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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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동포 여러분, 올해는 김정일의 출생 80돌이 되는 해이며 사망한지도 만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김일성이 82살에 사망했고 북한의 고위 간부들인 김영남과 최태복은 90살이 넘었지만 현재도 살아있죠. 이러한 사실은 김정일이 10년 전에 70살의 나이로 죽었다는 것에 많은 의문을 남겼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만을 위한 만수무강연구소를 만들어 놓고 그렇게 오래 살기를 바랐던 김정일의 죽음은 당시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북한청취자분들에게 김정일의 죽음을 도래하게 했던 2008년의 뇌졸중과 그 해에 있었던 김정일을 둘러싼 그 당시 북한당국의 바빴던 행보들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은 8월 중순이지만 언론들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9월 9일 이후였습니다. 북한에서 해마다 진행되곤 하던 9.9절 행사에 김정일이 얼굴을 나타내지 않자 국제사회와 언론들은 김정일의 와병설에 대해 전하기 시작했죠.

뇌졸중은 동맥경화로 인해 노화된 혈관이 터져 출혈하거나 모세혈관이 막혀 생기는 병으로 전자는 뇌출혈, 후자는 뇌혈전이라고 말합니다. 뇌출혈이나 뇌혈전으로 해당 뇌수조직에 산소와 영양분의 공급이 차단되어 병변이 생기고 결국 반신마비가 오며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뇌 괴사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북한당국은 김정일이 뇌혈전으로 쓰러지자 프랑스 파리에 있는 파리 쌍테 안트(Sainte Anne) 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인 프랑수아-사비에 루(Francois Xavier Roux) 박사를 김정일의 치료를 위해 긴급 초청했습니다.

프랑스의 신경전문의사인 루 박사는 김정일이 52살 나던 1993년 승마 도중에 낙마해 뇌타박상을 받았을 때에 북한당국에 자문을 해주었던 인물입니다. 루 박사가 신경외과 과장으로 재직한 쌍테 안느 병원은 파리의 북한대표부 건물에서 약 1.5㎞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병원입니다. 유럽에서 정신신경과 분야의 진료와 치료로 잘 알려진 병원입니다.

김정일이 쓰러지자 북한의 초청으로 북한에 가서 김정일을 치료한 루 박사는 그해 9월과 10월에도 김정일의 완치치료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 돌아와서도 북한에서 보내온 김정일의 상태에 대한 자료들을 보면서 치료자문을 했습니다.

중앙당 서기실에서는 김정일의 뇌수를 촬영한 컴퓨터단층촬영사진인 CT영상을 프랑스로 전송했고 이것이 미국과 한국의 정보기관에 입수되었습니다. 촬영자료를 토대로 김정일이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의 여생이 남았다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2008년 뇌혈전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이 3년만인 2011년에 사망했으니 당시 전문가들의 '김정일 여생에 대한 판단'은 정확했습니다.

2008년 8월 14일 군부대 현지지도 후 80여일이 지난 11월 2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이 북한 인민군 군단 축구팀 경기를 보았다면서 만경봉팀과 제비팀 간 축구경기 관람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이 현철해, 리명수, 김명국, 장성택, 리제강, 리재일 등 중앙당과 인민군의 책임간부들과 함께 경기를 봤다며 "선군정치의 기수이며 돌격대인 인민군 군인들은 체육활동에서도 모범"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공개된 사진은 합성사진의혹을 받았던 10월에 공개한 사진들과는 달랐다고 언론들은 분석했습니다. 김정일이 뇌혈전으로 쓰러지고 와병설이 확산되면서 북한당국은 김정일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10월 4일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62돌을 맞으며 진행된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철도대학 축구팀의 경기를 당중앙위원회 1부부장인 리재일 등 책임간부들과 함께 관람했다고 보도했고 10월 11일에는 조선중앙텔레비죤으로 조선인민군 제821부대 산하 여성포중대를 현지지도하는 김정일의 모습을 공개했으나 사진배경과 옷 입은 상태를 보아 합성사진일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던 것이죠.

사진조작 논란이 국제 언론들에서 공개되면서 북한당국은 10월 중순 이후로는 김정일의 현지지도 사진들을 공개하지 못하다가 11월에 가서야 사진들을 공개했으나 사진 속의 김정일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일명 풍이라고 말하는 뇌졸중은 아무리 치료를 잘 했다고 해도 재발위험을 가실 수 없습니다. 김정일은 급기야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기에 바빴습니다. 80여 일간의 치료로 완치는 안 되었지만 운신을 하거나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김정일은 2008년 11월부터 내적으로 김정은에 대한 후계세습을 공개했고 인민군을 시작으로 전 사회에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선전을 시작했습니다.

2008년, 67살이었던 김정일이 뇌혈전으로 쓰러진 데는 수십 년 동안 섭생을 잘못해 생긴 동맥경화증과 당뇨병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초부터 선군정치와 핵무장화로 영원한 현대판봉건왕조 독재국가를 유지하려고 동분서주한 현지지도의 육체적 과로도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1월 1일 신년을 맞으며 김일성의 시신이 보관된 금수산태양궁전(당시의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한 김정일은 1월 30일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인 왕가서(王家瑞) 일행을 접견해 양국 간 친선협조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2월 군부대 현지지도시찰에 이어 4월에는 6곳의 인민군부대를 현지지도했고 김일성의 96돌 생일인 2008년 4월 15일에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습니다. 그리고 5월 한 달 동안에 20여 곳 이상의 인민군 부대들을 현지지도 한 김정일은 6월에도 10여 곳이 넘는 단위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이어갔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이 6월 18일에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가 부주석인 습근평(習近平)을 접견해 북핵문제와 북중 양국의 우호관계 발전을 의논했다고 보도했습니다.

2008년 1월부터 4월까지의 고된 현지지도와 초대소들에서 이어진 밤파티로 김정일의 건강상태는 상당히 악화되었다는 것이 당시 북한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뇌혈전으로 쓰러진 8월 이전인 5월과 6월에 한두 차례의 풍이 슬쩍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5월 이후로 ‘김정일의 사망설’이 나돌았던 것이 그 일례죠.

마치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과시라도 할 듯 김정일은 7월에 들어와 자강도와 평안북도 지역의 인민군 부대들과 인민경제 단위들을 현지지도했습니다. 김정일은 8월 중순 뇌혈전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보름동안에만도 13곳의 인민군 부대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강행했습니다.

2008년 8월 이후 등장한 김정일의 모습은 풍으로 인해 왼손과 왼팔이 비정상이었고 키가 작아서 뒤축 높은 신발을 신던 김정일이 굽이 낮은 신발을 신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3년 4개월이 지난 2011년 12월에 김정일은 사망했으나 김정일을 능가하는 고도비만자 김정은이 현재 북한의 최고영도자로 나서서 여전히 현대판 봉건왕조 독재국가를 영원히 유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숫자 3은 막수입니다. 아무리 김정은이 영원한 독재, 대를 이은 충성을 강요하지만 북한의 마지막 독재시대는 반드시 허물어진다는 것은 역사의 진리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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