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지난 시간에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북한에 제공한 대북지원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미국이 북한정부에 제공한 인도적인 지원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북핵문제와 미사일 발사시험으로 유엔이 대북제재를 결정하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해 대북제재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기 미국정부는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으면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따른 제재 상황에서도 대북지원은 꾸준히 해왔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닙니다.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허가를 받고 1950년 6.25남침전쟁을 일으키자 전 세계는 같은 민족인 한국을 공산화하려고 전쟁을 일으킨 전쟁범죄자 김일성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군대들이 파견되었고 유엔의 결정에 따라 유엔군이 조선반도가 공산독재가 되는 것을 막으려고 참전하였습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으로 전쟁이 정전되면서 대한민국과 미국 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고 전후 미국은 북한의 한국 침략을 막기 위한 대북정책을 실시해 왔습니다. 북한에 경제지원을 해주면 국방산업에 투자하여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기에 미국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받는 원조는 정치적인 조건부가 달려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으로 경제난에 봉착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이 자본주의로 복귀하면서 북한에 대한 이 나라들의 원조나 차관 등이 점차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북한에 제공한 차관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밀가루와 쿠바의 사탕가루(설탕)로 모자라는 배급을 보충하던 북한정부는 주민들에게 배급할 식량이 부족해지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배급을 주지 못해 지방에서는 굶으면서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발전설비와 농기계 등 기계공업과 농업에 필요한 설비들을 제공하던 동유럽국가들의 지원이 끊기면서 전력생산이 떨어져 공장들이 멎기 시작했고 비료생산이 부진하자 흉년이 들어 점점 북한사회는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학생교복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게 되었고 식량배급마저 공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김일성은 사망하기 전날에 묘향산 초대소에서 열린 협의회에서 김정일에 대해 “조직비서 자리를 내놓으라”고 말할 정도로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날 김일성은 심근경색으로 급사했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여름, 장마철은 북한의 농경지들을 여지없이 파괴하였습니다. 물을 퍼올릴 양수기도 부족했고 전력생산이 멎어 남아있는 양수기들도 돌릴 수 없어 논은 그대로 물바다로 변했고 그 해 농사는 대흉작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북한에 몰아친 고난의 행군으로 수백만의 주민들이 굶어죽었습니다. 함흥과 청진, 길주 등 북한의 도시 방방곡곡에서는 전쟁을 치른 것처럼 시신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수년 동안 이렇게 아사로 죽은 사람들의 시신으로 북한주민들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언제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였습니다. 제가 1998년 8월에 평양에서 고향인 혜산에 가보니 첫날 아침에 저를 놀라게 한 것 역시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신이었습니다. 북한정부의 통제가 마비되었고 주민들은 살기 위해 친척집을 찾아다니다가 노상에서 객사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도강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살 길 찾아 간도로 정처없이 떠나가던 모습이 재현되었습니다.
급해난 김정일의 지시로 북한당국은 국제사회에 구걸을 시작하였습니다. 체면이 없었습니다. 자본주의 나라든, 못사는 나라든 가릴 형편이 안되었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전 세계는 세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도 해방 후 북한에 대한 지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1995년부터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나라인 미국이 수백 만명의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못본 척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물론 민간단체, 개인들도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하였습니다. 미국과 함께 서방의 선진국들도 앞을 다투어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에 나섰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ECD)의 통계에 따르면 이 국가들이 북한에 지원한 지원금액이 1996년부터 2017년까지 약 10억 2천만 달러가 된다고 합니다. 이 개발원조위원회에 속한 미국과 독일, 영국 등 서방 선진국들은 북한이 제국주의 국가라고 하면서 가장 싫어하는 나라들입니다. 이 국가들이 지원한 원조액은 정부차원의 금액만 해도 해마다 5천만 달러를 넘습니다.
옥수수 국제시장가격이 톤당 약 125달러입니다. 그러니 이 돈으로 40만 톤의 옥수수를 살 수 있습니다. 이 옥수수를 북한주민 2,300만명에게 준다면 1인당 17.4kg, 5인 가족이라면 1년에 87kg의 옥수수 배급을 줄 수 있습니다. 20년간 이렇게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들이 북한에 제공한 지원액이 어마어마한 량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이 혜택을 받지 못한 이유는 그 돈이 김정은의 진수성찬 음식거리와 고급 벤츠승용차, 고위측근들에게 주는 선물, 그리고 핵무기와 미사일개발에 탕진되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인도적인 지원을 어려운 북한주민들에게는 공짜로 주라고 한 것이지만 오히려 간부들과 군인가족들은 이것을 시장에서 일반 주민들에게는 비싼 값으로 팔아 부를 획득했습니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제공한 지원액 중에서 미국이 4억 4천 달러로 가장 많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러시아나 중국은 미국처럼 북한에 이런 막대한 돈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1달러가 8천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지원한 금액 4억 4천 달러면 북한돈으로 3조 5천 2백억원이 됩니다. 쌀값이 1kg이 4천원이라고 했을때 88만톤이 됩니다. 그래도 가늠이 가지 않는다면 북한의 승리58 화물차에 3톤씩 싣는다고 치더라고 30만대가 필요합니다.
북녘 동포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북한당국이 미국을 가장 나쁜 나라라고 하고 있지만 고난의 행군시기 북한주민들이 굶어죽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막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였던 것입니다.
2018년 6월 12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 폐기를 국제사회의 요구대로 한다면 더 많은 인도적인 지원 뿐아니라 경제번영을 위한 막대한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김정은의 약속 불이행으로 국제사회는 더 강력한 대북제재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미국 클린턴 정부, 부시 정부, 오바마 정부를 거치면서 현재 트럼프 정부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정부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인도주의적인 대북지원을 하기 시작하여 정부차원의 지원, 국제사회를 통한 지원, 민간단체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이 김씨 일가의 생명줄을 이어준 셈입니다.
미국정부는 정권이 바뀌고 새 대통령이 임기를 하면서 북한지원은 횟수와 지원액은 달라도 지속적으로 북한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정부는 전쟁으로 어려워진 나라들이나 경제난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에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유대관계를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미국정부가 시기별로 북한에 제공한 대북지원에 대해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