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인 외화를 쏟아 붓는 특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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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은 별장이나 특각, 초대소라는 말을 들으면 그것은 일반 인민들이 아닌 오직 김정은만 가질 수 초호화 주택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일반인들도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개인 별장들을 지어놓고 여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위해 지어놓았던 수십 개의 별장들은 오늘날 모두 김정은이 독차지하였지만 그 중에서 일부는 특정집단이 이용할 수 있도록 넘겨준 별장들도 있는데 그 중에는 오늘 얘기해드리려는 강구특각도 있습니다.

1964년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당에 배치되어 일하던 김정일이 '친애하는 지도자', '당중앙'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후계자로 등장한 것은 1974년, 노동당 중앙위 지도원, 선전선동부 부장을 거쳐 중앙당정치국위원이 되면 서부터였습니다.

당권을 장악한 김정일은 김일성의 만수무강을 위한다는 구실로 전국 각지에서 본격적으로 별장을 지을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일은 새로 짓는 별장들을 주소지도 없이 특각이라는 이름 으로 번호를 붙여 부르도록 지시했습니다.

별장이라면 자본주의 돈 많은 부자들만의 것으로 선전하던 북한에서 자칫 김일성의 개인별장이 인민들에게 배신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김정일은 외국인들이나 총련간부들이 오면 이용하는 별장도 초대소라고 이름 짓도록 했습니다.

김정일은 1960년대 북한이 평범하게 지어 놓았던 김일성의 별장들을 새로 짓기 위해 특수부대도 조직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인민무력부 직속 공병국 1여단입니다. 여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군단 급 규모로 운수대대, 목공대대를 비롯하여 열 개가 넘는 대대가 소속되어 있으며 여단장은 중장이었습니다.

1975년 6월에 김일성은 유고슬로비아를 방문하여 찌또(티토)대통령의 별장을 돌아보고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해발고가 500m이상인 고산지대가 건강에 좋아 자주 이 별장을 이용한다고 찌또 대통령은 자랑했습니다.

김일성의 욕심을 알아챈 김정일은 북한의 고산지대 곳곳에 계절과 인체 건강상 특성에 따라 특각을 지을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백두산 주변과 묘향산, 연풍 호에 지어진 특각들이 당시 김일성, 김정일 전용으로 새로 지어졌습니다.

1980년대 노동당 6차 대회 이전에는 김정일이 공병국 1여단을 동원해 새로 지은 특각은 전국에 20여개가 넘었는데 1960년대에 지어진 특각들까지 합치면 북한의 경치가 좋은 모든 지역들에 김일성의 특각이 30여개나 되었습니다.

1980년 10월 노동당 6차대회에서 공식적인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은 이때부터 김일성의 특각 옆에 자신만을 위한 특각을 새로 짓도록 지시했습니다. 또 1960년대에 지은 특각들은 낡고 어둡다며 북한의 특정 계층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때 넘겨진 특각들로는 옛 주을 온천 특각으로 지금은 경성휴양각으로 자리 잡았고 남포시 와우도 특각과 양강도 혜산시 강구특각은 당과 수령을 찬양하는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라며 현지 작가동맹에 넘겨주었습니다.

양강도 작가동맹에 넘겨진 강구특각은 양강도 혜산시 춘동지구에서 압록강 하부쪽으로 약 2km정도 내려가면 허천강과의 합수목이 위치한 곳에서 시작되는 강구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허천강이 바라보이는 곳으로 경치가 뛰어났습니다.

지금은 삼수발전소가 들어서 수원이 마르고 산림이 황폐화돼 볼꼴이 없지만 1960년대 말 건설됐을 때까지만 해도 북쪽으로는 압록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허천강이 흐르는 울창한 수림 속이다보니 강구특각은 경치나 환경은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김일성이 양강도 혜산시 주변에 강구특각을 세운 이유는 무더운 여름철을 피해 이곳에 머물면서 주변의 경제형편을 쉽게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구특각에서 혜산제지공장과 혜산방직 공장이 약 2km도 안 되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혜산 제1고등중학교와 혜산교원대학, 압록각 등 혜산시의 모든 공장기업소들과 양강도의 농사형편을 쉽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강구 특각에 머물면서 김일성은 후계자 김정일을 데리고 양강도의 여러 농촌들을 현지 시찰했습니다.

특히 김일성은 최현이나 오백룡 등 자기의 측근들이 양강도에 내려오면 이 특각에서 쉬도록 하였는데 강구특각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지내던 본관 외에 수행원들과 경호원들이 쉬는 건물이 별도로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강구특각은 본관 외에도 나머지 건물들은 모두 단층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건설한지 40년이 지났지만 공사에 든 모든 자재들이 외국에서 들여온 것들이어서 아직도 든든하게 보존되어 있는데 건물입구가 경호원들이 머물던 초소입니다.

본관에는 큰 사무실과 연회실, 침실과 식당, 주방이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본관의 한쪽엔 관리원들이 사용하는 작은 방이 따로 있었으나 김일성과 김정일의 얼굴을 마주치지 안 토록 출입하는 정문은 따로 냈습니다.

이 건물에서 100m정도 더 올라가면 수행원들이 거처하는 건물이 있습니다. 비록 단층건물이지만 매 방들은 고급호텔처럼 잘 꾸려져 있습니다. 1인실과 2인실들로 구별되어 있는데 이것은 직위에 따른 것입니다.

매 방안마다 위생실들이 갖추어져 있고 1980년대 당시에 벌써 텔레비젼과 냉장고, 냉온풍기(에어컨)를 갖추었고 침대도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이었습니다. 건물에 있는 연회장은 야외 전경을 볼 수 있게 대형 유리창이 있는 원형의 구조였습니다.

1960년대 건물이어서 그런지 경치가 뛰어난 것을 빼놓으면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 시설들과 구분 되는 특징들은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이 1960년대 지은 김일성의 특각들을 북한의 특정 계층들에게 넘긴 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지은 특각들은 경호시설들이 따로 있다고 하지만 주민지구와 거의 맞붙어 있었습니다. 건물도 북한의 건설규정에 따라 평범하게 지어졌습니다. 이런 탓에 김정일은 낡은 특각들을 자신들을 위한 충성계층들에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지은 김일성의 특각은 이렇게 특정 계층들에게 넘겨주었지만 1970년대부터 김일성, 김정일 특각만 전문적으로 건설하는 공병국 1여단이 지은 건물들은 비밀을 유지한다는 구실아래 인민들에게 절대로 넘기지 않았습니다.

백두산 주변에 공병국 1여단이 건설한 포태특각만 봐도 그랬습니다. 이 특각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별장이 나란히 마주 보이게 건설됐는데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특각을 모조리 폭파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강구 특각은 북한에 있을 때 제가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던 곳으로 북한에서 김일성의 생활흔적을 추정해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인 특각들은 비밀 보장을 위해 포태 특각처럼 사라졌습니다.

김정은도 권력을 잡은 뒤 김정일 전용으로 거대한 자금을 들여 지어졌던 연풍호 특각과 원산 특각을 모조리 허물고 그 자리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특각들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 특각 하나하나를 새로 짓는다며 김정은은 인민들의 피땀이 깃든 천문학적인 액수의 외화를 쏟아 붓고 있습니다. 이것이 김정일 시대를 거쳐 오늘날 김정은 시대의 자화상이라는 사실, 북녘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알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탈북자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