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북한 인민들 속에는 양강도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고향이 양강도 혜산시여서 대한민국에 사는 동안 양강도라는 말만 나와도 마음이 설렙니다. 태어난 고향은 두메산골인 양강도라 하지만 김일성종합대학까지 졸업한 후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있는 만청산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19년 동안이나 평양에서 살다보니 고향엔 거의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생각은 한시도 잊은 적 없었습니다.
지금도 술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며 고향 생각을 할 때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양강주입니다. 양강주는 양강도 특산물인 술로 주정이 50%입니다. 한잔만 마셔도 술기운이 확 돌기에 기온이 낮은 산간지대 양강도 사람들 속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양강도는 자강도와 함께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말에 새로 만든 지명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선이 고착되어 갈 때 김일성은 한국엔 9개의 도소재지가 있는데 우리는 왜 7개 밖에 안되냐며 새로 2개의 도소재지를 더 내오도록 지시했습니다.
결국 함경남도와 함경북도의 일부지역을 분리하여 양강도를 신설했고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에서 일부를 분리해 자강도를 새로 내왔습니다. 양강도라는 지명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양쪽으로 흐른다는 의미에서 유래됐습니다. 양강도는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백두산과 개마고원, 백무고원이 있는 고산지대로서 동쪽으로는 백두산줄기, 서쪽으로는 낭림산줄기, 남쪽으로는 부전령산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평균 해발고가 1,339m에 달하는 북한에서도 제일 추운 고장입니다.
산이 많아 양강도는 옛날부터 풍치 수려하고 공기가 맑기로 유명했습니다. 또 날씨가 추운 탓에 이곳 사람들은 겨울이면 모여서 주정이 높은 술을 마시며 몸을 녹이고 술기운에 곯아 떨어져 복잡하고 마음 아픈 세상사를 다 잊기도 하였습니다. 서양술인 양주가 보통 주정이 40%이지만 양강주는 이보다 높은 주정 50%짜리 술입니다. 양강주는 김일성 일가에 공급되는 '1호 제품'으로 일반 사람들은 구경하기도 힘들고 북한에서도 이름이 있다는 간부들만 마실 수 있는 술입니다.
양강주라는 이름에도 숨겨진 유래가 있는데 1970년대 김일성은 김정일과 함께 양강도를 현지지도했습니다. 당시 양강도 당위원회 간부들이 혜산제면협동조합에서 만든 술을 김일성에게 선보였는데 주정이 높으면서 맛이 깔끔했습니다. 김일성은 술맛이 좋다고 칭찬을 했고 초기 주정이 40%였던 양강주를 50%로 고정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양강주는 동유럽 출신 유학파들이 제조해 처음부터 주정이 높았습니다. 당시까지 양강도에는 동유럽 유학파 출신 학자, 교수들이 많았습니다.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혜산농림대학은 산림학과와 산림기계학과, 목재가공학과, 목재화학과, 고산지대 농업, 축산학을 전문으로 교육하는 대학입니다. 혜산농림대학은 1959년 9월 1일 동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한 학자들을 모체로 설립되었습니다. 뽈스까와 체스코슬로바키아, 로므니아 등 동유럽대학에서 유학을 마치고 이 대학에서 재직한 김하룡, 이재홍, 박규삼 교수들은 혜산제면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제자들에게 서양술인 보드카에 대한 자료들을 주고 이를 모방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만든 것이 주정 40%짜리 술이었는데 훗날 김일성이 주정을 50%로 고정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술의 이름도 양강도 특산물임을 알리는 의미에서 양강주라고 짓도록 했습니다. 김일성은 해마다 7~8월이면 여름휴가로 양강도를 찾았습니다. 김일성이 양강도에 오면 먼저 양강주부터 찾았다고 할 만큼 이 술에 집착했습니다. 애주가였던 김정일이 1999년 6월 양강도 삼지연군을 방문할 때 당시 군당 책임비서였던 이용화 앞에서 양강주 두병을 마시고도 끄떡없었다는 일화는 유명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자주 찾는 술로 알려지면서 중앙당 재정경리부와 호위사령부도 양강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혜산제면협동조합은 호위총국 산하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양강주는 중앙에서 관리하는 특수공장으로 되었습니다. 양강주를 생산하는 혜산 구루봉 골안은 24시간 무장보초를 서고 직원들도 성분검증이 된 대상만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 작업반 직원들은 3개월에 한 번씩 건강검증을 받도록 했는데 조금이라도 건강에 이상이 발견되면 해고되었습니다.
애초 혜산제면협동조합은 양강도에 흔한 감자에서 전분인 농마를 추출해 당면을 만든다고 하여 이름도 제면협동조합이었습니다. 1980년대 초 노동당이 관리하는 특수공장이 된 후에는 965공장, 혹은 아비산연구소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나이가 많은 혜산시 어르신들은 구루봉 작업반을 제면협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양강주를 특별한 이름이 없이 제면협동조합 술이라고 불렸는데 이때까지 제면협동조합 술은 평범한 백성들도 맛 볼 수 있는 일반 술이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호위사령부에서 공장을 맡아보게 되면서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술에 양강주라는 상표를 붙였습니다. 이때부터 양강주는 일반 백성들이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임금님의 술, 김일성 일가에게만 올리는 특제품으로 되었습니다. 양강주의 깔끔한 술맛은 구루봉에서 나는 이름난 천연수에 있었습니다. 이 공장의 유성호 기사장은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 졸업생이었습니다. 그는 저와 대학을 함께 다녔던 친구여서 자주 공장의 유래와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공장은 양강도 혜산시 련두동에 위치한 구륙오(965) 골안에 위치해 있는데 이 곳에서 나는 샘물들은 그 물맛이 예로부터 이름났습니다. 965는 제면협동조합이 호위국에 이관되면서 비밀보장을 위하여 숫자로 불여진 공장의 대호였습니다.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갑산면 혜산진이었던 이곳에는 북부 국경을 관리하는 일본군 부대가 주둔해 있었는데 이곳의 물만 가져다 먹었다고 합니다. 물맛이 좋아 주변에 자그마한 술 공장을 세웠는데 그 위치가 바로 제면협동조합 자리였다고 합니다.
구루봉 맨 끝자락인 혜산시 위연역 맞은편엔 일본에서 귀국한 조총련 상공인 이병언이 세운 맥주공장이 있습니다. 본인의 이름을 따 공장 이름도 병언맥주공장인데 여기에 맥주공장을 세운 이유도 구루봉의 이름난 물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병언맥주공장은 구루봉의 유명한 물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양강도 당위원회가 맥주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구루봉의 물을 허가해 달라는 제의서를 수차례나 김일성, 김정일에게 올렸으나 물의 량이 적다는 구실로 매번 거절당했습니다.
인민의 건강과 교육, 물질문화 생활을 책임진다는 김일성 봉건 세습정권은 북한의 물맛이 좋은 지역엔 전부 자신들이 먹을 특제품 공장을 짓거나 주변에 자신들을 위한 호화별장을 지어 백성들은 발도 들여 놓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최근엔 북한을 다녀오는 한국의 인사들도 연회석상에서 양강주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정이 50%인 양강주는 입에 대도 알콜 농도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순해 모르는 사람들이 쉽게 마셨다가 순간에 취기가 올라 정신을 잃을 수 있습니다.
물마저 빼앗긴 북한의 인민들, 인민이 주인된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민들이 양강주를 마음껏 즐기는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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