 참가자들이 학습을 진행하는 태도도 주의 깊게 요해하여 그 정형도 함께 보고하였습니다. 학습시간에 강사의 이야기를 집중해 듣고 있는지, 학습노트를 지참하지 않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지, 시작할 때 출석체크에만 참가하고 도중에 빠지는 사람은 없는지 등 참가태도에 대한 자료보고로 하여 당비서가 책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3대혁명소조원들이 사상혁명에서 중시한 내용 중에는 영화문헌학습에 대한 참가정형 보고도 한몫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영화문헌학습이라고 하면 김일성을 형상한 10부작 혁명영화 ‘조선의 별’, 김일성의 대외활동을 수록한 기록영화(다큐멘터리), 김일성과 김정일의 현지지도관련 기록영화 등입니다.

해당공장기업소들이나 협동농장들에는 문화선전실이라는 이름을 된 소극장이 북한 어디에나 있습니다. 좌석의 규모에 따라 작업반별로 관람하게 되면 참가인원도 소조원들이 따로 조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화문헌학습이 끝나고 나서 진행되는 영화문헌 감상토론회 진행정형도 요해대상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지난기간에는 당위원회가 이러한 정치사상행사 진행정형을 상급 당조직에 보고하였던 것이 3대혁명소조가 생기면서 2중으로 장악되어 상급당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김정일에게 보고되었던 것입니다. 김화군 수태협동농장 당비서 역시 저들의 보고내용이 소조원들의 보고내용과 같지 않으면 그로부터 초래되는 정치적 문제가 얼마나 엄중하게 전개될 지 잘 알기에 소조들에게 잘해보려고 하였습니다.

당비서의 지시로 작업반마다 소조합숙 식당에 돼지고기와 계란을 비롯한 농축산물들이 뇌물차원에서 섬겨졌고 소조원들이 휴가로 고향에 가게 되면 찹쌀과 입쌀, 고춧가루 등 농산품들도 보장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소조원들이 해당 당위원회를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잘 도와 달라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상작품보관관리에 대한 조사도 사상혁명에서 중요시된 문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북한의 도시나 농촌에는 마을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형상한 대형주제화가 있으며 혁명사상연구실 도록판에 있는 1호사진들은 정성관리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매 가정뿐아니라 학교의 교실, 작업반 선전실 벽 위에 걸린 초상화 관리정형도 중요한 조사대상이었습니다.

제가 소조로 파견되었던 1987년 여름 장마철에 소나기가 많이 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비오는 날이면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젖지 않는가를 조사하여 내용을 종합하여 상부에 보고하였습니다. 당비서들은 항상 이런 자료가 종합되기 전에 사전에 잘못 관리된 문제가 보고서에 반영되지 않도록 하려고 애써 노력했지만 언제나 그들의 요구를 만족한 것이 아니어서 비서가 당책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운동을 통해 북한 전역에 하나의 사상, 하나의 지도체제가 수립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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