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혁명소조운동과 기술혁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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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동포여러분, 지난시간에 3대혁명소조원들이 인간개조, 사상개조를 내세워 파견단위들에서 진행하였던 사상혁명에 대해 얘기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3대혁명소조원들이 파견단위들에서 진행한 기술혁명 수행과정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정일은 사상혁명, 문화혁명과 함께 기술혁명도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이룩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완성할 때까지 노동계급이 수행해야 할 혁명의 과업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북한정권이 3대혁명에 대하여 사상혁명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녹을 벗기는 투쟁이고 기술혁명은 기계들에 있는 녹을 벗기는 투쟁이며 문화혁명은 공장과 마을, 살림집의 때를 벗기는 투쟁이라고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1975년에 조선노동당출판사에서 출간한 도서 ‘3대혁명노선의 위대한 생활력’에는 기술혁명에 대하여 ‘중노동과 경노동의 차이, 농업노동과 공업노동의 차이를 줄이며 여성들을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해방함으로써 사회주의사회에 남아있는 노동에서의 본질적 차이와 힘든 노동을 없앰으로써 사함들의 노동생활, 생산활동을 보다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것으로 되게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북한정권은 경제분야에서 부족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생산공정의 기계화, 자동화와 같은 기술혁신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3대혁명소조원들이 맡은 단위들에서 기술혁신운동을 벌릴 데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북한에서 기술혁명에 대한 언급은 이미 1960년대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은 기술혁명에 대하여 ‘기술혁명이란 곧 현대과학의 성과를 생산에 받아들이고 보급하는 행정이며 생산과정에서 직접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들과 과학을 소유한 기술자들 사이의 창조적 협조를 강화하는 사업’이라며 기술혁신운동을 전당적, 전인민적인 운동으로 힘차게 전개할 데 대하여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기술혁명수행에서 중요한 문제로 ‘인테리의 혁명화, 노동계급화’라는 구호를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3대혁명소조운동 초기인 1970년대 초에 북한당국은 소조원들을 현장에 파견하면서 노동력과 생산설비의 예비를 찾는데 주력하도록 하였습니다. 북한에서 3대혁명소조운동이 전반적 기술혁명수행에서 큰 성과를 이룩하였다는 평가는 1980년 10월에 진행된 6차당대회 보고내용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완성하였다고 하는 당시의 보고문에는 ‘3대혁명소조들이 활동하는 모든 곳에서 3대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으며 인간개조사업과 기술개조사업, 문화건설사업에서 연이어 새로운 기적과 혁신이 일어났다’고 지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3대혁명소조원들이 파견단위의 기술혁명수행을 잘 이끌어 1970년부터 1979년 사이에 북한의 공업생산은 연평균 15.9%로 고속 성장하였고 공업총생산액은 3.8배, 그중 생산수단 생산은 3.9배, 소비재생산은 3.7배로 늘어났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982년부터는 공업단위들뿐만 아니라 농업분야에도 3대혁명소조원들을 파견하여 농촌기술혁명수행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하도록 하였습니다. 북한당국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 언론매체들을 통하여 3대혁명소조원들의 활동은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생산공정의 기계화, 반자동화, 자동화가 촉진되었고 기술개발에 의한 생산성향상과 경제성장이 이룩되었다며 그러한 주장을 안받침하는 내용들을 부문별로 열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채취공업부문에 파견된 3대혁명소조원들은 생산공정의 기계화, 자동화 실현과 생산설비들의 대형화, 현대화, 고속도화를 실현하는데 이바지하였으며 3화수송체계를 확립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3화수송은 삭도수송(케블카수송), 벨트컨베이어 수송, 관수송을 말합니다.

