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산농장 농장의 실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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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저는 김일성 일가와 북한 고위층 간부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아미산농장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전 시간에 이어 아미산농장의 실체를 계속 파헤치려 합니다. 전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평양시 대성구역 미산동과 평양시 서성구역 와산동에 인접해 있는 아미산 주변은 일반 주민들이 드나들 수 없는 통제구역입니다. 아미산 주변엔 북한을 통치하는 권력기구들이 모두 모여있습니다.

1970년대 김일성이 거주하는 '금수산의사당'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북한에서 아미산이 별 관심을 끌지 못하던 장소였습니다. 김일성이 생존해 있을 때 거주공간이었던 '금수산의사당'은 북한 주민들 속에서 '주석궁전' 혹은 '주석부'라고도 불리었습니다. 1970년대에 건설된 '금수산의사당'의 초기 이름은 '아미산의사당'이었으나 김정일이 "촌스럽다"며 이름을 바꾸도록 해 오늘날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되었습니다. 북한에 '아미산 줄기'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큼 이곳은 김일성 일가와 연관이 깊습니다.

김일성이 '금수산의사당'에 거주하면서 김정일의 거주공간인 21호 초대소도 이곳에 지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김일성 일가의 경호임무를 맡고 있던 호위사령부 제1국과 후방공급을 책임지고 있던 호위사령부 제2국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또 북한의 인민보안성, 국가안전보위성, 인민군 보위사령부를 비롯한 권력기관들도 모두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김일성의 정치적 기반은 빨치산 출신들인 '백두산 줄기'였는데 김정일의 정치적 기반은 '김일성종합대학' 출신들인 '룡남산 줄기'였습니다.

오늘날 김정은은 북한의 고위층 자녀들인 '아미산 줄기'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북한의 권력기관들과 함께 최고위층들을 위한 주택들도 주로 아미산에 지어졌는데 김정은의 거주공간인 55호 관저도 아미산 주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렇게 북한에서 부모들로부터 권력과 부를 대물림한 세습집단을 '아미산 줄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북한의 최고위층을 이루는 세대가 대부분 아미산에서 태어났고 아미산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세대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아미산 주변에는 '금성거리'라고 하는 8차선으로 된 넓은 도로가 있는데 이 거리를 일명 '1호도로'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미산 도로'는 1호도로와 함께 평행으로 나있는 도로입니다. 아미산 도로는 일반 차량의 통행이 금지돼 있는데 도로의 한쪽엔 금수산 기념궁전이 있고 반대편엔 오늘 이야기하는 아미산 총국이 있습니다.

1970년대 초 김일성 일가의 후방사업과 건강관리를 노동당 조직지도부 간부 5과에서 관리하는 '만수무강 연구소'가 책임을 지게 되면서 호위사령부 제2국 산하에 소속돼 김일성 일가의 후방사업을 맡았던 아미산총국은 존폐기로에 놓였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 산하엔 노동당 재정경리부가 관리하는 '기초과학연구원'과 금수산의사당 경리부가 관리하는 '만청산 연구원'이 있었는데 호위총국도 이에 질세라 북한의 우수한 의료진과 연구사들로 제2국 산하에 '청암산 연구소'를 내왔습니다.

다행이도 호위사령부 제2국 산하에 있던 '아미산 총국'은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먹을거리와 건강관리를 만수무강연구소에 통째로 넘겼다고 해서 아미산 총국의 위상이 결코 낮아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미산 총국은 김일성 일가의 먹을거리를 생산할 때보다 훨씬 규모가 방대해지고 권력도 더 막강해졌습니다. 이는 김정일의 지시로 아미산 총국이 조선노동당 비서국과 정치국 간부들의 후방사업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미산 총국으로선 기존보다 규모가 늘게 된 것도 큰 이득이었는데 김일성 일가의 후방사업을 책임졌을 때와는 달리 북한 특권층들의 후방사업을 맡게 된 것 또한 이득이었습니다. 그만큼 북한의 특권층을 상대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 산하인 '청암산 연구소'에는 호위총국 군인들을 상대로 각종 임상실험을 할 수 있는 '청암산 진료소'가 있었고 김일성 일가에 특화된 기호성 건강보약재들을 생산하기 위해 '만년제약공장'의 주요 연구실도 소속돼 있었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아미산 총국은 전문연구기관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인간의 건강장수와 관련된 자료들은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후방공급을 책임져야 할 때 인원은 백여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동당 비서국과 정치국 위원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게 되면서 아미산 총국이 책임져야 할 인원은 수천 명도 넘게 늘었습니다. 기존에 몇 개 농장들을 지정해 김일성 일가의 먹을거리들을 마련하던 방식과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당장 수천 명이 넘는 노동당 비서국과 정치국 위원 가족들에게 최고의 먹을거리와 생활편의를 보장하자니 아미산 총국이 전문 관리하는 농장과 목장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되어 1970년대 말부터 북한 전역에 수많은 농장과 목장들이 생겨났습니다. 아미산 총국 산하 농장과 목장의 간부들은 민간인들과 꼭 같은 사복차림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호위총국 군인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때문에 아미산 총국 산하 각 단위의 간부들은 따로 군사칭호가 지정돼 있었고 거기에 따른 대우를 받았습니다.

아미산 총국이 관리하는 목장과 농장들은 지역의 이름을 따르지 않고 호위총국의 관례대로 11호 농장, 21호 목장, 30호 수산사업소 등 숫자로 된 대호로 불렸습니다. 각 농장과 목장, 수산사업소의 직원들도 모르게 철저한 비밀로 붙여졌습니다. 해당 직원들마저 정확한 대호를 모르다나니 아미산 총국 산하라는 의미에서 자신들이 일하는 곳이 농장이면 '아미산 농장', 목장이면 '아미산 목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북한에 수천 개도 넘는 아미산 농장과 목장들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북한에 아미산 농장과 목장이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알려진 자료는 없습니다. 아미산 농장의 경우 북한의 거의 모든 시, 군들에 있었습니다. 지방에 있는 아미산 농장의 특징은 규모가 일반 협동농장 한 개 작업반 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원도 적게는 80명, 많으면 120명 정도였는데 아미산 농장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 출신성분이 좋아야 하고 건강이 필수였습니다. 먼저 지방 당위원회 간부부에서 인원을 선출하는데 선출된 인원들은 따로 도 종합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석 달에 한 번씩 받는 정기검진이 있는데 약간의 감기증세만 보여도 보름동안 출근이 정지되리만큼 건강관리를 철저히 감시당해야 했습니다. 지방의 아미산 농장은 해당 지역 인민보안부 경비과에서 선발한 보위대원들이 맡았습니다. 그러다나니 지방 농장들은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농장이나 목장들처럼 비밀이 보장되지 못했습니다. 지방에 있는 아미산 농장들은 그 지방의 농업특산물을 생산하는데 여름에 농사를 짓는 일반포전(밭)과 겨울에 농사를 짓는 온실포전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이곳 아미산 농장 종업원들에겐 식량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필요에 따라 만수무강연구소 연구원들도 아미산 농장에 파견돼 영농방법을 비교하는 실험을 자주 진행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3대 째 이어오는 봉건적 세습권력은 북한 특권층 간부들에게도 꼭 같이 어어 지며 과거 우리 조상들의 신분제도처럼 작용하고 있습니다. 아미산 총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로 살쪄 온 세대들이 오늘날 김정은 정권을 받드는 '아미산 줄기'입니다. 김정은 정권에 기생하는 '아미산 줄기'들에게 오늘도 북한의 인민들은 피땀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