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여러분, 여러분들은 종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국어사전에는 종묘의 의미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식물의 모종이나 묘목을 종묘(種苗)라고 하고 다른 뜻으로는 봉건왕조시기에 왕의 선친들과 왕 그리고 왕비들의 신주를 보관하는 사당도 ‘종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신주 모시듯 한다’는 말은 사람이 죽으면 고인의 이름과 친족관계, 관직 등을 쓴 위폐인 신주를 자손들이 정히 모셨던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씨조선시대 왕들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가 서울의 중심부에 있듯이 북한에도 평양시 대성구역에 김씨왕조의 종묘라고 할 수 있는 금수산태양궁전이 있습니다.
봉건왕조국가의 세습적인 왕권계승을 위해 왕족을 신성시하면서 세워진 종묘에서 거행된 종묘제례는 현대판 왕조국가인 북한에서는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로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씨왕조의 종묘제례와 북한의 김씨왕조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대해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이씨조선왕조가 새로 건립되고 2년 만인 1394년에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서울로 도읍지를 옮긴 태조 이성계는 그해 12월 종묘를 건축하도록 했고 1395년에 이씨왕조의 종묘가 완공되었습니다.
이조 왕궁이었던 경복궁에서 동쪽으로 약 1.5km에 위치한 종묘가 완공되면서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는 고조할아버지인 목조 이안사, 증조할아버지 익조 이행리, 할아버지 도조 이춘, 아버지 이자춘의 신주를 모셨고 500여 년에 걸친 이씨왕조, 태조 이성계로부터 시작해 27대에 걸치는 왕들의 신주와 공신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부친이었던 이자춘은 함경도 지역이 몽골의 지배하에 있었던 시기에 지방관직에 있다가 고려시기 공민왕의 원나라를 배척하는 반원정책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고려왕조의 무관 관직을 부여받았던 인물입니다.
이씨왕조시기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왕족의 신성화를 위해 만든 종묘에 조상들의 위폐인 신주를 모신 것처럼 김일성도 만경대혁명사적관 옆에 할아버지인 김보현과 할머니인 이보익,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의 시신을 묻은 묘를 만들어 만경대를 찾는 북한주민들이 참배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일성은 김씨왕조에 대해 ‘혁명가정’이라면서 조상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위대한 인물들이라고 선전해오고 있죠. 대표적인 것이 만경대혁명사적관에 가면 볼 수 있는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에 대한 설명입니다.
현대판 김씨왕조의 영원한 계승을 위해 왕족의 우상화가 필요했던 김일성은 1866년에 미국 상선인 셔먼호를 불태우는데 앞장선 애국자라고 역설했던 것이죠. 그러나 역사기록에는 당시 셔먼호사건의 핵심인물들은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와 철산부사 백낙연, 행동대장 박춘권이었다는 자료만 있을 뿐 김응우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소작농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근근이 살아오던 김일성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는 산당집이었던 만경대에서 평양의 대지주 이평택의 묘지를 봐주는 묘지기로 살았다는 사실은 김일성의 회고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만경대가 김씨왕조의 종묘역할을 해왔습니다. ‘만경대혁명사적지’라고 불리면서 만경대 옛집을 중심으로 만경대혁명사적관, 부모와 조부모의 묘지 참배를 통해 북한주민들에게 김씨왕족의 신성화가 강요되었던 것이죠.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은 김씨왕조의 종묘를 만경대에서 금수산의사당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신주 대신 김일성의 시신을 그대로 박제품처럼 만들어 보관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씨왕조시기에 왕들의 시신은 묘지들에 안치하고 그들의 혼백이 깃들어 있다는 신주를 모신 종묘를 왕궁 가까이에 두었던 것과 달리 시신 자체를 영구적으로 보관하여 참배함으로써 현대판 김씨왕조의 권력승계의 당위성을 대내에 선전하기 위해서였죠.
김정일의 지시로 금수산의사당은 금수산기념궁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 동안에 걸쳐 8억 9천만 달러가 김씨왕조의 종묘라고 할 수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재건축과 김일성 시신 영구보존을 위한 박제품 제작 비용으로 탕진되었습니다.
이씨조선왕조 500년 동안에 27대의 왕이 이어져오면서 종묘의 본 사당인 정전이 101m의 길이로 확장되었다면 김일성이 죽고 1대째에 그 길이가 390m에 달하는 현대판 김씨왕조의 종묘인 금수산기념궁전이 개건, 확장되었습니다.
김정일은 레닌의 시신을 보관한 러시아의 시신처리기술을 도입하여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적으로 보관하도록 했습니다. 혼백이 스며있다고 하는 신주 대신 죽은 김일성을 살아있는 모습으로 북한주민들에게 보여주어 김씨왕조의 영원한 세습을 위한 신성화 선전을 하려했던 것입니다.
죽어서도 후계세습에 이용되어야 할 김일성의 시신처리과정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시신처리기술을 보유한 러시아 ‘생물구조연구센터’에 의해 시신방부처리과정인 ‘엠바밍(embalming)’이라고 불리는 기술이 도입되었습니다.
우선 시신을 세척하고 살균 소독을 하고 나서 피를 뽑고 대신에 포름알데히드를 혈관에 주입하여 사체조직이 부패되는 것을 막습니다. 그리고 가장 변하기 쉬운 뇌수와 안구, 내장들은 빼내고 방부제가 들어간 젤 형태의 물질을 채워 넣습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닙니다. 이렇게 화학물질로 처리된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은 방부제인 발삼향의 액체가 담긴 수조에 넣어 그 향액을 피부를 통해 죽은 몸세포들에 침투시키고 건조와 침투를 반복합니다. 시신의 노출부위인 얼굴과 손 등은 1주일에 2회 정도 방부제를 발라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2~3년에 1회 정도는 방부제액이 담겨진 수조에 시신을 넣어 부패를 막기 위한 재처리를 합니다.
이러한 시신처리방법에 대해서는 러시아의 생물학자인 보리스 즈바르스키 박사와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의학대학의 해부학자인 블라디미르 비오로비요프가 개발했다고 하죠. 김일성의 시신보관을 위해서 1년에 80만 달러, 김정일의 시신보관까지 하려면 160만 달러가 탕진된다고 하니 김씨왕조는 죽어서도 북한주민들의 고혈을 짜낸 혈세를 요구하는 셈입니다.
종묘제례는 이씨조선시대에 역대 왕과 왕비들의 신위를 모시는 제향예절입니다. 당시에 왕은 왕세자와 문무백관 등 700여 명을 거느리고 종묘에서 제향예절 의식을 진행하곤 하였습니다. 김정은이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과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들을 거느리고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모습은 이씨조선왕조시기의 종묘제례의식과 너무도 닮은 모습이어서 시대를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씨왕조시기에 종묘제례의식이 밤에 진행된 것처럼 김정은이 야밤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참배를 하는 모습을 보면 21세기에 지구상에서 3대에 걸쳐 왕족세습을 하는 구세기적인 북한의 현실에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김정은은 금수산태양궁전이 현대판 김씨왕조의 종묘가 되어 자기 자신도 죽으면 방부제로 처리된 박제품이 되어 영생과 신성화의 전시품으로 될 것이라고 오산할 수 있겠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막아 북한주민들을 우물 안의 개구리로, 유리병에 갇힌 존재로 만들려고 하지만 인공지능시대, 정보화시대에 외부세계를 알려고 하는 그들의 욕구마저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