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정일이 비행기 공포증이 있었다는 사실, 북한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제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에겐 열차공포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양에서 코앞인 원산까지도 늘 비행기만 타고 다니고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한국도 그래, 외국의 대통령들은 늘 인민들을 찾아다닙니다. 지은 죄가 없다면 왜 인민들 앞에 떳떳이 나서지 못하고 도적고양이처럼 숨어서 다니겠습니까?
참, 김정은이 권력을 잡고 난 후 북한에서 3대혁명소조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저는 한국에서 노동신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김일성 시대에 용도 폐기됐던 3대혁명소조를 다시 살려놓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문득 1990년에 겪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해 2월 평양체육관에서 3대혁명소조원들의 로봇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한국만 해도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공장에 가보면 사람대신 로봇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인공지능을 가진 군사용 로봇까지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북한도 1980년 10월에 있었던 6차당대회에서 김일성이 전자자동화공업을 발전시킬 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면서 로봇기술이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북한은 당시까지 존재했던 동부 독일로부터 산업로봇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북한은 동유럽사회주의 진영에서 산업로봇 기술이 가장 발전했다는 동부 독일의 자동차공업협회소속 미트바이다 엔지니어학교, 칼 맑스 공업대학 등 많은 대학들과 연구기관들에 1985년부터 유학생들과 연구생, 실습생들을 파견했습니다.
그해 8월 김정일이 전국과학기술축전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 '과학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데 대하여'에서 "전자공업수준은 해당 나라의 과학기술수준과 첨단기계 제작수준, 사회발전의 지능화를 보여주는 징표"라며 로봇기술 개발을 강조했습니다. 1987년 11월 5일 북한은 함흥시에서 외국에 파견되었던 과학자, 연구사들이 제작한 첫 로봇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6.1전기기구공장'을 비롯해 함흥시의 공장, 기업소들에서 제작한 로봇들이 전시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전시회에 대해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전국적으로 로봇생산을 확대할 데 대한 지시를 하달하였습니다. 그 시기 노동당 3대혁명소조사업부 부장이었던 장성택이 전국의 3대혁명소조원들이 로봇제작에 앞장설 데 대한 과제를 주었습니다.
장성택의 지시를 전달받은 각 도당 3대혁명소조 사업부에서는 로봇제작에 기여한 소조원들을 노동당에 우선적으로 입당시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동당 입당만이 살길이었던 전국의 3대혁명소조원들이 로봇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3대혁명소조가 로봇제작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 1988년이었는데 3대혁명소조부는 1990년 2월에 진행되는 로봇전시회라고 기간까지 지정해 주었습니다. 저는 1987년 5월 강원도 김화군에 소조원으로 파견되어 1990년 8월에 소조생활을 마쳤습니다.
내가 소조원으로 생활할 때 강원도 김화군에는 약 3백여 명의 소조원들이 파견돼 있었는데 1990년에 소조를 마치는 대상이 100여 명이었습니다. 3대혁명소조 생활기간에 노동당에 입당하여야만 쉽게 간부계에 발을 들이밀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봇을 제작하지 못하면 입당을 할 수 없다고 선포했으니 그야말로 난감했습니다. 김화군 당위원회 3대혁명소조사업부 박무길 부장은 분기사업총화에서 입당 추천권이 2건 내려왔는데 로봇을 만든 소조원이 우선권을 가진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그 누구도 선뜻 로봇을 제작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로봇 한 대를 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대충 짐작들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비용을 전부 로봇을 만드는 당사자가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봇은 높은 수준의 전자자동화기술과 기계제작기술이 필요한데 아직 그만한 기술을 독자적으로 확보한 인재가 없다는 사정도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고민 끝에 김화군 원남리에 파견됐던 리건광과 내가 박무길 부장을 찾아갔습니다.
저와 리건광은 생물학전문과 축산전문으로, 필요한 기술이 없었지만 반드시 입당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로봇 제작을 자진했습니다. 그 후 김책공업종합대학 선박학부를 졸업한 외삼촌 권영도로부터 소개장을 받아 동평양기계공장 기사장 주상량을 찾아가 간단한 로봇이라도 만들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부탁했습니다. 주상량 박사는 저의 외삼촌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동창생인데 60여 건의 발명을 하여 북한에서 발명박사로 소문이 자자한 유능한 기계기술자이며 1988년 10월 11일에 진행된 전국발명가대회에서 김일성에게 꽃다발까지 증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구소련에서 제작했던 자유도가 4인 공기압식의 단순로봇 설계를 보여주며 이것을 만들라고 제안했습니다. 로봇의 움직임은 본체 상하 400mm, 회전각도 180도, 팔의 집게운동이 보장되며 총중량이 250kg정도의 작은 크기였습니다.
저와 리건광은 로봇 설계도면을 공장기술자들에게 넘겨주고 제작을 부탁했습니다. 대신 로봇을 제작하는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에게 제작 전 기간 술을 제공하기로 약속하였고 약 9개월 만에 로봇 본체와 제어장치, 프로그램을 완성했습니다. 1989년 8월에는 최종적으로 완성된 로봇에 도색까지 마치고 시험운전을 진행했습니다. 저와 리건광은 로봇이 제작되는 기간 김화군 식료공장에서 생산되는 구기자술을 매달 60병씩 9개월 동안 약 500여 병을 구입하여 기술자들에게 공급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만들어 진 로봇을 '술 로봇'이라고 불렀는데 전시회에 출품할 때 정식 명칭은 '세탁비누성형 및 운반로보트'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1989년 10월 노동당 3대혁명소조사업부는 전국의 소조원들이 제작한 로봇을 평양체육관에 전시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참석하는 '1호 행사'를 진행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우리는 강원도 김화군 화장품공장에서 시운전을 하던 로봇을 가지고 1989년 12월에 평양에 올라와 서평양기관차대 공무직장에서 정비를 마치고 1990년 1월 6일에 평양체육관으로 옮겨 전국에서 모인 2천여 대의 로봇들과 함께 전시했습니다. 당시 전시된 로봇들 중엔 만경대공작기계공장에서 제작한 '설계용 제도로봇', 서평양기관차대에서 제작한 '관절식전호용접로봇',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에서 제작한 '플라즈마절단로봇' 등 수준이 높은 로봇들이 많았습니다.
1호행사가 2월 16일 전으로 일정이 나오고 호위사령부에서 나와서 체육관 곳곳을 최종점검하고 행사인원도 6천명으로 정했습니다. 저는 강원도 소조원들이 제작한 로봇을 김일성과 김정일 앞에서 직접 해설하는 해설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2월 초에 들어서면서 1호행사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전달되었고 로봇제작자들에겐 김정일이 보낸 감사문이 전달되었습니다. 3대혁명소조원들의 숨은 노력과 대가가 깃든 로봇전시회는 이렇게 싱겁게 마감되었습니다.
'1호 행사'로 치러진다던 로봇전시회가 불발된 이유는 지능성 기계인 로봇이 언제 어떻게 작동할지 모르기 때문에 수령님(김일성)이 직접 참석하는 행사는 안전하지 않다는 김정일의 지시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소조원들속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 사실을 접한 3대혁명 소조원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김정일이 정말 김일성의 안전을 위해 행사를 취소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목숨이 우려돼 김일성을 핑계거리로 삼았는지, 지금도 그 때의 생각을 하면 쓴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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