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사령부검열과 보천특산물식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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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999년에 양강도에 대한 보위사령부검열에서 소문이 자자했던 보천특산물식당이 검열의 표적이 되어 식당책임자가 조사받기 위해 끌려간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에는 강 책임자가 거의 한 달에 걸치는 검열기간에 겪었던 여러 가지 일화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보위사령부검열이 한창 진행되면서 양강도에서는 한다하는 유명한 사람들은 보위사령부에 거의 다 잡혀갔습니다. 혜산방직공장 강옥희 초급 당비서, 혜산강철공장 강승모 지배인, 혜산상업관리소 서옥순 지배인, 혜산신발공장 초급 당비서, 95호공장 안전부장, 위연 역전분주소 소장, 혜산세관장 등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기도 하였습니다. 주민들 속에서는 많은 유언비어와 억측들이 난무했고 잡혀간 사람의 가족들은 신고자에 대한 원한을 품는 등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분노가 도를 넘었습니다.

혜산방직공장 강옥희 당비서의 집에서 금 2kg이 나왔다느니, 95호공장 안전부장은 공장 노동자들이 동(구리)을 빼내다가 밀수하려고 한 것을 회수하여 감옥에 보내놓고는 그것을 자기가 팔아먹었다느니, 역전여관 지배인의 집에서는 북한돈 몇 억원이 나왔다느니, 혜산신발공장 통계원의 남편묘지에서 금 3kg이 나왔다느니 등의 별의별 소문들이 다 나돌았습니다.

위연 역전분주소 소장은 통제품이었던 뽀베지트(강도높은 금속을 가공하는데 사용되는 금강석합금)를 밀수하려던 여성을 한주일 동안이나 감방에서 고문하면서 굶겨죽인 사건, 위연 27호 연유공급소의 삼지연비행장 연유담당 군관(중좌)은 집에 감추어두었던 300리터가 넘는 항공유를 하수도에 부어버리다가 마지막 한창 부을 때 보위사령부 검열성원들이 들이닥쳐 현장에서 체포되기도 하였습니다.

1990년 1월 8일 김정일의 지시로 전 세계가 재배를 제한하고 있는 아편을 백도라지라는 이름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재배하게 되면서 양강도 주민들 속에서 다른 지역보다 아편중독자들이 많았습니다. 보위사령부검열에서는 이런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몇 달 사이에 수백 명의 주민들이 보위사령부검열로 체포되어 구금되다 보니 혜명여관과 성후동 답사숙영소, 보위사령부 초소, 지구사령부 구류장 등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체포하면서 연행되어 갈 때 어디에 감금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고 일체 면회가 허용되지 않아 조사받는 정황을 알 수 없었습니다.

혜산세관 인근의 탑성동에 위치해 있던 보천특산물식당에 새벽에 들이 닥친 보위사령부검열성원들은 아직 잠에 취해 있던 강 책임자를 체포해가면서 남편에게도 어디에 데리고 가는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보위사령부 검열기간에 얼마나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는지 당시 강 책임자의 남편은 왜 부인을 체포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물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남편은 몰래 뒤를 밟아 감금장소를 알려고 따라 나섰지만 연행해가는 사복차림의 보위사령부 검열성원들은 자주 뒤를 주시하기에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6월의 새벽은 날이 대낮처럼 밝아서 더욱 근접거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따르다가 결국 놓쳐버렸지만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들에게도 알리고 온 가족이 떨쳐나서서 과연 어디에서 조사받는지 수소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곳을 찾아다니면서 행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저녁에야 임시로 혜명분주소 구류장에 잡혀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떤 연고로 체포되었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혜명분주소는 보천특산물식당 담당 관내여서 보안원들은 잘 알고 있지만 그들마저 보위사령부 검열성원들에게 그런 것을 물을 수 없었습니다. 양강도 도당 근처에 위치한 혜명분주소는 바깥에 아파트주민들이 사용하는 외부창고들이 있는데 그 지붕에 올라가면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보위사령부 검열성원들은 조사과정에서 외부와 차단하려고 출입문을 봉쇄하였기에 남편과 지배인의 언니들은 창고지붕들을 돌면서 내부를 들여다보던 중에 조사를 받는 강 지배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압이 낮아서 방안은 어두웠지만 검열성원은 의자에 앉아있고 밤새도록 잠을 재우지 않고 벽을 마주하고 세워놓은 강 지배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신고했으며 무슨 죄가 있어서 이렇게 재우지 않고 고문을 하는지 알아내야 했습니다. 자정이 훨씬 넘어서 검열성원들도 피곤했는지 혹간 다른 방으로 갔다가 다시 조사하는 방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책임자의 언니가 기발한 착상을 하여 고무호스를 가져왔고 감방 창살 사이로 호스를 넣어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압이 낮아서 방안이 어두운 것이 다행이었고 무언가 따지다가도 잠깐 자리를 비우곤 했습니다. 아마 옆방에 가서 다른 검열성원들과 의견도 나누고 잠도 달랠 겸 간식도 하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밤새 재우지 않고 정자세로 세워두고 조사는 계속되었지만 새벽녘에는 호스를 통해 강 지배인과 잠깐의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특산물식당 건물을 사는데 든 돈의 출처, 도안의 고위간부들과 보천특산물식당과의 유착관계, 중국에 사사(私事)여행을 다니면서 접속한 사람들과 그들과의 돈거래, 116기동대에서 받은 휘발유 문제 등이 조사내용의 일부였습니다.