기계공업부문에서는 주물소재생산의 현대화와 원격조정에 의한 주물공정 자동화, 화학공업부문에서는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특히 청진화학섬유공장에서 생산공정을 개선하여 하루 생산능력을 8배 이상으로 증대한 것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경공업부문에서는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공장들이 건설되어 6개년계획기간에 육류가공품은 3.6배, 채소가공품은 1.6배가 증가하였고 농업부문에서는 기계화가 추진되어 100정보당 트랙터 수가 평지대와 산간지대에서 약 2배 수준인 6대로 늘어났으며 모내는 기계, 김매는 기계, 이동식 탈곡기 등이 도입되어 농사일이 더 쉬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금성청년출판사에서 출간한 도서 ‘조선공산주의 청년운동사 2권’에는 3대혁명소조원들의 기술혁명에서의 성과에 대하여 ‘김일성종합대학과 건설건재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시 대성구역에 있는 대성요업공장에 파견된 3대혁명소조원들은 굴식소성로건설을 완공하여 노동자들을 고열노동과 유해노동에서 해방시켰고, 원산농업대학과 사리원농업대학 학생들은 협동농장에 파견되어 농촌의 종합적 기계화와 화학화를 실현하여 생산을 증진시켰으며 김책공업대학 야금공학부 유색야금학과 학생들은 남포제련소에 파견되어 제련소 굴뚝으로 나가는 유해가스를 없앴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산농업대학의 여학생들은 천내군 삼화협동농장에 파견되어 농촌토지정리를 잘 하도록 지도하여 농산물 증산에 이바지 하였으며 향산군에 파견된 3대혁명소조원들은 트랙터운전기술을 현장 농장원들에 보급하였다’는 내용도 서술되어 있습니다.

3대혁명소조원들이 기술혁명수행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되었던 것은 기술실무수준이 낮은 로(老)간부들의 기술지식 수준을 높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신비주의를 타파하여 현대적인 과학기술로 무장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당간부들과 행정간부들은 기술지식이 부족하였지만 현장의 기술자들은 대학생 3대혁명소조원들보다 기술지식수준에서는 선배였습니다.

당시 북한의 공장, 기업소 특히 연합기업소와 같은 대규모 생산단위들에는 기술자들이 기술과나 기술준비소, 4.15기술혁신돌격대 등 기술전문그룹에 망라되어 생산정상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래동안 기술혁신활동을 벌려온 그들에게는 아직 현장경험이 부족하고 이론적으로만 배운데 불과한 대학생 3대혁명소조원들이 눈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신임으로 중앙당 비서국 파견장을 들고 현장에 나타난 젊은 소조원들은 저들의 선배나 스승이나 다름없는 그들에게 당정책을 들먹이며 기술신비주의요, 패배주의요 하는 딱지를 붙여가며 들볶아댔던 것입니다.

김정은도 3대혁명소조운동을 후계세습을 위한 돌격대로 내세우고 사상개조를 통한 사상혁명과 함께 기술혁명에서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3월에 평양에서 제4차 3대혁명소조기술혁신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올해 2018년 3월에도 제5차 3대혁명소조 기술혁신전시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북한당국은 지난 4차 전시회에서 평양화력발전소, 흥남제약공장, 청진수산사업소, 남포항, 서평양기관차대 등에 파견된 3대 혁명소조원들의 기술혁신성과를 소개하였고 올해 5차 전시회에서는 전국 각지에 파견된 3대혁명소조원들이기술혁신과정에서이룩한 750여건의성과자료들을 전시회에 출품하였다는 것입니다.

1970년대 김정일이 30대 나이에 후계세습을 위해 3대혁명소조운동을 발기하고 사상개조, 사상투쟁을 통한 전사회적인 유일적 지도체제를 세우는 과정에 기술분야에서도 통치권을 확보하기 위해 내밀었던 기술혁명은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도 똑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김씨 일가의 권력세습야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기술발전에서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전세계가 경탄하는 선진과학기술 강국으로 자랑을 떨치고 있지만 수십년 동안 기술혁명을 해왔다는 북한의 기술발전수준은 북한 기술혁명의 허구성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제가 3대혁명소조원으로 파견된 강원도 김화군 3대혁명소조사업부에서 진행되었던 기술혁명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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