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에 존재하는, 김정은을 위한 특수 과일농장들에서 생산된 사과나 배, 복숭아 등 특제품 과일들은 북한의 일반 과수원들에서 생산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나 단맛이 좋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제가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를 졸업하고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위치한 만수무강연구소인 만청산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주마다 공급받던 과일도 이런 특제품 과일인 ‘9호 제품’이었기에 그 내막은 일반 주민들보다는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지금은 김정은에게 사과, 배, 복숭아 외에도 수박, 참외, 토마토, 감, 다래, 딸기 등 북한산 특제품 과일들이 특수과일농장들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북한에서 재배할 수 있는 과일의 종류보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과일의 종류가 더 많으며, 김정은에게 제공되는 수입과일들로는 파일애플, 오렌지, 키위, 멜론, 레몬, 망고스틴, 바나나, 석류, 무화과, 파파야, 두리안 등 수십 가지가 됩니다.
특히 과일의 황제라고 불리는 ‘두리안’도 김씨 일가들에게는 특별 공급되고 있습니다. 오늘 구체적으로 소개할 두리안은 김정일이 가장 좋아했던 수입산 과일입니다. 두리안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자라는 과일입니다.
두리안은 과일의 황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두리안 1개의 가격은 약 6~7만원, 달러로 50달러를 넘습니다. 동남아시아 현지 가격보다 두 배가 넘는 가격이지만 영양가와 맛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사먹고 있죠.
달고 영양가가 높고 생산량이 적어 희귀하기로 유명한 두리안은 생산지에 따라 맛이 달라 현지에서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라고 합니다. 지난 2018년에는 두리안 세계 최대 생산국인 태국에서 경매가 열렸는데 한 개 가격이 무려 한국 돈으로 2천 6백만 원에 낙찰되어 충격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달러로 약 2만 4천 달러가 되니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죠. 승용차 한 대 값에 버금가니 말이죠.
이렇게 값비싼 과일이다 보니 과일의 황제라고 불리는 두리안은 대한민국처럼 잘 사는 선진국들에서는 일반인들도 사먹을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오직 김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두리안은 중국을 통해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365일 동안 수입산 두리안을 중국인들과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인 서울시 구로구 대림동에 위치한 대림시장에서 맛볼 수 있으며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등 전국 각지의 대형 백화점 과일매대들에서 구입해 먹을 수 있습니다.
과일 두리안의 이름에서 ‘두리’라는 말은 말레이시아어로 ‘가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것은 잘 익은 두리안 열매의 무게가 10kg이 넘고 가시모양의 겉껍질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껍질이 단단해 일반 식칼로는 쪼갤 수 없으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선을 찾아 과일칼로 결을 따라 가르면서 쪼개야, 안에 있는 연한 노란색의 과일살을 쉽게 꺼낼 수 있습니다.
두리안의 과일살은 바나나보다도 더 달고 부드러우며 기름기가 있어 영양가가 높고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더 자주 먹고 싶을 정도여서 사람들은 두리안이 중독성이 있을 정도로 다시 찾게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두리안은 처음 맛보는 사람들은 양파가 썩는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열매 씨를 멀리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코끼리나 오랑우탄 등 아열대지역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도 두리안 열매를 좋아하는데 멀리에서도 이 냄새를 맡고 열매를 먹어 씨를 먼 곳에 배설해 두리안 나무를 번식하도록 한다는 것이죠.
갓 딴 두리안에서는 냄새가 없지만 24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면서 냄새가 나는데 열매가 맛있다보니 먹는 사람들은 냄새를 아랑곳하지 않고 즐겨 먹습니다. 중국이나 대한민국 등 다른 나라에 수출한 두리안은 24시간 이상 지나야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김씨 일가에게 공급되는 두리안도 발효되면서 생긴 불쾌한 냄새를 피할 수 없습니다.
김정일이 처음 두리안을 먹어본 것은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인 199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당시 김일성이 죽고 유훈정치를 한답시고 3년 제상을 마치기 전까지 수년간 북한 전역에 있는 초대소들에서 비싼 서양술(양주)과 진수성찬으로 배를 채우고 기쁨조들을 끌어들여 노래와 춤으로 세월을 보내던 김정일에게 다른 나라들에 파견된 외교관들은 그 나라들에서 진귀하다고 하는 과일이나 농축산물들을 충성경쟁차원으로 수입해 섬겼습니다.
과일의 황제 두리안은 그때 처음 북한에 들어왔고 김정일도 그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신비로운 과일은 김정일 이외에는 그 어떤 간부들도 맛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 두리안을 처음 먹던 장소에 있었던 김정일의 일본음식 전문요리사인 후지모토 겐지가 그때의 일을 고백해 더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달고 부드러운 신비의 과일 두리안을 먹는 김정일의 얼굴에는 언제 김일성이 죽고 3년 상을 하는 상제의 모습과는 다른 만연한 웃음이 피어올라 있었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이후에 민족전통에 따라 3년 상을 치르기 전에는 현지지도도 하지 않고 초대소들에서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먹고 즐기다보니 더 살이 쪘습니다. 그 음식들 중에 영양가가 높은 두리안이 김정일의 비만을 더 촉진시켰던 것이죠.
당시 만수무강연구소인 만청산연구원에서는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비만으로 심혈관질환이 생긴 김정일에게 건강을 위해 고칼로리 음식들을 제한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김정일은 그러한 요구를 무시하고 고칼로리 음식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김정일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혼자 배를 불리고 간식처럼 과일의 황제라고 불리는 두리안을 먹었던 그 시절은 고난의 행군시기였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배급이 끊긴 북한주민들은 굶어죽지 않으려고 소나무껍질을 벗겨 먹거나 강냉이대를 끓여 먹었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었습니다.
혼자 잘 먹으면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김정일은 천벌을 받듯이 2000년대에 들어와 동맥경화와 당뇨병 등 성인병에 걸렸고 2008년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70살도 넘기지 못한 채 사망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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