보천특산물식당은 혜산시에서 혜산세관과도 가깝고 무역하면서 목재와 광석을 보관하는 '토장' 과 마주하고 있고 독립건물인데다가 승용차들을 세워둘 수 있는 주차공간이 넓어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두 칸짜리 아파트 2 세대분과 바꾼 식당건물에 들어간 돈은 빚으로 남아서 매일 식당을 하면서 물어나갔습니다. 1세대 분은 아파트를 가지고 있던 남편의 친척이 식당에 들어와 함께 살면서 식당을 하다 보니 별문제가 안 되었지만 다른 한 세대 분은 여기저기서 꾼 돈이 문제였습니다. 더구나 도당의 한 비서급 간부의 부인이 고리대로 빌려준 돈은 월 리자가 30%였습니다.

그 부인은 강 지배인이 보위사령부에 잡혔다는 것을 알고는 부리나케 식당으로 찾아와 남편을 만났습니다. 자기들이 돈을 빌려주었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우선 남편은 매달마다 이자와 원금을 총화하면서 서로 맞수표(사인)를 하던 책을 소각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본장부만 남겨놓고 비밀장부도 없애버렸습니다. 보안국 경제감찰처나 검찰소에서 자주 검열을 나오면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사용하던 본장부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문제될 것이 없지만 비밀장부에는 노출되지 말아야 할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장부관리는 식당부기원이 아니라 남편이 다 맡아 하다 보니 여기에는 도당이나 검찰소 등에서 간부들이나 검사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 내용들은 물론 명절계기로 간부들에게 제공하였던 물자에 대한 기록도 있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자면 보안국이나 검찰소 등 사법기관이나 인민위원회 급양국 등의 검열과 통제를 받아야 했고 특히 당원인 책임자는 시당 당생활지도과의 간섭과 통제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당 책임비서나 조직비서, 근로단체비서 등 비서급 간부들에게 명절마다 식품을 뇌물차원에서 제공하여 그들의 힘을 빌어 하급관리들의 통제를 쉽게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설명절 물자로 제공했던 식품으로는 10kg씩 냉동한 낙지와 명태, 고등어 등과 돼지고기, 소고기 등 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에 남편이 직접 비서들의 집을 돌면서 물자들을 부인들에게 전달해주곤 하였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책임자와 남편만 알아볼 수 있게 작성한 비밀장부에는 매일 매상도 자세히 적혀 있어서 보위사령부 검열성원들의 손에 들어가는 날이면 문제는 심각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식당에 찾아온 검열성원들이 매일 매상도 적게 잡아 검열용으로 작성해 놓은 본장부만 가져갔습니다.

116기동대는 북한에서 유사시 전쟁이 일어나면 전시물자들을 나르기 위한 운수기동대입니다. 중국 동방호와 해방호 화물자동차들이 항시 대기 중에 있다가도 해마다 감자 수확철이 되면 양강도에 내려와 주석폰트용 휘발유로 감자를 운송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휘발유를 조절하였다가 팔아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곤 하였는데 이렇게 넘겨받은 것들을 휘발유 장사꾼들에게 넘겨주어 팔다보니 보위사령부 검열성원들에게 그 정보가 넘겨진 것 같았습니다.

결국 책임자의 남편도 3일 동안 보위사령부 혜산초소에 끌려갔고 그에 대해 진술을 강요당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식당을 운영하면서 중국에서 전자벽시계를 대량으로 밀수하면서 중국에 두 번이나 넘어 다녔던 일도 검찰소 기록에서 찾아내 조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강 지배인의 보위사령부 검열조사는 혜명분주소에서의 조사가 다가 아니었습니다.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이감되었는데 그 이후에는 통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성후동에 있는 고층아파트인 답사숙영소에 이관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곳에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강 지배인에 대한 보위사령부 검열은 그때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답사숙영소에서 보천특산물식당 강 책임자가 보위사령부 조사를 받으면서 당했던 이야기를 해드리기로 약속드리며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